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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포스트모더니티의 실험실 … 로컬한 특징 살아 있어”
“한국은 포스트모더니티의 실험실 … 로컬한 특징 살아 있어”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9.10.26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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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인천세계도시인문학대회’ 참석한 마페졸리 파리5대 교수

‘일상생활’사회학으로 지평을 넓힌 미셜 마페졸리 프랑스 파리5대학 교수(사진)는 “탈근대적 도시와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놀랍게도 ‘절대적 상호의존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일부터 사흘간 인천에서 열린 인천세계도시인문학대회에서 기조강연(21일)을 했고 인천을 둘러본 소감도 밝혔다. 강연 후 기자간담회 내용을 정리했다.

>> 절대적 상호의존성이란 뭔가.


“한 마디로 과거보다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고, 또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 점점 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더욱 많은 관계 속에 놓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국가도 완전히 고립된 채 있을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세계와 관계를 맺게 돼 있다. 이것을 장 보드리야르는 ‘바이러스성’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바이러스가 있어 국가든 개인이든 혼자 있을 수가 없다. 보드리야르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인식론적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한 것이다. 제가 보기에 상대적 상호의존성은 존재하기 어렵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소통 기술의 발전인데, 이런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모든 관계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관계는 발전하고 어떤 관계는 발전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병이 확산되거나 감염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다. 어떤 관계도 예외는 없다.”

>> 모더니티를 언급하면서 전 세계 서구화 작업의 승리, 합리주의·이성의 승리라고 했고, 포스트모더니티는 동양적이라고 했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징은 이성보다는 감성인데, 감성적인 사회가 이성적인 사회보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인가. 점점 사회는 개인화되고 고독해지고 있는데 감성적인 사회가 가능한가.


“어쨌든 내가 말씀드린 것은 내 가설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개인주의는 더 약해질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제 책에서 ‘부족’이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성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감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나 모임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은 공동체적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인류학자들이 과거에 원시 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부족이라는 것은 정글에서 적에 대항해 힘을 합해 살아간 것이다. 여기에서 적이란 맹수 혹은 적대적 자연환경이다. 우리가 대도시, 즉 ‘메갈로폴리스’라고 하는 것을 나는 ‘돌로 된 정글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정글에서 살아가려면 우리도 역시 부족을 형성해야 한다. 이 부족이란 결국 서로 간의 연대감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부족을 단위로 해서 메갈로폴리스에서 나타나는 여러 적들에 대항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기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여기에서 부족을 만든다는 것은, 종교적, 음악적, 성적 취향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일 수도 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이런 부족이나 공동체를 만들 수밖에 없고, 현재 메갈로폴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다. 스포츠, 음악 등 매우 다양하다.”

>> 인터넷 동호회도 그런 것인가.


“그렇다. 내 말의 정확한 예이다. 기조강연에서, 아카익한 것과 기술적인 것 사이의 시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카익한 것은 부족이라는 개념이고, 기술적인 것은 인터넷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교류되는 모든 정보의 70%는 공동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 간의 교류, 종교적, 철학적 취향 등을 중심으로 한 교류이다.”

>> 실제로 서구사회에서 ‘일상생활의 사회학’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

“25년 전 프랑스에 일상생활연구소를 만든 뒤 일상생활 연구를 계속해 왔다. 기술과 일상의 관계, 몸, 이미지의 중요성, 이런 모든 것을 연구했다. 제도적 차원에서는 시작할 때만 해도 유럽에서 일상생활의 사회학은 거의 비중이 없었다. 당시의 사회학은 주로 노동을 관찰하거나 권력구조를 관찰하는 데 집중했다. 최근 10년 간 완전히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고 판세가 뒤집어졌다고 본다. 왜냐하면, 진정한 문화란 일상생활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먹고, 입는지, 생활하는지, 이런 모든 것이 큰 관심의 대상이다. 그래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글로컬’한 도시에 대해서도 말했다. 세계 여러 도시를 보았을 때 ‘글로컬’에 가장 걸맞은 도시는 어디이고, 인천과 한국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나는 강연에서 글로컬이라는 말을 몇 번 했는데, 포스트모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서로 반대되는 단어를 하나로 만드는 예다. 우리의 도시들도 점점 더 세계와 연결되지만 가까이 보면 현재의 그 도시에 점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나의 현상으로 예를 들자면, 유럽 젊은이들은 과거보다 훨씬 여행을 다양한 도시에서 많이 하고 공부도 한다. 이렇게 많은 대도시와 연결돼 있다. 그러면서 그 도시에서 또한 커뮤니티를 만든다. 인터넷을 통해 이런 일이 가능하고 서로 간의 연결도 가능하다. 세계 속으로 흩어지되, 원래 속해 있던 곳의 가치를 새로운 연결을 통해 창조하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인상 정도는 말할 수 있다. 나와 함께 공부한 한국 학생들도 많았고, 프랑스 학생 두 사람은 한국에 산다. 나는 그들을 통해 정보를 듣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은 포스트모더니티의 실험실이다. 제가 보기에, 유럽은 근대적 가치의 실험실이었고, 근대 이후 포스트모던한 것의 실험실은 한국이다. 2년마다 오는데, 올 때마다 역동성과 활력에 놀란다. 인천의 첫인상은 이번에 첫 방문이라 뭐라 말하기는 어려우나, 어제 송도를 봤다. 엄청난 건물들이 많았다. 어제 저녁은 송도의 조그만, 아주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식당에서 먹었다. 그야말로 아카익한 분위기였다. 한편으로는 세계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컬한 특징이 살아있다. 한국에 대해 흥미로운 것은, 활력과 생명력이 느껴진다. 외부에서 볼 때는 언제나 움직이고, 우글거린다는 느낌이다. 아까 말한 인터넷 부족과 함께 이런 느낌을 한국에 대해 항상 가지고 있다.”

>> 탈근대적 도시를 설명하면서 다리의 개념을 사용했다.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다리와 문이라는 것은 메타포적 표현이다. 문이란 고립, 스스로를 닫아버리는 것이다. 다리란 열림과 다른 곳과의 연결을 의미한다. 다리와 문을 합하면 항구이다. 항구란 닫혀 있으면서 열린 곳이다.”

>> 유비쿼터스시티가 인간적으로 설계되려면 도시계획자는 어떻게 하면 될까.

“감히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현상을 기술할 뿐이다. 그들이 내가 기술한 것을 바탕으로 뭔가를 만드셔야 할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티의 가장 큰 특징이 관계 맺기이다. 근대에서는 자기 안에만 갇혀 있었으나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주위 모든 것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휴머니즘이란 자기 안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라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휴머니즘이다. 영어로는 RELIANCE로 쓰는데, RELY는 서로 연결된다, 신뢰한다는 말이다. 포스트모더니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 =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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