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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평균값의 오만' 인간은 진화했는가
[깊이읽기] '평균값의 오만' 인간은 진화했는가
  • 최성일 출판평론가
  • 승인 2002.03.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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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8 18:58:11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 읽기는 아주 즐겁고 만족스러웠다. 세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우선, 내가 평소 피상적인 불만을 가졌던 사안의 문제점을 명쾌하게 짚어줬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시사잡지의 창간기념호 지면을 장식하곤 하는 평균적 한국인에 관한 기획기사를 접할 때마다,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허나, 뭐가 잘못된 것인지는 꼭 집어 말하기 어려웠다.
굴드는 어느 집단을 평균값을 통해 나타내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시스템 내에서의 평균값은 언제나 일정하고, 평균은 각 개체의 상황과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이, 소득, 가족의 수 같은 요소가 국민 전체의 평균치에 가장 근접한 사람을 보통의 한국인으로 선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또한, 달러로 환산되는 1인당 국민소득도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하나의 이상형이나 평균을 그 시스템의 '본질'로 추상화하고 전체 집단을 구성하는 각 개체들 사이의 변이를 무시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경향의 방향성을 잘못 읽는 탓이다. 이를 굴드는 무지와 오판의 결과로 파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작위적인 사건에서도 규칙성이 곧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방향성은 용케 맞게 찾아내도 사건의 인과관계를 뒤섞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굴드는 "다수의 안정성이 그 집단의 중요한 특징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말은 맞는 셈이다.

'풀하우스'에는 요즘 내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화두가 등장하기도 한다. 톨스토이는 어떤 물건이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면, 그 물건 없이도 사회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하여 완성된 어떤 물건이 사람을 해칠 경우, 그것이 아무리 쓸모가 있더라도 없애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굴드가 "옛 질서를 필연적으로 파괴할 수도 있는 기술적 '진보'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보기로 거명한 몇몇 훌륭한 사회의 사례 중에서 부적절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나의 화두를 곱씹어 보기에는 충분했다. 아울러,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지구와 접촉하지 않는 까닭에 대한 해명 가운데 굴드가 감명 받은 해답도 귀담아 들을만하다.

은하계 사이의 우주여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역량이 사회적 도덕적 제약을 뛰어넘어 파괴를 부르는 위기의 시대를 잘 극복해야 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다윈 이후'(범양사출판부, 1998)부터 굴드의 팬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책만큼 좋아하는 야구 이야기를 잔뜩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야구에 관한 내용은 '풀하우스'의 주제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당의정이다. 하지만, 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가, 에 대한 탐구는 그것 자체로 설득력이 있다.
굴드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자가 자취를 감춘 것은, 흔히 생각하듯 타자들의 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굴드는 외려 야구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때문으로 풀이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논증한다. '4할 타자의 전멸'과 짝을 이루는 '생명에서 진보란 무엇인가'란 주제에 대해서도 상식을 거스르는 결론을 내린다.

생명의 진보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실체는 "단순하게 출발점에서 멀어지는 무작위적인 움직임"일 따름이다. 또, 인간을 진화의 정점에 놓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짓이다. 종의 숫자와 서식 분포를 기준으로 가장 성공한 포유류는 쥐, 사슴, 박쥐들이다. 시야를 좀더 넓히면, 박테리아가 "우주의 보편적 생명 형태를 대표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가 굴드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해박함 때문만은 아니다. 번역문을 통해서도 전달되는 아름다운 문장은 굴드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우표 수집가들이 천공 자국의 온전함에 매혹되듯이, 또 스모 선수들이 몸무게 늘이기에 몰두하듯이, 통계 숫자와 시시콜콜한 것을 캐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석에 쇠가 끌려가는 것처럼 야구에 빠져들었다."

최성일/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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