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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출신 공직 후보자 청문회를 보고] 다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한다
[교수 출신 공직 후보자 청문회를 보고] 다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9.09.2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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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있었던 장관 및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교수 출신 후보들은 유별난 실망스러움을 안겨줬다. 위장전입과 병역기피 의혹은 다른 직종 후보들과 비슷했고, 여성부 장관 후보는 업무에 대해 부끄러울 정도의 무지를 드러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도 여러 점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소득탈루액은 ‘관행’이나 ‘실수’라고 말할 수 있는 선을 너무 넘었고, 여러 문제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의혹을 받거나 모호한 답변을 했다. 교수 신분이면서도 모 기업 회장으로부터 용돈을 받아썼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이 정도면 괜찮다”는 애매한 핑계를 댔다. 과거 정부의 청문회 때는 엄격함을 요구했던 한나라당이나 주류 언론들은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했고, 과거 정부 때 적용됐던 기준을 공공연하게 무시했다.

    그러나 교수 출신 공직후보들이 주는 실망스러움의 정체는 모호하다. 공직에 진출하는 교수에게는 특별히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는 듯하다. 그들이 전통적 의미의 지식인의 고귀함을 가졌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고귀함’은 좁은 뜻의 직업으로서의 교수의 의무와 책임, 곧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지는 것과 학생에 대해 일정한 도덕성을 가질 것 등을 훨씬 상회한다. 교수출신 공직후보에게 깜짝 실망하는 이유는 이 고귀한 책무가 지켜지지 않아서인 듯하다. 기대가 크니 실망도 큰 것이다.

    그러나 고위공직에 임용되는 교수에게 요구되는 특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당연하게 보이면서도 사실은 이중 삼중의 착각의 결과이다. 우선, 거의 사라져서 아주 드물게만 존재하는 지식인의 고귀함이 일반적으로 교수에게 기대되거나 요구된다. 현재 교수들은 지식인이라는 고귀한 사회적 책무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 자체도 고귀하게 만들지 못하는 형국이다. 서로 글을 읽고 독립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니, 대학은 외부기관에 의해 외형적으로 평가되고 만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전문직에도 속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존재로 전락했으면서도, 지식인이라는 비시대적인 ‘고귀함’을 핑계 삼아 쉽게 고위공직을 꿈꾸는 정치적 존재들인 듯하다.

    둘째로, 역설적이지만 장관이나 총리 자리는 지식인의 비판적 종합성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정책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일은 지식인의 역할과는 다른 정치적 역할에 속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학자’나 ‘진보적 학자’라는 이름은 사실은 정무직 적합성을 따지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 허황된 지식인-공직 게임은 계속된다.      

    그런데도 교수들이 장관급 공직에 잘 기용되고 선출직에 뽑히는 이유는? 정치적이고 정책적 능력이 있어서? 오히려 저 겹겹의 착각에서 파생하는 이데올로기 덕택일 듯하다. 교수는 대중매체로부터 지식인으로 대접받는다. 바깥세상의 더러운 정치에 좌우되지 않는 깨끗한 지식인인 듯이. 실제로 이미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인간들을. 그들은 지식인이라는 상징적 권력을 지렛대로 삼아 교육판과 정치판을 쿡쿡 쑤셔댄다. 이제까지 선출직 공직뿐 아니라 임명직에도 지나치게 임용됐다. 총장 중에서도 서울대 총장은 정치적으로 과대평가되고 남용된 자리였다. 선출자체가 매우 정치적이었고, 교수의 정치화를 연쇄적으로 유발한 면도 크다.

    국민의 정부 때 총리후보로 인사청문회에 섰다가 위장전입 의혹을 받아 낙마했던 장상 전 교수는 이번 청문회에 대해 “후보자의 운을 시험하는 시험장”이라고 혹평했다. 재수 없는 교수는 대학에 남아있거나 정당에 들어가고, 재수 있는 교수는 고위공직에 오른다?
하늘이시여, 교수들의 운을 가혹하게 더 시험하소서! 그래서 운의 끝장을 보게 하소서! 고위공직 후보들의 부끄러운 치부가 드러났는데도 정화를 시키지 못하니, 오염은 따 놓은 당상이다. 운 나쁜 후보는 변명을 거듭하다 구차스럽게 희생되고, 운 좋은 후보들은 뻔뻔하게 살아나서 웃는다.

김진석 인하대·철학과

독일 하이델베르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기우뚱한 균형』, 『포월과 소내의 미학』, 『초월에서 포월로』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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