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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적 실천은 ‘형식’을 배제하고 가능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적 실천은 ‘형식’을 배제하고 가능할 수 있을까
  • 홍지석 객원기자
  • 승인 2009.06.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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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 「나혜석의 풍경화: 여행과 공간의 성의 정치학」(신지영, 제52회 역사학대회 발표논문, 2009)

 

羅蕙錫(1896~1946)

서양화가. 호는 晶月.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1918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함흥 영생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지내다가 3·1운동에 참가 후 체포돼 수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20년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했고, 남편의 도움으로 1921년 서울 경성일보사 來靑閣에서 첫 전람회를 열었다. 서울에서 열린 최초의 서양화전시회로 알려져 있다. 1927년 모스크바를 거쳐 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을 여행하면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견학하고 파리에서는 야수파 계열의 그림을 그렸다. 「가을의 정원」,「娘娘廟」,「天後宮」으로 조선미술전람회와 인연을 맺었다. 유럽 여행중 사귄 최린과의 문제로 1931년 이혼했다. 그 뒤 사회의 인습적인 도덕관에 저항하는 한편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는 글을 발표했으나 사회의 냉대로 점점 소외됐다. 1946년 서울 자혜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인생을 마감했다.

1930년대 초, 나혜석과 나혜석의 작품들.  

우리 근현대사에서 나혜석이라는 작가는 이른바 문제적 개인이다. 이상경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나혜석은 ‘화가로서, 작가로서, 그리고 사상가로서 뚜렷하게 자기세계를 구축하며 근대적 자각을 자의식적인 글쓰기로 드러내 보인 최초의 여성’이며 ‘근대로 변화되는 길목의 조선 사회에 여성으로 태어난 자신의 시대적 운명을 넘어서기 위해 투쟁한’ 선각자다. 특히 페미니스트로서 나혜석의 면모는 시, 소설, 희곡 및 독특한 형태의 수필과 같은 글쓰기에서 빛을 발한다.

    그렇지만 미술 분야에 국한시켜 본다면 “나혜석의 회화에서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회의적인 답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김홍희 경기도미술관장은 나혜석의 유화가 양식적으로 일본식 인상주의와 프랑스식 인상주의를 왕래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유미주의에 경도돼 “페미니즘의 회화적 표출은 없었다”고 단언하며, 김현화 숙명여대 교수는 나혜석의 페미니스트 의식은 “회화가 아니라 문학에서 강하게 표출된다”고 주장해 나혜석의 페미니스트 유화를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논자들도 있다. 예컨대 미술평론가 강태희는 「자화상」(1928), 「소녀」(1931)와 같은 나혜석의 후기 작품들을 독립적 인격체로서근대적 여성 이미지 및 여성교육과 계몽에 대한 신념의 반영으로 해석하며, 미술사가 박계리는 「천후궁」(1926), 「정원」(1931)과 같은 작품들에 ‘고통받는 자궁’이라는 함의가 내포돼 있다고 주장하며 이 작품들을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야만적 폭력의 역사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쟁과 관련, 지난달 30일에 있었던 제52회 역사학대회에서 신지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가 발표한 「나혜석의 풍경화: 여행과 공간의 性의 정치학」은 주목을 요한다. 이 논문이 나혜석의 회화작품들을 ‘여행과 공간의 정치’라는 틀로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재해석할 여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지영의 논지는 이렇다.

나혜석, 「무희」, 캔버스 위에 유채, 51X33cm, 194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여성주의적 함의 간과한 형식주의

    첫째, 오광수의 『한국현대미술사』(1979)로 대표되는 종래의 한국 근현대미술 서술은 형식주의에 경도돼 있다. 양식의 발전 내지는 형식 진보에 주목하는 형식주의 미술사의 패러다임은 모더니즘의 단선적 진보의 신화에 기초한다. 이러한 형식주의 패러다임 하에서 나혜석의 회화는 서구 인상주의의 아류로 기술될 수밖에 없으며 그 속에 내재된 여성주의적 함의는 간과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신지영은 나혜석의 회화가 제작된 구체적인 맥락, 곧 역사적 사회적 컨텍스트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신지영이 말하는 역사적 사회적 컨텍스트란 곧 ‘공간의 性의 정치’다.

