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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필독 리스트와 독서력!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필독 리스트와 독서력!
  • 이현우 서평위원/한림대 연구교수·노문학
  • 승인 2009.11.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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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평위원/한림대 연구교수·노문학

해마다 비슷한 통계가 나오지만, 작년 한국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11.9권이었다. 한 달 평균 한 권 정도의 책을 읽는 셈인데, 주로 읽는 책이 소설(21.4%)과 수필/명상집(7.4%), 경제/경영서(5.9%) 순이었다. 대학생이라면 사정은 좀 나을지 모르겠지만, 평균적으로 한국인의 독서량은 ‘경제수준에 걸맞은 문화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민족의 유전자엔 강한 문화적 기질과 욕구가 있다”고 한다면 독서에 대한 욕구 또한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혹 그러한 기질과 욕구를 억압하는 잘못된 사회적 제도와 여건에 있는 건 아닐까.

올해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예년의 경우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하고 싶은 일들 가운데 하나로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것’을 꼽았다. 학교시험과 수능시험 등에 매달리다보니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게 학생들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사정은 일본도 비슷한 모양이어서 교육심리학자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력』(웅진지식하우스)에 보면, 저자 또한 독서가 부정되는 입시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아예 독서력을 묻고 평가하는 것이 입사시험이나 대학입시의 중요한 전형방식이 돼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시험방식이 공부 방식을 결정하는 현실에서라면 그의 제안을 우리의 처지에 맞게 적극적으로 고려해 봄직하다. “대학, 특히 문과 계열의 공부는 책을 읽는 것이 핵심이다. 설사 이과 계열이라도 논리적인 사고를 단련하는 데 독서는 필수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높은 수준의 독서력을 갖추고 있으면 그만이다.” 같은  그의 주장을 우리도 반박하기 어렵다면 말이다.

교육 현장에서 사고력과 상상력은 언제나 강조돼 왔다. 하지만 독서력의 경우는 어떨까.  독서가 자아 형성을 위한 양식이고 커뮤니케이션의 기초로서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준다고 보는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력 형성’이 학교교육의 최대 과제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우리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교육의 목표와 과제에 대해 다시 설정해볼 필요가 있다. 공부와 독서를 따로 분리시키는 시험방식을 고수하면서 독서를 권장하는 것은 입바른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궁극적으론 학생들을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책을 안 읽는 인간과 책을 못 읽는 인간.”(김경욱, ‘위험한 독서’)이란 분류법에서 못 벗어나게 만들 것이다.   

물론 제도적인 차원의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장에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서력의 기준을 제시하고 독서를 장려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사이토 다카시는 ‘문고본 100권과 신서본 50권’을 독서력의 기준으로 제시하는데, 우리의 상황에 맞게 바꿔보자면 ‘문학작품 100권과 교양서 50권’ 정도가 된다. 여기서 ‘문학작품’은 가벼운 읽은 거리가 아닌 ‘고전’ 수준의 작품을 말하고, ‘교양서’는 과학교양서를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서적을 가리킨다. 이런 분량의 책을 4년 정도의 기간 안에 독파하는 것이 독서력 형성의 지름길이라고 사이토 다카시는 말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각 대학별로 필독 고전의 리스트는 많이 제시하고 있다. 다만 독서를 학생들의 자발적인 의지에만 내맡겨두는 것은 효과가 적지 않나 싶다. 관련강좌를 개설하거나 여러 유인책을 통해서 학생들의 독서의지를 적극적으로 북돋아줄 필요가 있다.

사이토 다카시의 강의 사례도 그런 경우다. 그는 자신의 강의실을 학생들이 ‘동아리’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독서부’에서 제대로 된 지도자에게 지도를 받으면 꽤 높은 수준의 책도 읽게 되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담이다. “내 강의실은 운동부 학생들로 붐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책을 거의 잡아본 적이 없다. 그래도 역시 대학생인 만큼 나와 함께 독서토론회를 하다 보면 석 달 안에 도스토옙스키나 니체 등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일주일 안에 너끈하게 읽게 된다.”

독서 경험이 축적되는 가운데 독서력이 붙고 독서에 자신감을 갖게 되면, 대학에서의 공부는 평탄해진다. 다양한 수준의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독서력을 지속적으로 단련시켜나가는 일이 남을 뿐이다.

이 독서력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인가. 음식에 패스트푸드와 풀코스 요리가 있는 것처럼 책에도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충분한 책과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그리고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건너뛰면서 읽어도 좋은 부분과 천천히 정독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독서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이러한 단계까지 거친다면, 마지막으론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수준이 된다. 여러 권의 책을 기어를 바꿔가면서 읽을 수 있다면 대학생의 독서력으론 더 바랄 게 없다. 그들은 사회인이 돼서도 꾸준히 자신의 독서력을 단련하고 세계관을 확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인의 연평균 독서량도 조금 다른 수치를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독서강국으로서의 문화국가를 잠시 꿈꾸어본다.

이현우 서평위원/한림대 연구교수·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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