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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사회과학으로 휴대전화를 만들 수 있는가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사회과학으로 휴대전화를 만들 수 있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09.09.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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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개설서를 읽는 정도지만, 과학사와 과학철학은 필자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연구성과가 축적돼있고,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는지알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과학사와 과학철학 책을 찾아 읽는 이유는 아마 이른바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의 내면에 담겨 있는 열패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답’이 분명히 있어 보이는 사회적 게임-예를 들어 20여년에 걸친 북한과 미국의 갈등-이 왜 계속 교착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을 때, 과학사 책을 보곤 한다. 자연과학은 정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읽고 나서는 좌절하지만 ‘휴대전화’를 만들지 못하는 사회‘과학’ 연구자의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13장 가운데 한 장이 ‘인간과학의 출현’인, 그래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동열에 놓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현대과학의 풍경 (1)』을 읽었다. ‘과학의 정치’가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단어들이다. 과학공부를 하는 행위자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고, 과학의 역사에 대문자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과 같은 급격한 단절은 없었으며, 에너지보존의 법칙과 같이 물리학자들에게 전문직업의 정체성을 제공해 준 과학적 발견이 30여년에 걸친 동시발견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보며, “자연이라는 책이 수학적 언어로 기술되어 있다”는 근대적 언표만큼이나, 자연이라는 책을 보는 작업은 ‘정치과정’이라는 나름의 해석에 경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래도, 자연과학의 공부과정이 정치과정과 비슷할지라도 그리고 실제 정치라고 하더라도, 통계역학이나 다윈의 진화론이 사회과학의 연구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는 상식을 뒤엎는 주장에 즐거워하면서도, 양자역학까지 오면 자연이라는 책은 확률과 통계의 언어로 기술돼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과학도 사회과학과 같은 과학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연과학은 사회과학과 달리 우리에게 ‘휴대전화’를 선물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즉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의 아류이거나, 사회과학은 과학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나의 편견은 지속됐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다시 책을 읽으며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의 ‘속류유물론적’ 생각을 버릴 수 있었던 계기는, 역설적이지만 사회현상과 사회과학의 역사에 대한 나름의 성찰이었다. 『현대과학의 풍경』과 같은 과학사의 매력은, “과학을 인간의 육체에서 분리된 진리 추구활동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신화”를 추방하는 데 있다. 우리는 과학사를 통해 “과학이 전적으로 공평하고 영원히 참인 모델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과학사는 ‘정답’의 변천사, 담론의 이행사다. 사회과학 연구자가 언제나 맞는 ‘정답’을 찾게 될 때, 그 연구자는 더 이상 과학자가 아니다.

무엇이 왜 ‘정답’이 됐는가를 물을 때, 그 질문이 이해관계로 때문이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호기심의 발로라고 하더라도, 사회연구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 될 수 있다. 사회과학의 탄생이 근대국가가 인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의 산물일지라도, 사회과학의 역사는 자명하다고 주장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통해 발전해 왔다. 과학사는 이 ‘비판’이 자연과학 연구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작업에 다름 아닐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행형이라 거칠지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보려 하고 있다. 첫째, ‘휴대전화’는 사회적 제도다. 행위주체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사회과학이 없다면 ‘휴대전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원자폭탄의 발명과정을 설명하는 역사서에 자주 지적하듯, 과학자들의 청원과 같은 외적 조건만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학 연구의 내부에서도 정치는 작동하고 있다. 둘째, ‘민주주의’와 ‘휴대전화’는 사회적 제도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역사적 산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기본권은 휴대전화 속의 반도체처럼 집합적 투쟁의 결과물일 수 있다. 『현대과학의 풍경』과 같은 과학사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둘’처럼 보이지만 ‘하나’일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지시해 주는 철학적 사색으로 읽힐 수 있다. 

구갑우 서평위원 북한대학원대학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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