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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동물도 식물도 아닌 ‘숲의 청소부’ 버섯이 사는 법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동물도 식물도 아닌 ‘숲의 청소부’ 버섯이 사는 법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07.06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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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들게도 못 얻어먹어 낯바닥에 까슬까슬한 石耳버섯처럼 더덕더덕 달라붙었던 마른버짐(건선,乾癬)을 ‘건 버섯’이라고도 했으니 그 또한 버섯일까. 그럼 늙어 생기는 ‘저승버섯’은? 둘 다 버섯이 아니다. 어쨌거나 괜스레 침 뱉으면 마른버짐 생긴다고 엄마는 언제나 무섭게 타일렀다. “아야, 제발 남한테 침 뱉지 말아라이….” 이렇게 버섯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승에 계시는 어머니를 만난다. 저승길이 대문 밖에 있다하지 않는가. 머잖아 나도 가야할 길인데, 내가 가면 울 엄마가 날 정녕 알아보실까.

    숲에는 푸나무가 단연 주인인데, 곁다리(?) 청설모와 어치(산까치)에다 청아한 소리를 질러대는 휘파람새까지 나를 반긴다. “숲은 큰 나무 하나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독불장군 없다는 말이다! 길섶 후미진 곳에 여태 없었던 버섯들이 느닷없이 수두룩하게 나서 버섯밭을 이룬다. 가까이 다가가 눈여겨 들여다보면 俄然 그 매력에 홀딱 반해 啞然할 따름이다. 와아, 어쩌면 저 어여쁜 것들이 저렇게도…! 현란한 색깔에, 옹기종기 올망졸망 흩뿌려져 있는 것이, ‘숲의 妖精’이란 말이 딱 들어맞다. 모름지기 그것들이 오래 머물지 않고 한나절 살다가 이내 곧 사라져버리니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리라.

   어쨌거나 버섯은 동물도 식물도 아니다. 생물을 끼리끼리 묶어보면 동물, 식물, 菌類(fungus), 세균을 포함하는 단세포생물로 나뉘는데, 의당 버섯은 균류(곰팡이)에 든다. 뭉뚱그려 말하면 버섯이 곰팡이고 곰팡이가 버섯이다. 발가락 사이의 무좀, 이불이나 책갈피에 피는 곰팡이나 가을 松木耳가 다 한통속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식용버섯이 많다지만 다 品格이 달라서 일 송이, 이 능이, 삼 표고, 사 석이로 순서를 매겨 놨다. 그것들이 다 곰팡이류란다!? 참고로 ‘석이버섯’은 순수한 버섯이 아니고, 깊은 산골의 큰 바위에 붙어사는 地衣類(lichen)인데, 이것은 菌類와 藻類가 공생하는 잎 모양을 하는 葉狀植物이다.

    好惡를 떠나서 버섯은 지구 생태계에서 分解者의 몫을 톡톡히 한다. 지구에 사람은 없어도 아무 탈이 없지만(아니다, 없음이 되레 좋음) 버섯이 없으면 큰일 난다. 다 잘 알다시피 생태계는 생산자(녹색식물)와 소비자(동물), 분해자 셋이 서로 어우러져 있고, 분해자는 곰팡이와 세균들로, 그것들은 썩힘(부패)을 담당한다. 썩어문드러지는 것은 진정 좋은 것! 인간이 쏟아내는 똥오줌이나 죽은 시체 따위가 썩지 않고 온통 길바닥에 흐드러지게 널려 나뒹군다면 어쩔 뻔했나. 배설물이나 주검을 치우는 것은 주로 세균의 몫이고, 산야의 죽은 풀이나 나무둥치를 어서어서 썩정이로 삭이는 것은 버섯이 도맡아한다. 아무튼 썩은 물질들은 모두 거름이 돼 식물의 광합성에 쓰이고, 그리하여 돌고 도는 物質循環이 일어난다. 하여 버섯을 ‘숲의 청소부’라 일컫는다. 

   그리고 버섯을 영어로는 ‘mushroom’이라하는데, ‘여성용 밀짚모자’, ‘벼락부자’, 또는 원자폭탄 실험을 했을 때 떠오르는 ‘버섯 모양의 구름’같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럴듯한 비유들이다! 어쨌거나 버섯 홀씨(포자)는 어둡고 눅눅한 곳에서 싹을 틔운다. 홀씨에서 가느다란 실이 뻗어나니 이를 팡이실(균사,菌絲)이라 하고, 균사가 接合해 덩어리를 지워 올라오니, 버섯을 먹는다는 것은 곧 균사 덩어리, 즉 字實體를 먹는 것이다.

    버섯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제일 위에 삿갓 모양의 菌帽(갓), 아래에 자루(대), 그 아래대주머니가 있으며, 갓 아래에는 부채 살 닮은 주름살이 수많이 짜개져 있으니 그 속에 胞子(spore)를 담는다. 갓이 돔(dome)꼴로 둥그스름해서 두꺼운 흙을 쉽게 쑤~욱! 밀고 솟아오를 때 흙의 저항을 줄일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상처 받지 않는 사랑 없듯이 아픔 없는 탄생이 있을 수 없다.

    “못 먹는 버섯 삼월부터 난다”고, 독버섯이 되레 일찍부터 온 사방 설친다. 버섯을 따다먹고(끓여도 독이 파괴되지 않음) 곤혹을 치른다.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한다”고 좀 안다고 뽐내다가 변을 당한다. 독버섯에 든 무스카린(muscarine), 무시몰(mucimol) 등의 독성분이 신경계는 물론이고 간이나 콩팥까지 망가뜨려 놓는다. 옛말 그른데 없다. 예쁜 버섯에 독 있더라! 甘言利說, 口蜜腹劍, 달콤한 말 속에 속임(꾐)수가 들었으매….

   근데 그 포자를 땅바닥이나 나뭇가지가 아닌, 짧은 한살이를 마감한 벌이나 노린재, 매미, 거품벌레, 송충이 등 갖갖이 곤충(벌레)에다 뿌려버리는 것이 있으니 冬蟲夏草라는 버섯이다. 가을, 겨울에는 이들 곤충은 겉으로 보아 멀쩡해 보인다. 冬蟲인 셈이다. 그러나 다음 해 여름에는 어김없이 껍질을 뚫고 풀줄기 닮은 버섯대가 올라오니 夏草가 된다. 티베트의 것이 으뜸이라 하던가. 허나, 세상에 不老不死藥은 없더라.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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