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8:30 (금)
지식기반사회 한국 도서관이 지닌 ‘식민성’의 뿌리를 건드리다
지식기반사회 한국 도서관이 지닌 ‘식민성’의 뿌리를 건드리다
  • 이용재 부산대·문헌정보학과
  • 승인 2009.10.12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가토 가즈오 외 지음 │ 최석두 옮김 │ 한울 │ 2009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가토 가즈오 외 지음 │ 최석두 옮김 │ 한울 │ 2009

우리나라 도서관은 ‘식민지’이고, 도서관장은 ‘식민지 총독’이다. 독자는 과격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도서관은 식민지’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식민지 백성’처럼 규격화된 지식을 외우고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도서관장은 식민지 총독’이라고 한 것은 도서관의 서비스와 경영에 대한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지역사회나 모기관을 위해 봉사해온 내부 사람이 아니라 외부에서 심어진 사람이 도서관장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도서관이 특히 그러하다. 서구의 도서관선진국에서처럼 교수 신분(faculty status)을 가진 베테랑 사서가 전임의 형태로 도서관장을 맡아 오랜 기간을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문적 학자가 보직의 형태로 1~2년 정도 관장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은 현재 ‘도서관법’에 따라 사서직을 관장으로 임명해야 하는데, 전국에서 법을 어겨가며 행정직이 관장이 되는 경우도 많다. 행정직 공무원이 관장이 되기 위해, 심지어는 공공도서관의 간판까지 내리고 다른 이름의 기관으로 운영하는 행태도 있다. 수천 년 간 인류의 ‘사회적 기관’으로 정립된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서는 파견된 총독들에 의해 정체성을 상실하고 변용되기도 한다.

‘식민지’ 도서관에서 우리 국민은 이 시대의 舊約 토플과 新約 토익을 외우거나 시험 준비에 몰두한다. ‘근대성’을 획득한 시민이자 지역사회의 주체로서 과거와 우리 시대의 古典을 읽거나 시대와 지역의 이슈를 가지고 토론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는 항상 궁금했다. 왜 우리 도서관은 식민지 상황에 놓여 있는가. 이른바 ‘지식기반사회’라는 21세기에도 왜 식민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가. 그러한 궁금증이 최근에 출판된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에서 풀렸다. 예전에도 막연히 짐작한 바였지만, ‘우리 안의 식민지’ 도서관에 대한 역사적 연원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일본이 침략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경영한 식민지 도서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들 식민지 도서관은 일본의 패전과 운명을 같이했다. 이 책에는 일본의 도서관이 가지는 태생적 성격이 기술돼 있다. 즉, 프랑스대혁명, 독립전쟁 등을 거치고 근·현대적 의미의 시민사회를 형성한 서구에서와 달리, 일본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도서관은 사회교육기관이었으며, 국가의 의사를 사회에 그대로 관철시키는 기관이기도 했다.

그때의 도서관은 일반 대중보다 국가를 위해 필요한 기관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교육이라 하면 학교 교육이 중심이며 구미와 같이 시민의 자발성이 중시되는 사회교육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왜 식민지에 도서관을 설치했을까.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식민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그 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기술 등의 정보자료를 수집해 정부나 군대가 이용할 수 있도록 조직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식민지의 일본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거류 일본인을 대상으로 학교 교육을 보완하거나 식민정책을 주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셋째, 침략한 나라의 민중을 일본인화하는 정책, 이른바 황민화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들의 진단을 들어보면,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이 가지는 ‘반민주성’, ‘국가이데올로기 첨병’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서구에서는 수천 년 동안의 시간을 통하고 근대 시민혁명을 거쳐 도서관이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민중의 대학(people's college)’이 됐는데, 일본의 식민지에서는 도서관이 전쟁 수행을 위한 ‘정보센터 또는 정보기관’이며, 식민지에 이주한 일본인을 위한 학교교육 보조기관이며, 식민지 백성을 황민화하는 ‘지식 및 사상 주입 기관’이었음을 이 책은 웅변하고 있다.

    이 책은 먼저 일본의 근대화와 도서관을 개관하고, 이어서 사할린, 대만, 만주, 조선, 식민지 중국과 남방 지역에서의 식민지 도서관에 대해 조명했다. 식민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위에서 기술된 식민지 도서관 정책의 기조는 어느 지역이나 같다.

    여기서는 이 책에서 기술된 ‘조선의 도서관’에 대해 좀더 살펴본다. 한 마디로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에서 진정한 의미의 ‘도서관’ 개념을 부정했다. 왜 그런가. 조선에서는 학교 교육 그 자체가 우민화 수단이었기에 학교교육의 보완물 내지 독립된 사회교육기관으로서도서관에 대해서는 조선교육령 어디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저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교육상의 차별은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첫째, 고등교육은 정신적 욕구, 특히 자유에 대한 희구를 높이기 때문에 조선인에게 좀더 높은 교육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형편을 나쁘게 한다. 둘째, 조선인을 일본인보다 열등하다고 본다. 셋째, 조선인의 교육을 위해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다. 넷째, 조선인이 최하층 일본인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것은 가증스러운 일제 식민정책의 극단이 도서관에 구현됐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식민지 조선에서도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도서관이 일부이지만 설립됐음을 이 책은 언급하고 있다. 한일합방 이전인 1906년에 개화운동의 성과로 서울에 ‘대한도서관’이, 평양에 ‘대동서관’이 설립됐다. 또한 3·1독립운동 이후 1920년에 尹益善이 서울에 ‘경성도서관’을 세웠다. 이 도서관은 개관 시 장서 수가 3만5천책이나 됐을 정도로 큰 도서관이었다. 약 1년 후 李範昇 역시 경성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도서관을 설립하고 윤익선의 경성도서관을 분관으로 인수받아 운영했다. 또한 1931년에 金仁貞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해 평양에 인정도서관을 세웠다. 이 책을 번역한 최석두 교수도 옮긴이 서문에서 일본의 조선말살정책에 대항해 도서관운동을 펼쳤던 윤익선, 이범승, 김인정, 강진국, 이재욱 등 여러 선각자의 활동을 언급하고 있다. 향후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학문적 조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을 기술한 저자들의 노력이 대단하다. 준비에 20년, 집필에 10년이 걸렸고, 다룬 사료의 양도 방대하다. 특히 일본 식민지의 어두운 문화적 유산에 대해 집중 조명한 저자들의 학자, 사서로서의 양심 또한 대단하다. 아울러 이러한 저작을 번역한 최석두 교수의 노고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좀더 바란다면, 이 책에서 다룬 일본인명을 가급적 일본어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한국 도서관이 가진 ‘식민성’의 뿌리를 밝혀준 방대한 역사적 연구물이 나왔음에 반가움을 표하며, 우리 학계에서도 도서관과 문헌정보학의 기본, 역사적·사회적 기반을 밝혀주는 저작이 계속 생산되기를 희망한다.      

이용재 부산대·문헌정보학과

서울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부산대에서 문헌정보학으로 석·박사를 했다. 『주제화를 통해본 한국 대학도서관의 현단계』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비블리아학회 이사로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