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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학문,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자
미래 학문,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자
  •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 승인 2009.09.2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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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강평기] 미래대학 콜로퀴엄 ‘융합의 핵심과 매개체들’

지난 10일 서울대에서는 제 9회 미래대학 콜로퀴엄이 개최됐다. 이 미래대학 콜로퀴엄은 2006년에 서울대 개교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김광웅 교수의 ‘미래의 학문, 대학의 미래’라는 발표를 모태로 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학문간의 경계를 넘어서 미래 학문과 대학의 체계의 재구성을 탐색하고자 범대학적 모임으로 시작된 이 콜로퀴엄은 2007년 3월의 첫 모임을 시작으로 이번이 아홉 번 째 모임이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로 지난 3월에는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미래 학문과 대학 체계 탐색 모임이 발단
이번 모임은 ‘융합의 핵심과 매개체들’이라는 주제로 몇 개의 세부 학문 영역에서 융합의 문제가 어떻게 이해, 전개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9명의 발표자와 6명의 토론자가 참여해 다음과 같은 논의를 전개했다.

첫 번째 발표자인 이남인 서울대 교수(철학)는 통섭을 주장한 윌슨이 논한 바, ‘과학 속에서의 철학의 해체’ 입장에 대해 정면으로 반론을 전개하고, 철학은 근원의 학문, 자연학 다음에 오는 학문임을 주장했다. 과학의 여러 새 분야 등의 등장이 철학의 몰락을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철학과 다른 학문 분야의 연결 및 새 분야의 형성이 촉진되었음을 논했다. 이외에도 철학 자체가 본질적으로 학제적인 학문이며, 철학 밖의 다른 학문들 사이의 학제적 연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의 중재, 상호 소통,  조망의 제공 등의 역할을 한다고 논했다.

수학에서의 융합적 특성을 논한 민경찬 연세대 교수(수학)는 구조와 패턴의 학문인 수학은 인간의 삶의 양식과 사고의 틀을 새롭게 형성했고, 다양한 다른 학문들과 상호작용하며 기나긴 융합의 여정 역사를 거쳐 왔으며 또 이러한 융합적 기여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논했다. 최영주 포항공대 교수(수학)는 이러한 수학의 융합에의 기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구체적 인물로 수학자 가우스, 클라인 등의 역할을 들고, 장소정신(Ort-geist)을 제공한 괴팅겐 대학의 역할을 논했다.

생물학과 인문학의 학제적 연결에 의해 생물학이 아닌 ‘생문학’의 밑그림이 탄생할 수 있다는 창의적인 생각을 제시한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과학사)는 진화생물학과 인문학이 연결돼서 형성된 진화인문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진화철학, 진화심리학, 진화문학, 진화종교학의 특성을 논한 후, 신경과학과 인문학이 연결돼 이루어진 신경인문학 영역 내의 신경법학, 신경사회학, 신경윤리학 등의 학제적 주제를 언급했다. 또한 지속가능한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 이러한 학제적, 융합적 연결이 학문간 충돌과 분리보다는 학문간 보충, 상보에 초점을 둠으로써 달성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서구적인 학문 분야들을 논한 발표자들과는 달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조선조의 성리학이 불교를 이단으로 몰았던 예를 들며, 다른 모든 사상과 공존과 융합을 거부하고 독존하는 결과는 그 사상, 또는 영역의 소멸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청중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강박신경증 연구가 정신분석학 설명으로부터 신경생물학적 설명으로 변천돼온 측면을 초점으로 뇌 연구의 발전과 인접 학문들에 줄 영향을 설명한 권준수 서울대 교수(의학)는 신경경제학, 신경정치학, 신경윤리학, 신경공학 등에서 일어날 뇌의 연구와 인접학문의 연결, 융합의 가능성과 파급효과를 논했다.

시각연구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조주연 박사는 학제적 연결이 아니라 분과적 탐구를 강조하던 미술사학이 미술을 사회 내의 시공간, 사회적 관행의 측면,  역사와 시각문화외의 관계 속에서 다시 설정하고 언어적 전환을 받아들여 복합적 담론으로 개념화함으로써 재구성됐음을 논했다.

이 콜로퀴엄의 주제에 가장 충실하며 융합의 포괄적 의미를 제시한 김춘미 한예종 교수(음악)는 수많은 현상에 스며들어 있는 리듬은 융합의 핵이자 매개로서, 학문을 포함한 모든 대상이 살아있는 유기체로 지속적 생성을 낳으려면 그 안에 리듬이 살아 있어야 함을 주장했다. 자연의 리듬, 역사의(이야기의) 리듬, 인공지능 시대의 합성의 리듬 등을 거론하며, 학문 역시 각자의 궤도 속에 갇혀서 같은 동선만 그릴 것이 아니라, 본디 하나 속에 있었던 유기적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융합과학기술의 틀을 처음 제시한 미국과학재단의 첫 강조점이 ‘자연은 하나임’과 일맥상통한다).

기존의 학문 분류체계가 21세기에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으며, 기존의 영역들과 새로 탄생될 영역들 전체를 재구성하는 학문 분류 틀을 계속 제시해 온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콜로퀴엄의 끝 발표에서 사회과학의 학문 분류 체계를 전면 재구성하는 시안을 제시했다. 사회과학이 인지과학 중심으로 전면 재구성돼야 함과, 기존 학문들이 뒤로 물러나고 미래에 새로 파생될 새로운 학문 분야들을 관계학에 강조를 두어 열거한 후에 이 학문들을 인지-인미-인간의 3개의 축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틀을 제안했다.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 구체화해야
9개의 발표 후에 진행된 토론은(토론자: 박경미, 서유헌, 이정모, 임동욱, 전길자, 홍성욱 교수) 시간이 부족해 다소 보충 언급만 짧게 제시되는 형태로 진행됐고 토론 이후 이어진 만찬에서 더 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토론된 내용에는 과연 모든 학문이 특정 과학 또는 과학일반으로 환원돼져야 하는가, 한 학문이 형성되고 발전함에서의 타 영역의 수렴적 융합적 영향, 한 분야의 타 학문들에의 학제적 영향, 과학과 예술의 관계 문제, 융합적 교육 제도(예: 자유전공학부나 대학원 운영)의 문제, 융합적 연구와 학문 틀 발전에서의 대학원생의 역할 등의 문제가 거론됐다.

되돌아보면 이 콜로퀴엄은 기획 의욕은 좋았지만 9명의 발표와 6명의 토론자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반나절 오후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또한 ‘융합의 핵심과 매개체들’이라는 주제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발표와 토론도 있었다. 학문 각 세부 분야들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매개체들에 의해 융합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알고자 하는 기대를 충족하고 미래대학의 융합적 새로운 틀을 도출해 내기 위해는 지금까지의 전체적 구도 중심의 접근을 넘어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학문간 융합적 노력이 어떻게 이뤄졌고 또 이뤄질 수 있는지, 현실적이고 이상적 지향 측면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캐나다 퀸즈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인지과학회장, 한국심리학회지 편집장, 한국뇌학회 고문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인지과학: 학문간 융합의 원리와 응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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