    둘째, ‘공간의 성의 정치’라는 틀에서 보면 나혜석의 회화, 특히 이 작가의 풍경화 제작과 관련된 여행 경험에 주목하게 된다. 주지하듯 나혜석은 1913년 일본 동경 여자 미술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경험했다. 또 변호사인 남편 김우영과 결혼해 1921년경엔만주에 살았고 또 1927년부터 1년 9개월 러시아, 프랑스, 영국, 미국 등 구미 각국을 도는 ‘구미 유람’의 기회를 가졌다. 이로써 나혜석은 20세기 초의 조선 여성으로서 흔치않은 경험, 곧 ‘내외법’으로 대표되는 전통 공간의 규범을 가로지르는 경험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경험과 맞물려 제작된 나혜석의 풍경화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풍경화를 전도시켜 보여준다. 즉 나혜석의 풍경화에는 바깥 공간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남성의 시각에 여성의 시각이 겹쳐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무시할 수 없는 페미니즘적 함의를 갖는다.

    셋째, 실제로 나혜석은 국경을 건너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여행의 여성주의적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구미유람은 그녀에게 인생과 예술, 그리고 조선에서의 여성의 삶과 지위에 대한 심각한 여성주의적 성찰의 시간이었다. 이것은이 무렵 발표된 그녀의 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그와 함께 제작된 풍경화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그녀는 내외를 엄격히 구분하는 조선 전통사회의 틀에서 용인될 수 없는 것들을 인류학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형상화한다. 서구의 부부생활, 개방적인 성적태도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무렵 나혜석의 글에는 여름이면 반나의 모습으로 해변으로 몰려드는 스페인 여름 해변, 해가 바뀌는 송년의 밤, 거리에 몰려든 인파가 자정의 종소리에 아무나 껴안고 키스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며, 이렇게 글로 기술한 파리, 물랭루즈, 스페인 해변이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글과 그림에는 한편으로 서구적 삶에 대한 동경이,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사회 여성에 대한 연민이 내재돼 있다. 이렇게 국경을 넘는 여행은 나혜석으로 하여금 공간적 경계뿐 아니라 문화적 경계를 넘게 했다.

    신지영이 보기에 나혜석은 전통사회의 성질서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서구적 풍경화가가 됐고, 새로운 주체에 요구되는 새로운 언어로서 양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근대적 인물이다. 이렇게 얻게 된 새로운 여성주체의 이름이 다름아닌 ‘신여성’이다. 그가 소개한 새로운 섹슈얼리티는 이 때 ‘문명’의 광휘를 업고 있다. “전통사회의 성질서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서는 외부적 힘에 기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나혜석의 회화를 계급적, 또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부르주아적인 것’, 또는 ‘서구지향적’이라고 비판하는 논의들을 간단히 일축해 버린다.

‘무엇’보다는 ‘어떻게’ 그렸는가로

    하지만 나혜석의 예외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신지영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나혜석이 서구 풍경화의 어법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왔을 때 그것은 사회, 정치적 맥락 상, 분명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선택이다. 하지만 지금 신지영이 작품 해석 틀로 그리젤다 폴록의 ‘공간의 정치학’을 가져와 그것을 그대로 나혜석의 작품에 투영할 때, 여기에 자기반성이 내재돼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신지영의 글에 나혜석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섬세한 고찰이 거의 배제된 것 역시 이러한 한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신지영은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 기초해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이미 마련된 답안에 작은 세부를 끼워 맞추는 식의 거친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방식은 내가 보기에 남성적이다) 또 하나, ‘형식’보다는 ‘의미’나 ‘내용’에서 페미니스트적 실천을 찾고자 하는 접근 방식 역시 비판의 여지가 있다. 형식과 내용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해 한쪽에 치우치는 접근 방식 역시 신지영이 비난하는 모더니즘적 접근방식아닌가. 그러니까 신지영의 논의는 나혜석이 ‘무엇’을 그렸는지에 대한 관심을 넘어 그것을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애당초 배제했기 때문에 신지영의 글은 나혜석으로부터 새로운 내용, 그 이상의 것을 찾고자 노력하는 나혜석의 후예들, 오늘날 새로운 여성주의적 어법이나 화법을 모색하는 작가들에게 별다른 시사를 제공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

홍지석 객원기자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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