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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화'로 학술연구의 질 향상 유도
'제도화'로 학술연구의 질 향상 유도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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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3:44:18
학술지 평가 강화와 맞물려 학회들의 바쁜 움직임이 예상된다. 또 각 학회는 학술지 평가사업에 다양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평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포함, 이 문제 전반을 다루려 한다. "

한국학술진흥재단(이사장 김성재, 이하 학진)은 올해부터 국내 학술지의 평가를 강화하기로 했다. 기존 평가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학진이 1998년 하반기부터 국내학술지를 평가해 온 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다. “국제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학술연구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국내 학문의 수준과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학술지에 대한 질 평가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연구자의 학술연구업적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요구된다는 것.
그러나 학진은 자체 평가 결과 일부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2001년까지는 전년도 학회지 첫 호만 제출하도록 돼 있었는데, 일부 학회에서는 이를 악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증빙자료만 잘 준비해 제출하면 등재 또는 등재후보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평가방법에 있어서도 학술지 체계평가와 내용평가로 나뉘는데, 100점 만점 중 40점이 부여되는 체계평가에만 충실하면 등재후보 선정기준 점수인 65점을 쉽게 얻는 사례도 발견됐다. 결국 학회들이 양적 기준에만 부합하도록 심사를 준비해 왔다는 것을 반증한다. 당초 국내 학술지에 대해 질 평가를 하겠다는 학진의 취지와도 배치되는 부분이다.
학진은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올해부터 약간의 변화를 시도했다.<도표 참조>2002년에 한해서 학회지는 전년도 발행 첫 호와 마지막 호를 제출하게 됐다. 이는 첫 호만을 일정한 기준에 합당하도록 편집해 온 관행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기존의 평가방법은 유지하되 각 평가항목에 과락제도를 도입했다. 평가항목당 배점이 50% 미만일 경우 탈락시키는 것이다. 이는 신규 평가를 준비하는 학회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존 등재 또는 등재후보 학회지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또 해마다 제출자료가 바뀔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학회의 움직임은 바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더 이상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편법이 통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편법 통하지 않는 심사과정
이 같은 학진의 새로운 방침은 학술지 평가에 대해 좀 더 공정한 기준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또 단순히 학진 평가에 그치지 않고 대학 사회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볼 때 당연한 수순이다.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학진 연구기반조성2팀의 이영수 팀장은 “학술지 평가의 취지는 학회 지원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강화 배경에 대해서는 “좀 더 기준을 까다롭게 해 학술지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그는 학회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학회장이 바뀌면 업무 인수인계가 안 되는 등 적절한 행정적 체계를 학회가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업무 인수인계가 안 되면 학회 스스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각 학회의 분발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1년까지 통계 조사를 보면, 2천여종의 학술지 중에서 평가를 신청한 학회지는 7백 85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5백 43종만이 등재 또는 등재후보의 자격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팀장은 “신청하지 않은 대부분의 학회는 자신이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 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지방 소재 학회의 현황을 파악하거나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학회들에 대한 실사 작업의 선행이 요구된다. 학술지 평가를 수행한 4년 동안, 일부 학술지만이 평가에 응하고 있다는 것은 학회의 문제이기 이전에 학진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진에 줄서기 현상 경계해야
이런 점에서 홍승용 대구대 교수(독문학)의 지적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문예미학회’를 들며 “우리는 학진의 심사 자체를 거북해 하는 편이다. 교수들이 학진에 줄을 서는 모습이 못마땅하다”고 말한다. 학진의 평가가 교수들이 공부하도록 만드는 측면도 있지만, 자율적·비판적 대안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좋은 평가에만 골몰하는 모습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학진의 목적과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치닫고 있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이 문제는 학진의 국내 학술지 평가 자체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홍 교수는 “평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양적인 것이다. 학문적 평가라는 것은 힘들게 돼 있다”며 “학진은 대학 사회와 학문을 진작시킬 수 있는 최소 조건만의 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등수를 매기고 점수화하는 평가가 아니라 권장 수준의 평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BK21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등급부여 사업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각 대학에서는 교수 업적평가시 등급부여를 기준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름대로 자신 있는 학술지가 C급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신청하지 않은 학회보다 손해를 보게 되는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진은 현재 학회들의 항의도 있고 해서 C급은 발표하지 않고 있다. 올해에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해당 대학 BK지원사업단에게만 공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내 학술지의 경우 B급 이상 학회지와 등재 또는 등재후보와 겹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팀장은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등급부여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이미 교육부에 건의해 놓은 상태”라며 교육부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한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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