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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을 쏟은 ‘조절의 미학’ …“학문도 검도도 진검승부”
12년을 쏟은 ‘조절의 미학’ …“학문도 검도도 진검승부”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9.07.14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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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름에 만난 사람_ 이성수 건국대 교수

사진=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거울 앞에서 검 끝을 겨누는 모습이 진지하다. 잠시 후 호구를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한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마에 땀이 맺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검도는 ‘예’의 운동이다. 순간순간 자신을 조절해 상대를 배려하며 움직인다. 이성수 건국대 교수(기계설계학과)의 모습이다.

    여름을 달구는 교수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연구실에서 방학을 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봉사활동 계획을 세우거나 해외출장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열치열’로 여름을 나려는 교수들도 많다. 이성수 교수도 그들 중 하나다. 조금 특별한 것은 그의 검도인생이 12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를 만나기 위해 일산의 한 검도장을 찾은 지난 2일, 그는 지인 세 명과 검도연습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는 오는 9월에 열릴 5단 승단 2차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 10년 넘게 검도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그의 일과 역시 검도와 함께 시작된다. 매일 새벽, 집 근처 검도관에서 홀로 연습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주 한 번 지인들과 연습을 하고, 매주 세 번 지역주민들에게 검도를 가르친다. 연구실과 검도장, 집을 오가는 생활의 연속이다. 이 교수는 현재 건국대 교수협의회 회장, 대학평의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학교업무가 배로 많아졌지만 연습을 소홀히 할 순 없다.

    그는 검도를 시작하기 전 테니스를 배웠다. 일본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과정을 밟으면서다. “일본에 유학을 간 뒤부터 12~13년간 테니스를 쳤어요. 그런데 테니스는 실외에서 하기 때문에 비나 눈이 오면 할 수 없어 아쉬웠죠.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이가 들어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친구의 권유로 검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1998년 1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덧 12년째 검도를 하고 있는 셈이네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난 뒤의 상쾌함과 성취감은 아마 느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거에요”라며 웃는다. “검도를 폭풍구보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의 빈틈을 노려 순간적으로 타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찰나의 틈을 놓쳐선 안 되죠. 검도는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과도 비슷해요. 며칠을 쉬면 반드시 그 영향이 나타나거든요.”

    이 교수는 일주일에 세 번 근처 주민체육센터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검도를 가르친다. 건국대 검도동아리 학생들과도 어울린다. 검도를 가르치면서 그 자신도 배우는 점이 많다. “요즘 대학생들이 협동심이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검도와 강의는 ‘남을 배려하는 일’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검이 지나간 자리는 반드시 베어지게 돼 있죠.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바른 정신과 예절,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잠시 쉬어가도 되련만 오전 10시에 시작한 연습은 어느덧 정오를 향해간다. 계속되는 대련은 실전을 방불케 한다. 이 교수는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대련을 하며 능력이 커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이 아주 커요”라며 끊임없이 올바른 자세에 대해 질문하고 지적받은 사항을 고치고 있었다.

     그에게 학문과 검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부동심’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학문이나 검도나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해요. 나쁜 버릇 하나를 고치기 위해 반년 이상 고민 아닌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이솝우화도 있잖아요. 마흔이 넘어서 검도를 시작한 만큼 단기간에 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꾸준히 열심히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진검승부. 그는 “검도에 진검승부라는 말이 있듯이 검도와 학문 모두 진검승부 하는 자세로 임하고싶습니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이 교수의 여름방학은 늘 그랬듯이 검도연습으로 지나갈 것 같다. 회장을 맡고 있는 전중열 서울산업대 교수 등 70여명의 교수로 구성된 ‘검사회’는 종종 일본에 가서 검도를 배우고 돌아오는데, 이 교수도 참여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승단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계획이다. 그는 검도를 배우려는 교수들에게 “운동 강도를 조금씩 높여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검도는 70~80대에도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육체 건강과 정신수양에 검도보다 좋은 운동은 없죠. 돈이 많이 든다는 인식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진 않죠. 처음에 검도를 시작할 때 주의할 점은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입니다. 연습을 하면서 점차 운동 강도를 높여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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