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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장 큰 도전은 세계화 … 대학, 패러다임 전환기 지혜 모아야 ”
“역시 가장 큰 도전은 세계화 … 대학, 패러다임 전환기 지혜 모아야 ”
  • 교수신문
  • 승인 2009.07.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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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총장 기획 좌담_ 대학, 도전과 응전

세계화의 파고를 맞고 있는 대학들. 이제는 국내 대학 간의 경쟁은 무의미한 세상이 됐다.
“적응하기에도 바빴고 뒤따라 잡기에도 힘든 상황” 이었지만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대학총장들이 말하는 대학의 현실진단과 대응 방안을 듣기 위해 밤 늦게 모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총장세미나 자리에서다.
세계화에 대응하는 인식과 방식은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사립대와 국립대의 역할 인식에 따른 특성도 엿보였고, 전공 특성도 묻어 났다. 대응 전략은 인재육성 패러다임 전환, 융복합 연구 강화 등 새로운 노정을 거침없이 걸어야 한다는 '담대한 시도'에서부터 한국의 학문 현실에서 기초부터 튼튼히 하고, 날카로운 현실 비판에서 해답을 찾는 노련함도 공유했다.

일시 : 2009년 7월 1일 저녁 9시30분     ● 장소 : 제주 신라호텔    

참석자 : 김윤수 전남대 총장, 이기수 고려대 총장, 이효수 영남대 총장
사회 :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최영진 주간(중앙대)   ● 사진·정리 :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사회 :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총장님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먼저 총장님들께서는 대학의 오늘을 규정짓는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효수 : 우리나라 대학뿐 아니라 전 세계 대학이 상당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대학은 지금, 패러다임 전환기에 들어서 있어요. 누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학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경쟁질서가 바뀐다는 뜻이니까 새로운 대학의 우열이 가려질 수 있는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중요한 3대 환경 변화는 무엇보다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는 ‘세계화’라고 봅니다. 글로벌 마켓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구하는 인재상이 전혀 달라지고 이에 따른 인재육성 방법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소위 고령화 사회로 일컬어지는 인구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와 지식기반사회로의 이행, 세계화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결국은 사람이 끊임없이 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평생학습시대가 도래한 것인데요. 문제는 이에 걸맞게 대학이 기능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김윤수 : 저도 대학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도전은 역시 세계화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이 갖고 있던 훔볼트적 대학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세계화는 갖가지 갈등도 낳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교수들은 자유와 고독, 한길을 파고들겠다는 의식이 많은데도 압축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굉장히 빨리 변했죠. 서구의 나라들이 200~300년을 거쳐 온 과정을 우리는 30년 만에 거쳐 오면서 실제로 적응하기에도 바쁠 정도였고 뒤따라 잡기에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대학을 이끌어 가는 교수들은 여전히 ‘목가적 연대’를 갖고 있는데 이런 해체를 아쉬워하고, 빠른 적응보다는 대학이 왜 이래야 하느냐고 저항도 하고요. 또 신자유주의가 겹치니까 더 혼란스러운 게 아닐까요. <이코노미스트>를 보니까 고등교육을 ‘브레인비즈니스’라고 하더군요. 두뇌산업의 특징은 몇몇 대학이 전 세계 대학을 지배한다는 겁니다. 지금 한국 대학에 강요하는 모델은 ‘한국모델’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잘 나가는 몇몇 대학을 따라가라는 식입니다. 우리식대로 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울타리를 다 해체당한 상태에서 변화를 강요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기수 :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세계화, 국제화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세계가 일일 생활권이 돼 가고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세계 속의 대학’으로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외국대학과 MOU를 체결하고 교수 교류, 학생 교류는 이미 보편화됐습니다. 저도 미국 MIT와 바이오 메디컬 쪽에 공동연구 협정을 맺고 오늘 아침에 돌아와 대교협 세미나에 바로 참석했습니다.

