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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동아시아의 귀환'(백영서, 창작과비평사)
[깊이읽기] '동아시아의 귀환'(백영서, 창작과비평사)
  • 전형준 서울대
  • 승인 2000.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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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복합성 두루 통괄하는 '지적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론

동아시아라는 말이 우리 지식 사회에서 주요한 논제로 떠오른 지도 이제 곧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동안 다방면에서, 다양한 시각과 입장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지만, 대체로 논자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외로움 비슷한 것을 느껴 왔던 것 같다. 그것은 자신들의 말이 지식 사회 일반에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다소 갑작스럽다는 느낌을 주면서 동아시아 논의가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로서는 이 확산이 긍정적인 것으로만은 여겨지지 않는다. 일종의 새로운 유행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흡수되고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며, 무엇보다도 왜 동아시아인가 하는 고뇌가 갈수록 희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발 내지 시작부터 지금까지에 대한 전면적 성찰이 아닐 수 없다. 그럼으로써 이른바 초발심을 되살리고 그것을 앞으로 갈 길을 탐색하는 새로운 출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출간된 백영서 교수의 저서 {동아시아의 귀환}은 그 자체로, 바로 그런 의미의 성찰과 탐색의 모범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아시아론의 주요 논자로 활동해 온 백영서 교수는 이 책에 1992년에 쓴 것부터 최근의 미발표 신고까지 12편의 글을 수록하여, 그가 어디에서 출발했으며 어떤 고뇌와 싸워왔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어떤 상태에까지 도달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출발한 곳은 '중국사를 공부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모색'이라는 자리였다. 지금 그가 도달한 곳은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에 대한 탐색'이라는 자리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씨름한 상대는 주로 국민국가의 문제이다. 동아시아에서 국민국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움직여 왔고 지금 어떤 상태인가. 이 물음들에 대해 그는 중국의 경험을 주된 자료로 삼고 때때로 한국의 경험을 그에 견주면서 천착해 왔는데, 그 천착의 가장 큰 미덕은 사태를 결코 단순화시키는 일 없이 항상 그 복합성을 두루 통찰해낸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도저히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풍부한 고찰이 담겨 있지만, 다소의 폭력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성향이나 특징을 지적할 수는 있겠다. 첫째, 역사의 실제 전개 과정을 사후에 정당화하거나 반대로 전적으로 타매하는 태도를 결코 취하지 않으며 그때그때 나타나고 있던 여러 가능성들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는 점. 둘째, '기억'이라는 개념의 적절한 도입을 통해 통시적인 것들의 공시적 작용에 의미 깊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 셋째, 거시적인 조망과 미시적인 관찰을 균형있게 조화시키고 있다는 점. 저자의 이러한 고찰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 몇 가지를 적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아시아라는 것은 문화적인 것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과 불가분리하게 얽혀 있는 것이라는 점. 둘째, 동아시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세계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 셋째, 기획으로서의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와 중간집단의 역할이라는 점.

국민국가의 틀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오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간략히 말하자면, 저자에게 동아시아는 바로 이 물음을 풀어가기 위해 의미를 갖는다. 최근 필자는, 현재 세계 체제와 국민국가의 관계는 양립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더욱 필요로 하고 서로 더욱 교묘하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결탁하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고 있는데, 이 의문은 저자의 생각과는 다소 다른 듯하지만, 그러나 국민국가의 틀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물음을 놓고 '어떻게'에 집중한다는 점에서는 양자가 만나는 것 같다. 벌써 정해진 분량이 넘었다. 아무래도 표제의 '귀환'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는 지적과 이 책의 본문에서 동아시아론의 진정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발견하고 감동받았다는 고백으로 마무리를 짓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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