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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경제학의 8가지 구성 원칙, 망상에 불과하다
질서경제학의 8가지 구성 원칙, 망상에 불과하다
  • 이채언 전남대·경제학
  • 승인 2009.09.0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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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민경국 교수의 ‘금융위기의 책임과 주류경제학’(528호 10면)을 읽고

이채언 전남대·경제학

오이켄(W. Eucken)-뢰프케(W. R?pke)의 질서경제학은 현실의 시장경제를 개조하여, 경제변동이나 위기가 없고 평온이 지속되는 이상적 시장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8가지 구성 원칙과 4가지 규제원칙을 제시한다.

8가지 구성원칙이란 (1) 완전경쟁시의 가격시스템을 현실시장에 구현, (2) 인플레나 디플레로 인한 가격왜곡을 예방하기 위한 통화준칙, (3) 보호무역주의를 거부하고, 경쟁제한장치를 금지하는 개방적 자유경쟁, (4) 사유재산제도보장(국유재산제도나 협동조합소유제도도 완전 거부하지는 않는다), (5) 계약의 자유보장, (6) 법정책무(수익을 얻는 자가 손해도 책임지는 원칙)의 강제, (7) 경제정책의 일관성 유지, (8) 위 모든 원칙을 하나의 패키지로 하여 동시에 전부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태생적 한계라 볼 수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불확실성 때문에도 완전경쟁이란 조건은 처음부터 충족될 수가 없다. 특히 금융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과 규모의 경제까지 작용하여 완전경쟁보다는 독점에로의 경향이 더 강하다.

그들의 4가지 규제원칙을 보면 위의 8가지 원칙이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1) 자유경쟁의 결과로 발생하는 독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감시로 시장을 규제할 것(즉, 자유경쟁을 규제할 것), (2)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소득재분배정책으로 정부가 개입할 것, (3) 외부경제나 외부비경제에는 수혜당사자나 가해자가 직접 그 대가를 지불토록 경제총괄계정을 정부가 수립할 것, (4) 노동시장과 농산물시장은 공급법칙이 작용하지 않는 곳이므로 정부가 가격과 물량을 규제할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적 독점까지 막아야 한다면, 현실경제를 중소자본끼리만 경쟁하는 소생산자사회라는 원시적 상태에 만년 묶어두자는 결론에 귀결된다. 이것을 무슨 대단한 경제학인 양, 그것도 4가지 규제원칙은 뒤로 숨긴 채 내세운다면, 민주시민을 우민화 상태에 계속 묶어두려는 간계로 밖엔 볼 수 없다.
이른바 출구전략만 해도 그렇다. 출구전략에 관한 논의 자체를 그들은 경제가 회복되는 징표로 보고 있다. 그들은 ‘출구전략’이란 해괴한 용어부터 의심해봤어야 옳았다.

정책당국자들에겐 생산이나 고용은 나빠도 주식이나 부동산의 가격만 다시 상승하면 경제가 회복되는 것으로 판단하는 고질병이 있다. 그래서 정책당국자들이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고가로 직접 구매해주거나(TARP), 부동산이나 주식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세금혜택이나 대출혜택을 제공해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이 부양되면 바로 그것이 경제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생산이나 고용은 시장에 맡기고 주식이나 부동산은 시장만으로는 안 되니까 정책당국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도 금융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이 애초부터 시장으로서는 불구임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왜 불구인 금융시장은 아예 정리해두지 않고 오히려 국민세금으로 부양시켜주는가. 그들은 금융부문이 살아나야 제조업에 대한 대출이 재개될 수 있고 그래야 제조업이 살아난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자기들의 그 엄청난 손실이 다 매워지기 이전에는 결코 대출을 늘리지 않는다. 그럼 아예 처음부터 금융기관으로 건네지는 돈의 몇 분지 일이라도 직접 제조업에 대출하는 게 더 옳지 않은가. 왜 실패한 금융기관에 벌금을 물리기는커녕 오히려 지원금을 주는가.

정책당국은 하루라도 빨리 금융시장에서 손을 빼야만 도덕적 해이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출구가 없다. 통상의 금융위기이면 값싼 이자로 유동성만 충분히 공급해주면 해결되는데 이번엔 금융기관의 손실이 너무 커 유동성공급만으로는 금융기관의 부채만 증가시킬 뿐 손실은 감소시켜주지 못한다. 그래서 정책당국이 그들의 부실자산을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서 손실을 매워주었다. 경제가 회복됐을 때 되판다는 조건으로 그동안 사 모은 부실자산을 이제는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가 출구전략의 문제로 됐다. 허나 그 부실자산이 독극물(toxic assets)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에 정책당국이 시장에서 손을 빼려는 그 순간 금융시장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가는 금융권 밖의 투자가들이 자기들의 부실자산도 구매해달라고 아우성칠 것이고 개인채무자나 기업채무자는 금융권에 대한 채무상환도 거부할 태세이다. 그래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비상구를 찾아야 하는데 이는 경제적 방식이 아닌 경제외적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난데없이 등장한 신종 플루의 유행을 출구전략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그래서 제기된다(M. Chossudovsky). 방역을 위한 국가비상사태에서라면 국가가 경제생활도 통제할 수 있다. 시장에서의 물자수급을 국가가 관리하고 가격도 강제로 통제할 수 있다. 암거래가 횡행하겠지만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합리화될 수 있다.

자유경쟁이 없어진다고 한탄할지 모르나 어차피 시장경제가 공정경쟁이 아닌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시장에는 질서를 규율하는 사람과 규율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상거래의 표준이나 제품의 기술표준을 정하는 사람과 그 정해진 것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진정으로 공정하고 공평한 게임을 원한다면 시장경제를 운위하기 이전에 먼저 경제민주화부터 성찰해야 한다.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이제 더 이상 답이 안 나온다.

이채언 전남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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