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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는 상품’ 너도나도 랭킹장사
“학교 줄세우기, 교육 도움 안 된다”
‘잘 팔리는 상품’ 너도나도 랭킹장사
“학교 줄세우기, 교육 도움 안 된다”
  • 이의헌 미국 통신원
  • 승인 2009.06.29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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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론사 대학평가는?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대학평가는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발표하는 ‘미국 최고대학(America’s Best Colleges)’랭킹이다. 1983년 시작된 이 평가는 여러 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는 미국 대학 랭킹을 받아서 보도하는 전 세계 언론 덕분에 인지도 상승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이 대학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대학진학 가이드를 발행해 추가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 잡지사는 이에 머물지 않고 고등학교 순위, 미국 병원 순위, 자동차 순위, 직업 순위 등 다양한 랭킹 장사로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의 성공 신화 뒤로 미국에서도 <포브스>, <워싱턴 먼슬리>, <뉴스위크>, <포린어페어스> 같은 몇몇 언론사가 대학평가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서 언론사들이 본업과 큰 상관이 없는 대학평가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쉽게 말해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2007년 12월 기사에서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2007년도 대학순위를 발표한 2007년 8월의 가판대 판매는 평소에 비해 50% 정도 증가했고, 월평균 50만개 정도였던 웹사이트 페이지뷰도 자료 발표 후 3일 동안 1천만 개를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고 보도했다.

1999년 코넬대 로날드 에렌버그(Ronald G. Ehrenberg)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 대학 랭킹이 떨어진 학교는 다음 입학년도에 지원자 경쟁률과 입학생 SAT점수는 낮아지고, 합격생의 입학 포기비율은 올라갔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미국 학생과 학부모의 상당수도 대학의 순위에 연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평가 기관인 개별대학은 대학평가 결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런 관심은 자연스럽게 광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UC리버사이드 대학은 ‘환경산업’을 주제로 다룬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지 2009년 4월호에 ‘의대가 신설된다’는 다소 의아한 광고를 냈다. 광고하단에 나온 ‘우리학교는 2008년도에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선정한 급성장하는 학교 중 하나입니다’라는 안내글귀는 이 광고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국제관계학과에 대한 평가를 2년에 한 번씩 게재하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3~4월호에는 전체 광고의 절반 정도가 국제관계학과 및 국제관계학과가 있는 대학 출판사 광고일 정도다. 

종이매체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언론사 입장에서 대학평가는 학부모와 대학이라는 큰 독자와 광고주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대학평가에 대한 학계와 일반인, 다른 언론의 평가는 냉랭하다.   

2007년도에 미국 내 115개 인문대학 연합체인 애나폴리스 그룹에 소속된 각 대학 총장의 약 80%는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의 미국 최고대학 랭킹에 사용될 ‘타 대학 평가’ 설문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대학평가가 돈이 많은 종합대학에게만 유리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윌리엄앤매리 칼리지에서 주관해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는 <포린어페어스>지의 국제관계학과 평가에 대해서도 국제관계대학원연맹(www.apsia.org)은 ‘각 학교마다 프로그램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랭킹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대학평가에 참여하지 않는 유력 언론사는 대학평가에 대해 보다 강경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역사가 깊고, 돈이 많고, 규모가 큰 대학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폄하했으며, <뉴욕타임스>도 ‘현재의 평가방식으로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이 매년 1~3위를 하는 것이 정해져 있고, 학교 줄 세우기가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학평가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 결과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각 언론사마다 저마다의 기준을 적용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원조 격인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조차 1999년 통계담당자를 바꾸니 5~10위권이던 칼텍이 단숨에 1위를 기록하는 등 객관성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후발주자인 <워싱턴 먼슬리>에서는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와 결과가 다른 것을 자랑할 정도다. 이 언론사 조사에서 1~3위를 차지한 MIT, UC버클리, 펜실베니아주립대는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 조사에서는 각각 7위, 20위, 48위에 머물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에서는 대학평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대형서점에 대학입학 안내서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관련 정보에 대한 소비시장이 크게 형성돼 있어 대학 랭킹 산업의 인기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미국에서 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한 한 유학생은 “학교를 졸업한 뒤에 생각해보니 미국 언론에서 발표한 랭킹이 꼭 맞는다고도 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미국 대학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의헌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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