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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주목한다] 학단협 비판 들고 나온 『모색』 3호
[이 책을 주목한다] 학단협 비판 들고 나온 『모색』 3호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4.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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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6 16:56:00

“모색 1호는 꽁꽁 얼어붙어 있던 대학원사회에 해빙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많은 언론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아줌마’라는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대학원의 문제점은 다시 술자리의 안주거리, 우스갯거리로 전락했고 대학원이라는 공간은 다시 얼어붙어 버렸다.” ‘모색’ 3호 발간사에서 편집진이 밝힌 내용이다. “끝이 아니길 바라며”라는 비장한 자기 진단으로 시작된 그들의 세 번째 문제의식은 어디로 뻗어가는가.

권경우 씨는 “현단계 학문후속세대들은 먹고사는 일, 즉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지식인의 역할이니 비판적인 학문이니 하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가 묻는다. 진보적 지식인이라 평가받는 어느 교수와 그 제자의 일화를 예로 들며 “앎과 삶의 분리는 90년대를 견디면서 지식사회가 배운 처세술 중에서 최고의 원리”가 됐다는 주장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이럴 때 이 시대 지식인들은 “대부분 정신분열 상태”에 있다.

비판은 지식인 개인으로 그치지 않고,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이라는 진보적 학술집단으로 향한다. 어쩌면 학단협은 그들의 이념적 友軍일지도 모른다. 자기 살을 도려내거나 殺父에 가까운 비판. 학단협은 1988년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학문세계”를 표방하며 역사문제연구소 등 10개의 학술연구집단이 모여 만든 단체. 그 역사와 시대적 의미로 볼 때 학단협은 함부로 비판할 대상은 아니다. 다만 최근 학단협에는 학문후속세대가 드물다. 이런 현상에 대해 권경우 씨는 “학문후속세대의 연구자들은 말할 곳을 잃어버렸다”고 표현한다.

오창은 씨도 엇비슷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학단협이 최근 10여 년의 속도감 넘치는 사회 변화 속에서 심각한 노쇠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단지 젊은 연구자들을 ‘배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단협이 문제인 것일까. 오창은 씨는 노쇠현상의 원인을 제도에서 찾는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국내학술지 평가가 그것. 학단협 소속 연구단체들도 학진 평가에 발맞춰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교수업적평가와 맞물려 학단협의 학술지에서 학문후속세대의 빈도가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조로 현상과 급변하는 교수들의 연구조건 사이 모종의 관계가 짐작된다. 오창은 씨는 “학문후속세대에게 적정 비율의 논문을 할당해 학술지를 편집하는 방안”을 주문한다. 염정민 씨는 ‘한국정치연구회’에 대한 고백으로 이 문제를 구체화 한다. “이름만 등재하고 한정연 활동을 암묵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연구위원들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살을 도려내는 고통의 과정을 감당할 수 없는 조직이라면, 그리고 이러한 비판의 활동이 자유롭게 제기될 수 없는 조직이라면 어떻게 ‘진보적 학문공동체’를 꿈꿀 수 있을 것인가.”

학계에 대한 비판은 번역 문제로 넘어간다. 교수와 여러 제자들이 공역했지만 책 어디에도 제자들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수의 번역물을 대학원생 제자들이 나눠서 하는 행태나 번역이 교수나 강사 임용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 “심각한 상징권력의 폐해”라 주장하는 이상용 씨는 번역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학제간 연구의 기본적인 토대는 ‘학제간 번역’이다.” 그의 단언은 학제간 연구라는 거창하지만 알맹이 없는 구호에 실천적 지침을 일러주고 있어서 주목된다.

박명진 씨는 ‘강원도의 힘’ 등 시간강사가 소재로 나온 영화를 분석한다. 시간강사는 “전통적 지식인의 ‘잉여’이면서 동시에 극단적으로 포스트모던한 존재이다. 이들은 휘발하는 기표의 흔적과 같다. 또는,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이다.” 그 영화들의 풍경은 비루하고 창백한 지식인의 과잉은 현실보다 낯설다. “시간강사 모티브는, 맑스가 그토록 저주했던, ‘물신’의 전면적인 통치하에 광장에 梟首된 이 시대 영혼의 자화상일진대” 그의 비판이 단지 몇몇 영화에 국한되겠는가.

전체적으로 읽을거리가 빼곡이 담겨있고 서로 다른 형식의 글들이 하나의 주제에 모여든 느낌이다. 그런데 염정민 씨의 말처럼 “학문 내적인 자기반성과 성찰의 과정”은 학단협만이 아닌 ‘모색’ 자신에게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언뜻 보기에 과감한 비판을 행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각자가 활동하고 있는 학계에 대한 비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3호까지 달려온 ‘모색’의 발걸음은 아직 메타 차원의 비판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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