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4:15 (금)
“통섭, 듣기 좋은 空論 벗어나 발본적 성찰 필요한 때”
“통섭, 듣기 좋은 空論 벗어나 발본적 성찰 필요한 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8.04 1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예종 공동 학술심포지엄]학문적 통섭과 이념적 통섭

한예종 공동 학술심포지엄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학문-사회간 통섭의 과제와 전망’ 세 번째 시간은 지난달 29일 ‘학문적 통섭과 이념적 통섭’을 주제로 서울대 규장각 대강당에서 네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박영균 서울시립대 교수(철학)가 주제 발표했고, 패널토론자로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고병권 수유너머 연구원(철학), 김소영 한예종 교수(영화이론),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정치학), 심광현 한예종 교수(미학)가 참여했다.

 사람은 제각각이다. 특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이것은 ‘관점’으로 존중된다. 그래야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팔짱낀 존중’보다 적극적인 ‘통찰’의 자세가 필요하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규장각에서 열린 한예종 공동 학술심포지엄 세 번째 마당, ‘학문적 통섭과 이념적 통섭’에서도 ‘통섭’ 논의를 ‘통찰의 자세’로 끌고 갔다. 통찰의 전제는 환원주의에 대한 警戒였다.

 

발표자로 나선 박영균 서울시립대 교수(철학)는 “단순히 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적 교류를 벗고, 이념적 지향성에 바탕을 둔 학문간 통섭”을 촉구했다. 왼쪽부터 박영균 교수,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선임연구원),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 고병권 수유너머 연구원.                                                                                  최성욱 기자

“한국사회 담론의 문제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제각각이라는 데 있다. 예컨대 막스주의는 세상을 계급갈등으로, 생태주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무정부주의는 권력화에 저항하는 개인적 자율성으로 환원한다.”

박영균 서울시립대 교수(철학)는 주제 발표에서 시나브로 진척돼 온 학계의 환원주의적 접근방식을 우려했다. 환원주의는 다시 학문 분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옮아간다. 박 교수의 비판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강압 속에서 강제되는 통합에 맞서 학문 분야 간에 수평적 상호침투를 모색하는 통합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박 교수의 방법론은 역할 나누기다. 인문학이 새로운 가치와 태도, 목적에 대한 성찰적 기능을 제공하면, 자연과학은 이 성찰적 기능 안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갖는 과학적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 결과로 빚어질 정치‧사회적 갈등을 사회과학이 문제제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적 기능이 발현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나치즘은 사유하지 않으면서 만들어진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에 빗대어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문‧사회과학적 시선이 함께 보조를 맞춰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광현 한예종 교수(미학)도 “새롭게 개발하는 소프트웨어에 인간적 가치를 주입할 수 없다면 그 기술을 왜 만드느냐”라고 문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통섭의 맥락에 동의했다.

결국 단순히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적인 교류에서 벗어나 “이념적 지향성에 근거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반성하는 자성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데 학문간 통섭의 목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간 통섭이 학계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패널토론자로 나선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교수사회에서 만연화된 전문가 백치와 자기 불감증을 지목했다. 강 교수는 “‘교수들은 자기 영역이 아니라서 잘 모른다’는 말 한마디면 ‘우물 안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아는 것에서 ‘가짜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관념보다 실천을 강조했다. “이념적‧학문적 통섭을 넘어서서 실천적 통섭, 통섭적인 생활이 안 되면 학문간 통섭은 공염불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가 문제다.”

한편 이날 가장 첨예하게 부딪힌 논점은 ‘이념적 통섭’이었다. 학문적 통섭의 선행개념으로 이념적 통섭 논의를 이끌어 간 박 교수의 논지에 고병권 수유너머 연구원(철학)은 “근본적으로 자족적 개념인 이념이 통섭을 한다는 게 맞는 말이냐”고 문제제기했다. 이어 고 연구원은 “이념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편에 서있는 학문 간에만 통섭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통섭은 공통성을 생산해내려는 것인데 공통성이 전제된 통섭은 단순 분업식 학제적 연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학계에서 학문간 통섭 논의는 듣기 좋은 추상적 담론에 그친다는 비판에 더해 이념적 통섭이라는 연결고리는 통섭 개념을 한층 더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분과화된 학문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도 학문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논의에 일침을 가했다. “근대 이후 학문은 특정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뤄왔다. 역사적으로 불균등하게 발전해 온 학문을 고유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말은 불균등한 학문의 체계를 인정하는 꼴”이라며 “자기가 걸어온 길을 허물면서 통섭을 한다면 스스로 변할 준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한예종 교수(영화이론)도 박 교수가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한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해 “시대적 상황이 달라졌는데 저항적 정치형태를 다시 급진적 민주주의로 말하는 것은 오히려 (구태의연한) 환원주의적인 해결방법”이라며 “통섭논의는 미래를 충실히 준비할 수 있는 사회운동이나 정치형태를 개발하는 측면에서 발본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지막 4차 토론은 오는 5일, 같은 장소에서 ‘예술과 과학의 통섭과 창의성’을 주제로 제3공간과 창의성, 지각-뇌-몸-행위 회로의 통합적 시뮬레이션 등을 논의한다. 심광현 한예종 교수(미학)가 발표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