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무엇이든 학생들에게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교수 생활 내내 해왔었고, 아파트를 팔아서 장학금으로 남기자는 것은 이미 몇 년 전에 아내와 ‘합의’가 끝난 일이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정교수의 아내 역시 “40여 년 교직생활 끝나는 마당에 뭐라도 남기면 좋지 않겠느냐”며 흔쾌히 동의했다. 그런데 퇴직 1년을 남기고 이것저것 알아보니 여의치가 않았다. 아파트의 시세도 그렇거니와 장학금으로 남기기에는 은행 이자가 너무 쌌던 것.
아파트의 쓰임새를 고민하던 중 기숙사로 남기는 것이 어떨까 처음 생각한 것은 작년 9월이다. “개강 초부터 지각생들이 많아서 학생들 신상 카드를 들여다보니 1학기에 24명이던 자취생이 2학기에는 34명으로 열 명이 늘어있더군요. 우리 학교에는 타지 학생들이 많은데, 기숙사가 부족해서 대개 자취들을 해요. 힘들게 자취하니 생활에 질서도 없고 지각도 잦았던 것이지요.”
정 교수는 결심이 서자마자 아파트 기증에 대한 법적 절차를 알아보았다. 현행법상 학과기증은 불가능했고, 동창회 기증은 가능했다. 정교수는 동창회장을 불러다가 “잘 운영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학과 교수모임에서도 뜻을 밝히고, ‘놀라는’ 교수들에게 기숙사로 잘 쓰이는지 지켜보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하여 지난 2월 21일은 정 교수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날이었다. 퇴임식과 논문봉정식에 더해 ‘고봉학사’ 증정식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보일러를 고치고 도배와 장판까지 새단장한 고봉학사는 여학생 전용 기숙사로 운영된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두 배 가량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객지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여학생들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라”는 것이, 퇴임식에서 교사로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남긴 그의 마지막 말이다. 졸업생들이 손을 걷고 나서서 후배들 머물 기숙사에 세탁기도 들여놓고 전기밥통도 들여놓았다는 것을 보니, 그야말로 그 교수에 그 제자들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