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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론은 왜 신유물론의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복귀하는가
입장론은 왜 신유물론의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복귀하는가
  • 조주현 계명대·여성학
  • 승인 2009.07.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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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샌드라 하딩 지음, 조주현 옮김, 나남, 2009)를 말하다

필자는 1994년 봄에 이 책을 대학원 수업에 교재로 사용하면서 처음 접했다.  당시 하딩은 입장론을 대표하는 연구자로 국내에 알려져 있었고, 1986년에 이미 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페미니즘과 과학』, 이재경·박혜경 옮김, 이대출판부, 2002)을 통해 넓게는 여성과 과학의 관계, 좁게는 페미니즘과 과학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조망하면서 페미니스트 과학학을 제안했고, 페미니스트 인식론의 세 유형인 경험론, 입장론, 포스트모더니즘 간의 긴장을 보여주면서 페미니스트 입장론의 강점을 설파했었기 때문에, 1991년에 코넬대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는 입장론의 ‘입장’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궁금한 상황이었다. 

이 책에서 하딩의 연구는 상당히 변화했다. 인식론적으로 페미니스트 입장론을 페미니스트 연구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당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진보적 학문 영역들인 페미니스트 정치철학, 서구 근대성 비판(탈식민주의), 과학학의 상호교차 위에 위치지으면서 페미니스트 이론의 범주와 지평을 확장시켰고, 정치적으로는 지구화시대에 더욱 심각해지는 지역간지역내 불평등의 심화 원인으로 서구의 근대성과 제국주의, 그에 따른 서구과학의 불평등성을 지목하면서,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의 연대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과학철학과 인식론을 만들기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사회의 페미니즘은 젠더정치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점이었고, 전통적인 입장론의 시각으로도 충분히 인식론적, 정치적 주장을 펴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타학문영역과의 상호교차라든지 전지구적 맥락에서 탈식민주의와의 연대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은 피부에 와 닿기 어려웠다.  그러나 1997년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급속하게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됐고 사회 양극화의 심화와 함께 여성 양극화가 심화됐으며, 결혼 지연, 이혼율 급증, 출산율 세계최저, 소비사회로의 전환,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분화 등 여성들 간의 차이의 문제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성’ 정체성에 기반하던 젠더정치는 새로운 인식론적, 정치적 논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때 학진에서 2003년 학술명저번역사업으로 하딩의 책을 선정했고 필자는 이 책의 번역을 신청하게 됐다.

페미니스트 입장론은 과학(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개념틀이 서구중산층백인 남성들의 경험세계를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보편적 합리성은 담지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합리성이 젠더적 특징을 보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입장론은 과학이 파생시키는 편파적 세계 그 아래를 볼 수 있으려면 정치적 투쟁의 실천과 페미니즘의 이론이 과학 안에 통합되어야 한다고 보며, 여성들의 삶의 위치에서 연구를 시작함으로써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덜 편파적이고 덜 왜곡된 설명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강한 객관성 개념을 제시한다. 강한 객관성(strong objectivity)은 과학의 객관성을 최대화시키려는 것이다. 그것은 객관성의 기준을 연구과정에만 적용시키는 작금의 객관주의를 약한 객관성으로 보고 그 대신 연구가설들과 가설의 배경을 이루는 문화적 신념들도 조사의 대상으로 포함시킬 정도로 연구의 개념을 넓히는 것이다.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은 문화와 사회제도에 의해 평가절하된 배제된 삶의 관점에서, 즉 이방인들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작한다는 것을 말한다.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간극을 조정하는 생활세계에 위치한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좀 더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내부에 있는 외부인의 관점에서, 또한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한다는 것은 친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연구자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되고 그를 통해 덜 편파적이고(시각이 넓어지므로) 덜 왜곡된 (자민족중심주의를 시정함으로써) 설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페미니스트 입장론과 강한 객관성은 보편타당한 지식, 즉 어떤 위치에도 속하지 않는 지식이란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역사적으로 덜 왜곡된 지식과 더 왜곡된 지식만이 있을 뿐이며, 그 판단의 근거 또한 역사적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딩의 이같이 도전적인 기획은 사실상 수많은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입장론은 충분히 인식론적이지 못하다’는 비판(과학철학), ‘입장론이 너무 인식론적이다’는 비판(지식사회학), ‘입장론이 여전히 ‘여성’ 정체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비판(포스트모던 페미니즘), ‘여전히 서구백인여성들의 간섭주의(paternalism)’라는 비판(탈식민담론) 등이다. 필자는 번역을 하면서 하딩이 각기 층위가 다른 비판들을 수용하고 타협하고 대립하면서 오히려 입장론을 진화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강한 객관성과 강한 프로그램의 차별화(지식사회학에 대해), 여성들의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여성’ 범주를 유지하는 것의 정당화(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대해), 타자의 관점을 내재화하면서도 원주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탈식민담론에 대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고비마다 하딩은 입장론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입장론은 1980~90년대 학계의 ‘언어학적 전환’ 이후,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제2차여성해방운동(70~80년대) 세대의 대표적 인식론인 입장론은 수세에 몰리게 됐다. 아마도 하딩은 제2차세대 이론가들 중 21세기까지 살아남은 극소수의 철학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의 영향 하에 단지 젠더만이 아닌,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지역, 국가 체계들의 상호교차를 통해 배태되는 소수자들의 정치학이 등장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 페미니즘이 구식이 돼 버린 포스트페미니즘의 시대에 서구의 젊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에 의해 제3차여성해방운동이 기획되고 있다.  그것은 페미니스트 이론이 과도한 ‘언어학적 전환’으로부터 벗어나서 신유물론적 입장을 발전시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기획에 하딩의 입장론이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상호교차성과 탈식민담론과의 연대로 진화해온 입장론의 유연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여성학계에서도 하딩의 입장론은 가장 대표적인 연구방법론이자 인식론으로 수용돼왔다. 예컨대 80년대 말에 성폭력에 대한 여성학적 해석을 내놓아 향후 성폭력반대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게 한 것, 90년대 여성관련 법과 제도의 정비 등 여성정책의 기조를 제시한 것 등은 모두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는 가정을 가지고 사회에 문제제기한 결실들이다. 2000년대 들어 ‘여성’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주장한다는 것이 갈수록 어렵게 됐지만, 입장론이 유기체적 변신을 거듭하고 있고 단지 물적인 것만으로도 기호적인 것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모든 현상에는 물적-기호적 분리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인식론으로의 이동은 입장론을 다시 호명하고 있다. 입장론은 신유물론의 관점으로 다시 무대에 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이름 부여받지 못했던 주변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역사의 무대에 세울 수 있게 하는 강한 객관성 개념은 이제 소수자정치의 이름으로 연대하는 다양한 비판학문들에서 페미니스트 입장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조주현 계명대·여성학

필자는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했으며, 『여성정체성의 정치학』, 『페미니즘과 기술』등의 저역서와, 「젠더 정치의 위기」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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