세계가 하나의 무대로 바뀌면서 한국에서 우리대학끼리의 경쟁은 큰 의미가 없어지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1등을 해봤자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것입니다. 더욱이 정보화는 세계 통합의 속도를 갈수록 빠르게 변화시키고 세계화는 세계 통합의 범위를 갈수록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국제화하면 흔히 외국으로 나가는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인 바우드’ 글로벌도 중요합니다. 세계 석학과 우수한 학생들을 한국으로 불러 모아 한국에서 세계적 수준의 학문을 연구하고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국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우리가 세계의 중심에서 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식정보사회의 평생학습화 현상으로 대학교육체제가 유연화 되고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면서 창의적 인력개발의 전초기지로서의 대학이 요구되고 있다고 봅니다.

사회 : 세계화가 대학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는 말인데요. 대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할 텐데 지금 대학들에게 그런 가능성이나 잠재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이효수 :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또 반드시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떤 문제를 보는 시각이나 가치관, 철학 자체가 바뀐다는 것 아닙니까. 이것을 바꿔야 시스템도 바꿀 수 있고, 문화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시스템과 조직의 문화를 함께 바꿔야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 대통령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지식기반사회로 이행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지식기반사회를 일으키는 게 과연 가능하냐고 말이죠. 과거 산업사회에서 연구개발은 어떤 전통 학문에서 깊이 파고 들어가는 수직적인 것을 요구했다면, 앞으로는 모두 융․복합에서 새로운 프런티어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가 얘기하는 신성장동력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융복합 연구를 위한 훈련이 안 돼 있고 학과 간 벽이 너무 높고 교수들 간에도 연구실 벽이 너무 높은 구조입니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거의 모든 학과에 세미나과목이 개설돼 있어서 세계적인 학자들이 매주 찾아와 세미나를 하고, 심리학, 경제학, 정치학, 심지어 공학하는 교수들까지 참석해 매주 워크숍을 엽니다. 우리 대학도 이런 풍토를 만들어 내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합니다.

사회 : 대학의 변화가 절실하고 그 방향 중의 하나는 융복합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인데요.

김윤수 : 지금은 존재할 것이냐, 아니면 변할 것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정도로 강요와 변화가 대학에 밀려들고 있거든요. 변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뭔가 혁명적인 것이 필요하지만 대학이라는 곳이 구성원의 희생을 전제로 바꿀 수도 없고 바꿔야 하지만 실제 어떻게 발을 들여 놓을 것이냐도 고민이죠.

너무나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융복합으로 가야 한다는 말은 좋지만 쉽지는 않다는 것이죠. 예전에 과학기술정책을 만들기 위해 유럽에 가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교수가 하는 말이 ‘융합, 말은 좋다. 학제간 연구도 참 좋다. 그런데 학자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우산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대가라는 사람들은 더…’ 이런 얘기를 해요.

그래서 학제적 연구나 융합연구의 전제는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개 학자들은 겸손한 마인드가 부족하지요. 본인이 최고라고 생각하니까요. 자신의 학문영역을 버리고 떠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서구에서도 융합연구가 좋긴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힘들다고 얘기합니다. 서구 학자들은 훈련이 많이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힘들어 하더군요. 그래도 융합연구가 되는 게 젊은 연구자들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훈련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대학원 교육과정을 보면 자신보다 똑똑한 제자를 길러내기 보다는 지도교수를 복제하는 형태의 교육이 많지 않습니까. 내 연구실을 떠나 상대방 교수의 연구실로 가보라고 하는 교수가 드물고 내 것만 충실히 해라. 이런 문화가 고등교육뿐만 아니라 전통 한학의 문화에서도 나타나지요. 한 스승을 모셔야지 다른 스승을 모시면 충성심이 없다고 보는 것이죠. 이런 문화를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정말 융합을 해야 하지만 한 스승을 따라야 하고, 한 길을 가야 한다는 문화가 있는 한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이기수 : 지식의 발전 속도가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학부 4년의 교육만으로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미래의 대학은 언제든지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생 교육기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학문의 통섭과 통섭 시대를 효과적으로 선도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교양과정을 혁파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학과별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지요.

사회 : 김윤수 총장님, 임학을 전공하셨는데 학문의 분화와 융합이라는 필연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우리 대학이 안고 있는 도전으로 볼 수 있는데요.

