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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평가 방식 논란 … HK교수 정년보장 최대 과제
양적평가 방식 논란 … HK교수 정년보장 최대 과제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9.11.02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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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한국(HK) 3년, 속사정 들어보니

“연구 성과 포장하는 데 신경이 더 쓰인다.” “학문을 하는 것인지, 비즈니스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문한국(HK)사업 시행 3년째를 맞고 있는 HK연구소 소장들이 속을 끓이고 있다. 발표를 앞두고 있는 HK사업 연차평가 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애초 취지와 다르게 기존의 재정사업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소장들이 많다.

HK사업은 2007년 인문학자들의 기대 속에 ‘연구소’중심의 연구체제를 확립해 연구소 내 연구주체를 양성해 세계수준의 연구역량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인문학에서 지원 규모나 지원기간 등에서 유례가 없는 사업이었다. 최장 10년간 진행되는 장기사업이다. 2007년부터 167억 원, 2008년에는 267억 원, 올해는 273억 원이 투입됐다.

자연스레 선정경쟁도 뜨거웠다. HK사업은 매년 선정과정에서 불공정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도 신규 선정결과 발표를 앞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37개 연구소가 HK연구소로 선정됐다.
하지만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평가방식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는 인문학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HK사업은 연차평가와 단계 평가를 거쳐 연구소의 예산이  삭감되거나  탈락할수 있는 구조다. 1차년도에는 제도나 행정적 기반을 중심으로 평가하지만 갈수록 연구 성과의 비중을 늘려나간다. 연구성과는 논문실적, 저역서 실적과 세미나 개최 실적 비중이 크다.  

이대범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소장(국문학)은 “2단계 BK21은 이공분야 학문의 회전주기가 짧아 현재 평가방식이 합당할 수 있다. 그런데 인문학까지 평가를 통해 2단계에 진입시키고 잘못하면 탈락시키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라리 사업단이 잘하고 있는지 컨설팅 개념에서 관리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이 학문 성격에 맞다”고 제안했다. 한 유망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교수도 비슷한 주장이다. “애초 사업 취지와 다르게 논문 실적으로 평가하는 기존의 사업을 답습하고 있다”면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연구기회를 준다는 장점도 있지만 지나치게 경쟁구도를 만들고 있다”

평가방식의 폐해는 연구소의 학술활동에서 나타난다. 최근 경쟁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국제학술대회가 대표적이다. “다른 연구소가 국제학술대회를 하면 덩달아 학술대회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아젠다는 다른데 학술활동은 비슷해지고 있다”는 자체 평가도 나오고 있다.

HK연구소가 언론 홍보에 적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HK연구소 소장은 “언론 홍보 내용이 연차보고서에 포함돼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는 연구재단 측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지, 지방지에 얼마나 실렸는지 일일이 파악해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꼽는 가장 큰 문제는 HK교수의 정년보장이다. 교과부는 연간 지원비 1억5천만원당 1명을 정년보장해야 하고 10년차 사업 종료시점에는 그 50%이상의 인원이 정년보장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강래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원장(사학)은 “국립대는 자체적으로 뽑을 수 있는 정원이 없다. 또 어렵게 HK연구소 배정인원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인근 학과의 반발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국립대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립대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에서 별도로 정원을 줘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다른 학과에서 반발해서 ○○연구소 HK교수를 뽑지 못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정년보장문제는 바로 인력난으로 이어진다. 신윤환 서강대 동아연구소 소장(정치외교학)은 “HK사업의 성공은 다른 대학 전임교수로 갈수 있을 정도의 연구자가 HK연구소로 와서 연구를 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현실은 평가 받고 탈락할 수 있다는 위험과 신분불안 때문에 우수한 연구자를 뽑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업 초반기라서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물론 있다. 김남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소장(철학)은 “10년이 아니라 100년을 바라보고 진행해야 한다”면서 “학과 체제에서는 시도하지 못하는 융합과 통섭이 이뤄지고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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