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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딜레마에 대한 새로운 대안 제시
들뢰즈의 딜레마에 대한 새로운 대안 제시
  • 이택광 경희대·영문학
  • 승인 2009.09.0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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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국제 들뢰즈 학술대회를 다녀와서

제 2차 국제 들뢰즈 학술대회(International Deleuze Studies Conference)가 지난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독일의 쾰른에서 열렸다. 실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본 회의는 3일 동안 진행됐지만, 컨퍼런스와 별도로 개설한 ‘들뢰즈 캠프’까지 치면 도합 8일간을 온전히 ‘들뢰즈학’에 관한 진지한 담론들에 바친 ‘장구한’ 학술대회였다.

국제 들뢰즈 학술대회를 주도한 사람은 영국 카디프 대의 이언 부캐넌 교수다. 부캐넌 교수는 최근 에딘버러 출판사와 연계해서 다양한 들뢰즈 관련 학술서적들을 편집하거나 저술한 소장학자이다. 최근 성균관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부캐넌 교수는 <들뢰즈연구>라는 저널을 창간하고, 오지랖 넓은 행보로 국제 들뢰즈학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들뢰즈의 미학보다 정치학에 초점 맞춰


부캐넌 교수와 함께 이 학술대회를 이끈 학자들은 시라큐스대의 그렉 램버트 교수, 오하이오주립대의 유진 홀랜드 교수, 그리고 조지아대의 로널드 보그 교수다. 물론 매년 개최되는 이 학술대회는 명실상부하게 영미권에서 들뢰즈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카디프대에서 열린 제 1차 국제 들뢰즈 학술대회는 이를 증명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클레어 콜브룩 교수로부터 도로시아 올코우스키 교수까지, 들뢰즈 관련 저서들을 한권씩 상자한 학자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진행 중인 그들의 연구 내용을 엿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주는 일이었다.

이번 들뢰즈 학술대회는 들뢰즈의 철학, 또는 미학이라는 주제보다도 들뢰즈의 정치학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들뢰즈 철학을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실제 사례들을 확인하는 작업들이 이번 학술대회의 특징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관련 주제들에 대한 발표들이 있었는데, 필자의 발표도 그 중 하나였다. 필자의 발표는 한국에서 지금까지 목격할 수 있었던 들뢰즈 수용에 대한 것이었는데, 80년대 이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가시화하면서 기존에 진보좌파의 주류 담론이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보완 내지는 대안으로 들뢰즈를 수용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들뢰즈는 데리다나 푸코의 경우와 달리 처음부터 ‘정치적인 철학자’로 받아들여졌다. 데리다와 푸코가 주로 문학연구를 통해 수용되는 양상이 두드러졌던 것에 비한다면 확실히 특이한 현상이다. 데리다나 푸코의 후기 저작들은 대체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논쟁적 개입이었지만, 한국에서 이들의 정치학이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국적 들뢰즈 수용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발표의 요지였다. 필자의 발표는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상황에 비춰 한국에서 들뢰즈를 정치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이나 실천가들에게 중대한 도전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청중들의 질문들은 구체적으로 들뢰즈가 어떤 측면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들뢰즈의 미시정치학은 마르크스주의와 일시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90년대 이후 전면적으로 제기된 욕망의 문제와 관련해서 마르크스주의적인 사회분석과 들뢰즈의 정치학이 조화롭게 습합을 이룬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까닭은 들뢰즈의 수용이 전일적으로 학계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유+너머 연구소’나 ‘다중지성의정원’, 그리고 ‘철학아카데미’ 같은 민간연구단체를 통해 다방면으로 발생했다는 점 때문이라고 필자는 판단했다. 한국에 들뢰즈가 들어온 경로는 영문학 연구자들, 프랑스 철학 전공자들, 그리고 대학 바깥의 민간단체에서 주도한 세미나 그룹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에서 한국보다 앞서 들뢰즈를 수용했던 일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들뢰즈 용어 번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도 일본의 번역어 참조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일본의 번역어를 개선하기 위한 한국 번역자들의 노력도 분명하게 존재했다.

솔직히 필자는 청중들의 관심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들이 보인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특히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자 일부가 들뢰즈를 수용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보였다. 이런 대체가 단순하게 마르크스와 들뢰즈의 자리바꿈을 의미한다기보다, 마르크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을 들뢰즈를 통해 보완하고자 했던 맥락이 더 강했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들뢰즈 수용은 일종의 징후로 볼 수 있다는 토론도 이어졌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두드러진 것은 특이성의 고원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유사-패널’이라는 세션들을 대거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패널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청자들이 자발적으로 패널을 구성해서 원하는 주제들을 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기본적인 세션을 보충하면서 토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새롭게 기획된 형식으로 참가자들 사이에서 평이 좋았다.

가장 인기 있었던 발표는 유진 홀랜드 교수의 「비선형적 역사유물론: 소수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정치적 함의」였다. 발표장이 비좁아서 넓은 강의실로 자리를 옮겨야할 정도로 발표는 성황이었다. 홀랜드 교수의 발표는 마뉴엘 데란드가 제기하고 있는 비선형적 유물론을 좀 더 정치적인 관점에서 다듬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데란드 식의 유물론이 갖는 한계는 물질운동에 내재한 자율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인데, 결국 이런 설정이 정치의 개입을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홀랜드 교수의 발표는 들뢰즈 철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훌륭한 논의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존재론적 비판, 긍정적 자유개념과 밀접한 관계”


이런 홀랜드 교수의 주장은 부캐넌 교수의 「들뢰즈와 정치적 행동주의」, 그렉 램버트 교수의 「‘전쟁기계’의 개념」으로 이어져서, 구체적인 실천철학으로서 들뢰즈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들로 발전했다. 결국 남는 과제는 혁명적 주체의 문제인 것인데, 엘라 브라이언스가 발표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들뢰즈와 자유주의적 주체: 권리를 넘어, 민주주의를 향해」에서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모색들이 이뤄졌다. 주체에 대한 들뢰즈의 존재론적 비판은 자유주의적 주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부정적이면서 긍정적인 자유의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고전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자유 개념이 아니라 새롭게 주체의 자유를 규정할 수 있는 계기가 들뢰즈에게 있다 것이 요지이다. 브라이언스의 발표는 들뢰즈주의의 딜레마였다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권리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도전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들뢰즈의 정치학을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인 들뢰즈 연구자들의 행보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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