김윤수 : 하버드대학 화학과의 경우를 보면 재직 교수들이 다 노벨상 후보감입니다. 대학원생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특정 교수 밑에 들어가서 배우지 않고 세 학기를 모든 과목의 교수를 경험해 본 뒤 지도교수를 정하도록 합니다. 서울대 정도라면 시도해 볼만한데 언젠가 한 번 제안을 했더니 ‘그럼 내 제자를 어떻게 키우느냐’고 하더군요. 이런 풍토에서 어떻게 학문의 벽을 뚫고 융합을 하겠습니까. 교수님들이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모두가 1등, 최상위층만 보는 것 같습니다. 숲을 봐도 큰 나무, 작은 나무도 있고 잡풀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일류만 봅니다. 잘 되는 것만 보지요. 일류가 있으면 삼류도 있는 피라미드가 돼야 합니다. 미국의 대학도 4년제 대학보다 2년제 대학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피라미드 구조의 상층구조로만 대학들이 지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평가를 보면 전부 연구중심대학이 되려고 하고, SCI 논문이 많아야 좋은 대학이 되고, 아래층에서도 튼튼한 대학이 될 수 있는데 부끄러운 대학으로 보고, 기본이 충실한 대학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유명대학 따라잡기만 하려고 하지 각 대학이 생각하는 철학이 무엇이고, 각 지역 특색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 따라잡기 하면 편하죠. 이렇게 하면 나름대로 평판 유지는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렇게 하면 지식기반사회를 리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너무 위험부담이 큰 게 현실입니다. 이런 갈등이 존재하니까 어려움을 느낍니다.

이효수 : 이전의 관행대로라면 예전엔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만 앞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패러다임 전환이 무섭다는 것이죠. 글로벌 마켓이 형성됐고, IT혁명으로 세계는 하나의 시장으로 빠른 속도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 완성도를 높여가면 갈수록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력은 없는 겁니다. 대구에서 중소기업을 하든, 광주에서 중소기업을 하든, 프랑스 중소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사라지는 겁니다. 이게 글로벌 마켓의 속성입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이런 중소기업에 필요한 지식의 생산자로서 이런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해야 하니까 결국은 지식과 인재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력 자체가 없는 것이 돼 버리죠. 전문대학도 그 영역에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이라고 봅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저도 융복합 연구 활성화 부분은 김 총장님 말씀처럼 대학을 경영하는 총장이 겪는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깨지 못하면 결국은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사라져야 할 운명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 : 그러면 우리 대학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이효수 : 대학의 특화 전략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의례히 대학의 특성화라고 하면, 어느 과를 중점적으로 키우겠다 하는 식의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앞으로 대학의 특성화는 인재를 어떻게 키우려고 하느냐가 아닐까요. 영남대가 육성하고자 하는 ‘Y형 인재’는 인재육성 방법 자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입니다. 저는 4년 동안 1천억 원을 투자해 육성할 계획입니다. 기초교육을 강화하고 국제화 역량은 물론 리더십아카데미 등 교육프로그램을 혁신하고 전폭적인 장학금 지원과 학문영역별로 최고 수준의 교육학습 환경을 구축하는 데도 투자할 예정입니다. 생활체육도 활성화하고요. 이를 통해 인재의 ‘브랜드화’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 대학이 길러낸 인재의 특성이 구분될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특성화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큰 폭의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영남대가 추구하는 특성화는 세 가지입니다. GIFT(Green Innovation For Tomorrow)플랜과 다문화, 바이오 메디컬 분야인데요. 기프트 플랜은 영남대가 민족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대학이 되겠다는 뜻으로 ‘녹색혁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최근에 그린에너지 선도산업 인재양성센터가 선정돼 5년간 250억 원 지원을 확보했고, LED-IT융합산업화 연구센터는 5년간 총 410억 원의 지원을 확보했습니다. 두 센터를 중심으로 녹색성장 분야의 ‘글로컬 이니셔티브’를 구현해 나갈 겁니다.

