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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디지털문명 명암 다룬 책들 - 『구운몽01』외
[책들의 풍경] 디지털문명 명암 다룬 책들 - 『구운몽01』외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0.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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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걷힌 디지털, 화려한 의상 뒤로 드러나는 맨살의 상처

TV, 신문지면, 나아가 지하철 광고 공간까지 보이는 곳이라면 모두 점령군처럼 진주한 'e-biz'의 물결과, 속도에 사활을 건 초고속통신 바람은 어쩌면 지금 이곳에서 '문명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방증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자고 나면 신기술로 '대박'을 터트려 일신을 뒤바꾼 새로운 '벤처' 인간들이 등장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 디지털 문명을 예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분위기이니, 어쩌면 지금 이곳이 바로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종로나 광화문에 위치한 대형상업서점에 나가 본 적이 있다면, '디지털'로 묶일 수 있는 冊肆의 풍경조차 얼마나 장사진을 이루는지 한번쯤 경험했으리라. 그리고 그 광경에 적잖이 위축되었을 지도 모른다. 책사의 풍경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둘러싼 선명한 논쟁축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종래의 산발적이며 단속적인 문제제기로는 '급류'를 탄 것처럼 보이는 주류 정보사회론자들의 디지털예찬을 공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백욱인, 홍성태 등 비판적 디제라티(digerati)들이 모여 디지털 문명 비판을 표방하면서 비평지 '구운몽'(Roasted Dream: 안그라픽스 펴냄)을 펴냄으로써, 디지털 문명론은 이제 새로운 격정적인 논쟁의 지대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가장 깊은 목소리를 들어보자. 편집인인 백욱인 서울산업대 교수는 서문인 '디지털 꿈을 구우면서: 디지털 신화와 유토피아'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우리는 신화의 소비와 우상의 숭배가 이데올로기로 고착하여 하나의 사회적 현실로 자리잡는 과정을 드러내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그래서 신화를 깨부수고 다시 현실과 대면하려 한다." 이들은 묵시록적인 전망을 내세워 현실을 수수방관하는 '머리만 좌파'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들은 부정, 저항, 연대라는 기호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그것이 현실에서 살아 움직여서 사람들의 잊혀진 꿈이 다시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고자 한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잘 알려진 리처드 바브룩의 명언, "네트는 금속과 플라스틱, 모래의 불활성적 집합체에 불과하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유일한 생명체는 바로 우리들이다."라는 금과옥조를 바닥에 깔고 있는 이들은 과학과 기술에 걸쳐있는 정치사회적 보수성과 이데올로기에 맞대면할 각오를 지면마다 가득 채워넣었다. 이들이 특집으로 네트 이데올로기 비판을 들고 나온 것도 그 때문. "네트 이데올로기 비판의 진정한 의미는 시대의 현실과 자신의 처지를 새롭게 각성하는 데 있다." 디지털은 이제 베이컨이 지적한 것처럼, 하나의 신비화한 우상이 되어 있다. 서포 김만중이 몽유소설 '구운몽'을 썼을 때, 이 소설의 놀라운 가치가 '꿈속에서 이룬 일들이 오히려 허망하고 꿈에서 깨어나 진정한 삶을 산다는 점'에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눈치챈다면 이들이 이 비정기간행물의 표제를 '구운몽'으로 명명한 전략적 의도를 짐작하기란 쉬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주류 정보사회론에 도전하는가? 사회학자 홍성태 박사의 글 '네트의 혁명 이데올로기 비판: 정보화와 혁명의 수사학'이 그것을 보여준다. 성급하지만, 그의 결론을 들어보자. 그는 이렇게 묻고 있다. 디지털 문명, 과연 새로운 혁명의 시대인가? "과연 무엇이 혁명인가? 빌 게이츠가 세계 최대의 부자가 된 것이 혁명인가? 몇몇 젊은 '벤처 재벌'들이 전통적인 재벌들보다 더 부자가 된 것인 혁명인가? 종래 공공재로 다루어지던 정보재가 갈수록 사유재화하는 것이 혁명인가? 지적 재산권이 갈수록 강화되는 것이 혁명인가? 인간의 유전 정보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생명정보가 사적 소유물로 되는 것이 혁명인가?"라고. 온갖 매체를 통해 일상적으로 선전되고 있는, 특정한 정보사회의 상이 보편적인 것으로 우리의 머리속에 '주입'된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그는 "현실 사회주의의 형태로 전개되었던 체제론적 혁명은 실패했지만 주류 정보사회론자들이 주장하는 문명론적 혁명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다."라고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의 '정보적 확장'을 넘어선 '혁명적 전환'은 오직 생태론적 입장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꿈일 뿐이다."라고 응수한다. 이 도저한 문제 제기에 이르면, 디지털과 경제주의의 접합체인 '디지털 시대'라는 표어가 과잉 수사학임을 알게 된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구운몽'의 주변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디지털은 자유다: 인터넷과 지적 재산권의 충돌'(홍성태·오병일 외, 이후 펴냄)이라든가, '인터넷의 거품을 걷어라'(김상현 지음, 미래M&B 펴냄)와 같은 책들이 그렇다. 디지털 시대가 될 수록 정보 공유가 쉬워질 것이라는 예측의 목소리는 많았다. 그러나 현실은 점덤 더 그 반대가 되어 가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음악파일을 공유하도록 한 인터넷 사이트 냅스터가 저작권 침해로 법원의 '서비스 중단' 판결을 받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지적재산권 강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디지털은 자유다'는 이처럼 인터넷 공간을 둘러싸고 번져나가는 여러 쟁점들을 정보 공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한다. '인터넷 거품을 걷어라'는 올 4월에 첫 선을 뵌 책. 벤처 열풍의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할 때 시류를 정확히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세계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순도 적지않다는 주장. 특히 저자의 경력을 밑천으로 쓰여진 탓에 '실물 비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소개된 '인터넷 거품'(앤서니 퍼킨스·마이클 퍼킨스 지음, 형선호 옮김, 김영사 펴냄)을 연상시킨다. 이 저자들 역시 인터넷 열풍을 사상 최대의 투기적 열풍 가운데 하나로 보았던 것이다.

'실물' 디지털 세계가 노출하고 있는 모순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지금, '구운몽'과 그 주변의 책들은 현실을 긴급하게 재점검하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구운몽'의 문제제기는 주류 정보사회론자들과의 일전을 통보한 셈인데, 이는 단순하게 지켜볼 화제거리가 결코 아닌 듯하다. 거품이 걷히면서 상처나 덧난 맨 살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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