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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학문 개념 전유, 더 많은 고민 필요
인접학문 개념 전유, 더 많은 고민 필요
  • 민유기 광운대·서양사
  • 승인 2009.10.05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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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양사학회 학술대회‘서양 역사 속의 몸과 생명정치’ 참관기

한국서양사학회(회장 이영석·광주대) 제13회 학술대회 ‘서양역사 속의 몸과 생명정치’가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주관과 학진의 후원으로 9월 18일부터 이틀간 한양대에서 개최됐다.

학회의 발표원고 접수 안내에 따르면 학술대회의 기획 의도는, 생물학적 유기체이자 사회경제적 질서를 반영하는 문화적 형성물인 몸과 몸을 매개로 한 ‘생명정치(biopolitics)’의 양상들을 서양의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성찰하는 것이었다. 즉, 학술대회는 작년 광우병 위험인자를 지닌 소고기 수입문제를 계기로 활성화되고 있는 생명과 건강에 대한 사회적·학문적 논의들에 대해 역사 연구가 지닌 구체적 사실들과 이의 인과관계 분석, 미래지향적 의미 산출 등을 통해 학문과 사회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학술대회가 기획 의도와 학문적 기대치에 100% 도달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남는다는 게 참가자들의 일반적 평이다. 하지만 주명철(한국교원대)의 기조발제와 10개의 발표 모두는 가치 있는 토론거리를 제공했다.

1부에서 고원(경희대)은 푸코에게 몸은 은밀하게 작동하는 근대권력의 비가시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매체였으며, 푸코 이후에 몸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연구의 교차점이 됐고 그의 문제제기는 구체적 역사의 맥락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경환(성신여대)의 프랑스 제3공화국의 인구감소 발표는 자유주의와 자유주의 통치가 상이했음을 보여주었고, 인구감소 담론에 대응하면서 프랑스의 복지국가 모델이 가족을 중심에 놓으며 전개됐음을 밝혔다.

서양 역사 속에서 ‘생명정치’ 양상 검토


2부에서 이남희(서울대)는 빅토리아 시기 여성참정권운동가들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분석해 그녀들이 빅토리아 시기 여성상에 대한 단순한 순응과 저항의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다면적 전술을 구사했음을 밝혔다. 기계형(한양대)은 유럽 최초로 1920년에 소비에트가 제정한 낙태합법화 법률의 배경이 제정 러시아의 정치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 몸과 낙태에 대한 이전 시기의 사회적 논의에 있다고 주장했다.

3부에서 최혜영(전남대)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와 오비디우스가 서술한 루크레티아 성폭행 사건을 비교하면서 루크레티아의 사적인 몸을 사회의 여러 지배 이데올로기가 상징화되는 공간으로 파악했다. 유희수(고려대)는 고백성사와 지옥의 이미지가 성을 악으로 규정한 중세 기독교 시대의 규율이었고, 이 같은 성과 욕망에 대한 규율 기제는 도시와 상업이 발전하고 이단이 번성하던 중세 말의 로마교회가 교회를 벗어나려던 이들을 기독교사회로 재통합하려던 고안물이었다고 분석했다. 김학이(동아대)는 베를린 성과학연구소를 설립한 마그누스 히르쉬펠트가 남녀 구분을 해체했고 자유의 방어 및 확대를 의미하는 선택하는 성 개념을 창안했음을 밝혔다.

 4부에서 장세룡(부산대)은 볼테르가 몸을 사유의 중심에 두면서 보편관용론에 도달했으며 몸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고문과 사형에 반대해 프랑스 구체제의 권력을 비판했다고 주장했다. 염운옥(고려대)은 1차대전 이후 영국의 상이군인의 몸이 국가가 추도하는 영웅과 숭고한 죽음의 찬양 속에서 소외돼갔다고 강조했다. 김용우(이화여대)는 나치 집단수용소에서 자행된 폭력과 잔혹행위들이 수감자들의 인간다움을 박탈함으로써 수감자를 죽음에 몰아넣으면서 죄의식을 경감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푸코의 개념 역사학에서 사용할 수 있나?”


이상의 발표에 대해 개별 토론과 종합토론에서 제기된 문제는 크게 첫째 역사학의 미덕인 실증적 분석이 미비한 몇몇 발표가 인식론적 수준의 문제제기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개의 발표를 제외하곤 대부분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 충실한 발표였고 대개 학술대회가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한 공개적 토론의 장으로 기능하기에 이런 문제제기는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biopolitics’의 개념과 번역어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다. 기존의 ‘생체정치’를 대체하면서 최근 인문사회과학 여러 분야에서 ‘생명정치’, ‘생정치’, ‘삶정치’ 등 무수한 번역어가 존재하는데 가장 적절한 용어가 무엇인지, 개념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자들의 지속적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푸코의 철학적 개념을 역사학에서 사용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도 있었다. 역사가들은 지금껏 인접학문의 다양한 개념과 논의들을 실증적 연사 연구에 활용해왔는데 이런 전유행위에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지적이었다.   

셋째, 근대권력의 몸에 대한 권력의 미시그물망 작동 기제의 파악은 가능했지만 생명을 매개로 한 정치의 해방적 차원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물론 로마시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상이한 담론에 내재된 이데올로기, 영국 여성참정권운동가들의 이미지 투쟁, 러시아 낙태담론의 다양성, 마그누스 히르쉬펠트의 선택적 성 개념 등을 통해 몸에 각인된 지배적 규율권력을 넘어서고자 하는 움직임이, 몸과 생명담론에 대한 해방적 실천적 움직임이, 구체적 역사 속에서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 발표와 다른 발표 대부분의 논지는 생명권력의 작동기제에 대한 분석에 그친 느낌이었다. 물론 권력이 몸과 생명을 매개로 하여 비가시적으로 구조화한 권력의지를 명확히 인지한 이후에야 이를 비판하고 넘어서고자 했던 실천행위들에 대한 역사연구가 보다 충실해지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학술대회는 많은 생산적 논쟁을 야기했고, 향후 연구 과제를 제시했으며, 올바른 번역어와 이의 개념 정의에 대한 집단적 고민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며 우리 학계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평가할만 하다.

민유기  광운대·서양사

필자는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박사를 했다.  『도시이론과 프랑스 도시사 연구』·『도시사 연구』등의 저·역서와 「아르누보와 문화 민주주의」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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