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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怡耕 조요한 선생님을 추모하며
[추도사] 怡耕 조요한 선생님을 추모하며
  • 교수신문
  • 승인 2002.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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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8 18:18:02
김광명 교수 / 숭실대·예술철학

모르는 분에겐 약간 생소하게 들릴 것이나, 조요한 선생님이 즐겨 사용하신 아호가 怡耕이다. 학문과 인생을 ‘기쁘게 밭갈이하는’ 삶의 근본적인 자세를 요약한 말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의미가 늘 선생님의 표정과 자태에 잔잔히 담겨 있다. 필자도 가끔씩 조용히 음미해보는 글귀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잔잔함, 온유함의 이면에는 비리와 불의에 영합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과 꼿꼿함이 숨어 있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해 적당히 얼버무리고 그냥 지나치셨던 기억이 거의 없다. 이는 가르침에서나 행함에서나 한결 같았으며, 후학들에게 본보기가 되셨다.

선생님은 평소에 “그리스 철학과 예술철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다 놓친 실패한 학자”라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이 분이야말로 쉽지 않은 이 두 학문의 영역에 기념비적인 저술과 학풍을 남기신 성공한 학자였다. 더구나 고전철학의 안목으로 예술철학을 탐구하시고 이것을 한갓 서구적 이론에 머무르지 않게 하고 나아가 한국적 조명을 이루어내신 큰 그릇이요 큰 학자였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 있어서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은 종교적 의미와 의학적 의미가 종합지향된 개념으로 본 것으로써 이는 지극히 설득력 있고 타당한 해석이었다.

또한 선생님의 우리 것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애착은 아마도 분단의 비극과 失鄕에 대한 절실한 가족사적 체험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선생님의 학문적 접근과 방법론 및 적극적인 해석은 우리 후학들이 더욱 발전시켜야 할 학문적 과제요, 의무가 됐다. 필자도 이 분의 가르침을 통해 칸트철학의 뿌리에서 예술철학을 일구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인의 고유한 미의식을 조망하여 보편적으로 접근해보려는 학문적 시도를 하고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돌이켜보건대, 요즘처럼 갈등과 불화가 끊이지 않는 어려운 시대에 선생님은 이웃사랑과 관용, 화해와 용서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다. 많은 이들이 선생님을 가리켜 “양심적 기독인, 행동하는 지식인, 정의를 실천하는 학자, 비판적 사회의식의 소유자”라고 부르는, 바로 그러한 분. 필자가 교환교수로 나가 있다가 최근에 들어와 그나마도 이런 일 저런 일 바쁘다는 구실로 찾아 뵙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처럼 타계하시니 너무나 죄스럽고 마음이 착잡하여 슬프고 괴로운 심정이다.

일찍이 會者定離라고 하였으나, 어떤 분이 이야기하듯이 離者定再會하여 生과 死의 하나됨이 곧 다시 뵐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부디 지상의 수고로움을 벗어나 평안하시고 부족한 저희를 굽어살피시길 바라며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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