또 의과대학과 약학대학, 생명공학부, IT 관련 학문 간의 융복합을 통해 바이오 메디컬 분야를 육성할 계획입니다. 지금은 패러다임 전환기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누가 먼저 벽을 허물고 잘 조화시켜 융복합을 잘 해서 새로운 프런티어를 찾아 가느냐 하는 것이 대학의 새로운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전략이 될 것입니다. 다문화도 가치창출의 원천이 될 겁니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다문화 사회 연구의 허브역할을 수행해 대학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를 던져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회 : 어떻게 보면 고려대야 말로 최근에 아주 많이 변한 대학인 것 같습니다. 외형적인 캠퍼스시스템에서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상당히 많은 변화를 주도하고 있거든요. 다른 대학들도 많이 주목하고 있고요.

이기수 : 고려대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대학의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고려대는 처음 대학을 설립할 때의 기본 정신과 세계화 과정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장 취임사에서도 ‘법고창신’의 정신을 강조했는데요. 우리대학이 지향해 나가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대학캠퍼스 구상은 사실 1990년대 초에 김희집 총장님 시절에 마스터플랜이 만들어 진겁니다. 좀 쑥스러운 얘기를 하자면 김희집 총장님이 인재를 참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곧 이사장으로 취임하시는 김정배 전 총장을 당시에 부총장을 맡겼고, 어윤대 전 총장은 교무처장을 맡았고, 저는 학생처장을 맡았고요. 이필상 전 총장도 후반기에 기획처장을 맡았습니다. 김정배, 어윤대, 이필상, 저까지 김희집 전 총장님 시절에 모두 처장을 맡았습니다.

김윤수 : 사립대 총장님들을 보면 사립대가 참 발 빠르게 치고 나간다고 느낍니다. 사실 국립대 총장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겁나고 두렵기도 하고요. 사립대는 탑다운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고 구성원의 반발도 비교적 적은 것 같습니다. 반면 국립대는 상당히 버텀업적인 것을 고려해야 하고 사립대에서 못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 보수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경영하면서 효율성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경영하면서 너무 효율성만 따져서는 안 되죠. 사실 융복합에서 중요한 것이 기초학문인데 기초학문을 무시하고 가버릴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러면 국립대는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민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국립대는 기초학문을 튼튼하게 백업하는 역할을 해야 만이 국립대 나름의 색깔을 갖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지난해에 파우리스먼 비엔나대학 철학과 교수가 쓴 책을 봤는데 현재 대학의 구조개혁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것이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리스트럭션’의 re의 뜻이 ‘리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원래의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 변질된 것을 다시 바로잡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학과 통합 같은 것이 아니라 원래 대학을 왜 만들었는지 돌아보자고 접근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의 원래 기능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었죠.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 시대가 변하면서 변질되고 변색되지는 않았는지, 지금 21세기에도 그 화두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진리 앞에 겸손해야 하는데, 저희들이 겸손하지 못하고 자기영역만 고집하다가 결국은 외부의 힘에 의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닙니까. 섣부른 지식으로 무장하다 보니까 내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다 보니 새로운 학문영역의 출발도 막는 것 같고 발전도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효수 : 저는 세계화를 이해하는 방향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고 보는데요. 지금까지 세계화라고 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얘기해 왔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표현에는 문화의 우월적 사고가 배여 있습니다.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수준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열을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평화로운 세계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영남대가 추구하는 방향이 이런 것인데요. ‘글로컬 이니셔티브’입니다. 항상 세계화와 지역화는 함께 가고, 세계화와 현지화는 함께 간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인도나 중국에 현지 법인을 세우는 과업을 부여받았다면 중국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어떻게 하면 빨리 이해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을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진정한 세계화 아닐까요.

사회 : 패러다임 전환기의 여러 모습에 대해 얘기해 주셨는데 총장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총장의 권한이 너무 제한돼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까.

이효수 : 대학이든, 기업이든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CEO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VIP라고 하지 않습니까. 비전제시능력과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혁신능력, 이것을 해낼 수 있는 열정을 가리킵니다. 이런 VIP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총장에게 권한을 줘야 하지만 제한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사립대는 재단도 있고, 국립대는 여러 가지 간섭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대학의 사정을 말씀드린 겁니다.

