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1:15 (금)
평가제도 빈틈·학점 쉽게 따려는 풍조가 ‘거품’ 키웠다
평가제도 빈틈·학점 쉽게 따려는 풍조가 ‘거품’ 키웠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9.21 1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점 인프레 따져보니

대학가가 ‘학점 인프레(학점 거품)’ 시비에 휘말리면서 후유증을 낳고 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전국 235개 대학(캠퍼스 포함)에서 지난해 2학기 전공과목 A학점 비율이 평균 42.2%, B학점 이상은 79.1%로 나타났다. 반면 C학점은 15.3%, D·F학점은 각각 2.8%다.

얼마 전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조사결과에서도 서울대의 전공과목 A학점 비율은 10년 새 12%P 올랐고, 지난해 2학기에는 사상 최고점(48.7%)을 찍었다. 대학가에는 ‘충격적’이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언론이 학생들의 ‘학점 세탁(재수강, 수강 포기 등으로 높은 학점을 만드는 일) 현상’까지 얽어매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학점 인프레’ 논란이 반복되면 대학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라는 ‘양날의 칼’만 꺼내 보일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자료사진: 지난 1학기 중간고사 기간, 한성대 학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고 있다.

사진: 최성욱 기자

 

지역거점 국립대도 A학점 40%
상대평가 제도와 성적입력 전산화 등 갖가지 규제 장치에도 불구하고 A학점은 규정을 초과해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전공과목에도 상대평가제를 도입하고 있는 대학은 A학점을 30% 이내, A학점을 포함한 B학점의 허용범위를 50% 선에서 묶어놓았지만 학사 규정과 비교, 10%를 훨씬 웃도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2학기, 서울지역 주요 대학의 A학점 비율은 서울대(48.7%), 한양대(46.5%), 연세대(42.9%), 고려대(40.5%), 동국대(40.4%) 순으로 40%를 넘었다. 경희대(39.9%), 건국대(39.8%), 홍익대(39.2%), 이화여대(38.3%) 등도 비교적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들 대학 중 경기도 권역에 캠퍼스를 두고 있는 한양대(안산, 49.4%)와 경희대(수원, 48.4%)는 전체 수강생의 절반이 A학점을 받았다.

지역거점 국립대학들도 40%를 웃돌았다. 소수반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카이스트(46.2%)에서 A학점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종합대학은 충남대(46.2%), 전남대(42.6%), 부산대(42.1%), 경북대(41.2%), 전북대(41.1%), 충북대(40.1%) 순으로 나타나 거점 국립대 6곳 모두에서 A학점 40%선이 깨졌다.

특히 A학점 40%와 A+B학점 80%를 나란히 넘어선 대학들은 ‘학점 인프레’의 온상으로 지목받고있다. 이른바 ‘40-80클럽’이다. 한양대(안산, 49.4%-80.7%), 경희대(수원, 48.4%-84.6%), 서울대(48.7%-82.6%), 충남대(46.2%-80.2%), 부산대(42.1%-81.5%), 동국대(40.4%-81.7%) 등이 있다. ‘A학점과 B학점 합’의 비율이 80%를 넘는 대학은 102곳(43.6%)에 달했다.

서울대 “상대평가 개선하겠다”
‘학점 인프레’논란의 초점이 된 서울대는 전공과목에서 상대평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사실상 절대평가로 운영된다. 성적입력에 학점별 인원 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김명환 서울대 교무처장(수리과학부)은 “전공과목에서 상대평가 제도를 엄정하게 적용하는 것은 교수의 자율권 침해 소지도 있고 학생들이 취업 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며 “상대평가 제도로 재수강이 늘면 교수들의 강의부담도 늘 것이니 연구팀을 구성해서 새로운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프레’ 어떻게 가능했을까
학생의 앞길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심정에서 모질게 평가하지 못하는 교수들이 늘었다. 학점에 인색한 교수에게는 학생들이 금방 ‘피드백’을 가한다. 일부 교수들은 폐강 되는 수모도 겪는다. 이 때문에 학생 평가가 엄정하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학점을 잘 준다고 소문이 나도, 학생들은 토론하고 발표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필기만 하면서 쉽게 학점 딸 수 있는 수업에 몰려간다.” 발표와 토론식 수업 방법으로 서양사를 가르치는 지역사립대의 ㄱ 교수는 “이제 내 수업은 마니아만 듣는다”며 쓴웃음 짓는다.

최근 대학들은 전공과목에도 상대평가를 도입하고 있다. 덮어놓고 ‘학점 인프레’로 단정 짓기 힘든 부분이다. 상대평가 제도에서는 일반적으로 A학점 30%, A+B학점 70% 이내 등 학점 비율에 제한을 두고 있다. 최고 허용 기준과 비교해도 10%를 웃도는 거품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상대평가 제도에서 제외되는 강의다. 소수인원, 실험·실습, 교직, 외국어 과목 일부 등이다. 이때 학생 평가는 전적으로 교수의 권한이다. 모든 과목에서 상대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고려대도 이들 강의의 평가 비율은 A학점 40%, B학점 90%까지 부여할 수 있다.  전체 전공과목 중 A학점 비율이 42.1%로 나타난 부산대는 상대평가한 과목만 꼽아 봤더니 약 10%가 떨어진 31.4%로 집계됐다.

방통대 “교육 질 위해 평가는 엄격하게”
그렇다면 어떤 방안이 가능할까. 황준성 숭실대 교무처장(경제학과)처럼 “어떤 제도든지 학업성과의 우열은 분명히 가려주는 게 학생들에게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엄격한 평가 제도가 자리잡으려면 교수의 교육 충실도를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학점을 가장 ‘짜게’ 준 것으로 나타난 한국방송통신대의 학사관리는 엄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엄격한 절대평가를 고집해 왔다는 김영구 한국방통대 교무처장(중어중문학과)은 “입학생 중 30%만 졸업할 만큼 냉혹한 평가가 가능한 것은 교육에 열성을 쏟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