김윤수 : 고려대가 개교 100주년 때 대학총장 초청 행사에 당시 총장 대신 참석한 적이 있는데요. 미국에서 온 한 총장의 말이 “총장은 정원사다. 잡초를 뽑아버리는 게 아니라 나무가 있으면 잘 살도록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잡초가 있다고 싹 뽑아버리면 그건 총장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저는 굉장히 상징적으로 들었습니다. 대학운영은 마치 정원사가 정원을 가꾸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그렇다면 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대학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이기수 : 제가 취임하면서 먼저 한 일이 고려대 정신이 무엇인지를 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려대는 418혁명의 정신이 있습니다. 지난 4월 17일에는 관련 세미나도 열었고요. 내년에는 419혁명이 일어난지 50주년이 됩니다. 그래서 고려대 418정신의 50주년 국제심포지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4월 혁명 고대’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의 역사를 정사를 바로 세우는 그런 운동을 대학이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회 : 우리나라 대학교육을 보면 장관이나 국회의원 등 공인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키우는데 는 부족했다고 보는데요. 큰 대학들이 공인의 자질을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기수 : 제가 총장으로 취임한 뒤에 인촌 김성수 선생이 남긴 사자성어 두 개를 총장실 양쪽 벽에 걸어 놓았습니다. ‘공선사후’‘신의일관’입니다. 고대인의 생활철학이 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대 인맥이 안끼는데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늘 강조합니다.

그리고 총장 취임 뒤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교양학부’를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에 재단이 승인을 했습니다. 교양학부를 만드는 목표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문․사․철과 자연과학개론, 사회과학개론 다섯 가지는 기본이고, 두 번째 외국어는 영어는 필수이고, 일어나 중국어 등 제2외국어도 필수입니다. 제3외국어까지 필수로 추진하려다 반대가 있어서 ‘선택’으로 돌렸습니다. 세 번째는 봉사활동입니다. 봉사정신 함양이 중요합니다. 최고의 지성에게는 반드시 최고의 덕성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제로 졸업을 해도 기업에서 못 쓴다고 하니까 ‘인턴십 과정을 통한 실무교육’도 강화할 예정입니다. 

사회 : 최근 약대 신설과 관련해 논란도 많은데요. 지방대에서는 BT분야로 특성화시켜서 발전시켜 나가려고 하는데, 서울지역 대학이 뛰어 드는 것에 대해 우려도 많습니다.

이기수 : 바이오 메디컬분야에 생명과학부와 약학대학이 연구하는 쪽으로 하려고 구상했습니다.

김윤수 : 생명과학은 투자대비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생명과학의 특징은 회수기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재정구조를 가지고 생명과학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도박이고 굉장히 힘듭니다. 어느 대학 총장님은 생명과학 그만하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한 유명 사립대에서 매년 300억 원씩 10년을 투자했는데도 답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대학 교수들은 우리들은 네이처, 사이언스에도 논문을 냈다고 합니다. 대학 입장에서는 3천억 원 가량을 투자했는데 결과가 뭐냐는 것이죠.

생명과학분야는 생각하는 것 보다 오랜 시간 동안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은 IT정도로 생각해서 천억 원 정도 투자하면 국가경쟁력이 확 올라갈 것처럼 보는데 실제로 생명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과학은 특히 의생명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약개발만 하더라도 후보물질을 가지고 동물실험, 인체실험까지 하다 보면, 10년 동안 한다고 하면 수조원이 들어갑니다. 생명과학에 대해서는 투자를 정말 오래 해야 하고, 끈기 있게 해줘야 합니다. 우리는 냄비근성이 있어서…좀 기다리는 게 필요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생명 제약 쪽이 신약개발을 포기했습니다. 미국 쪽에서 나오는 약을 카피 약을 만드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고 보는 거죠. 꼭 신약이 반드시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게 아니다 라고 보는 겁니다. 생명과학은 몇 천억을 투자했는데도 왜 결과가 없느냐며 빨리 결과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논문은 많이 나오지만 경제적으로 실익은 없습니다. 성과가 빨리 안 나온다고 다그칠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사회: 오늘 이 자리가 대학이 처한 현실진단과 대응방안을 공유하면서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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