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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왼새끼 禁줄에 ‘고추’ 끼운 뜻은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왼새끼 禁줄에 ‘고추’ 끼운 뜻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06.22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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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꼬마남자의 그것을 ‘고추’라 하지! 민간에서는 장을 담근 뒤 독 속에 붉은 고추를 넣고, 아들을 낳으면 왼새끼 禁줄에다 빨간 고추와 솔가지, 댓잎, 숯을 꽂아 악귀를 쫓을뿐더러 불결한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삼가게 한다. 그렇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한다. 몸은 작아도 힘이 세거나 성질이 모질고 일을 옹골차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느 생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補償, 즉 한 가지가 모자란다 싶으면 다른 것에 뛰어난 점이 언제나 있다.

    고추(hot pepper)는 남아메리카 볼리비아가 원산지로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풀(多年草)다. 학명은 Capsicum annuum인데 屬名 Capsicum은 그리스어의 kapto(맵다)에서 유래했고〔다른 설에 따르면 라틴어 capsa(상자)에서 연유했다고도 함] 種名인 annuum은 '한해'란 뜻이다. 고추는 쌍떡잎식물, 가지科 식물로 식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감자, 토마토, 가지, 담배들이 여기에 속하고, 그것들은 꽃이 서로 닮았다! 다른 말로 비슷한 것들끼리는 생식기가 유사하다. 동물에서도 같은 種(species)은 생식기의 구조가 같아서 宮合을 맞추어 後嗣를 본다.

    오월 초 밭에 300여 그루의 가녀린 고추모를 신명나게 심고나면 내 허리가 아니다. 그러고 나도 뒤치다꺼리가 남았다. 고춧대에 버팀목 대주고, 밑동에 난 곁순 치고, 잔뜩 비료 줘두면 뭉실뭉실 커서 유월이면 Y자로 나뉘어 지는 방아다리 가지가지 사이에 접시처럼 생긴 흰 꽃이 한 개씩 열리기 시작한다. 녹색인 꽃받침은 끝이 5개로 얕게 갈라지고, 꽃잎은 타원형으로 5개이며, 길쭉한 암술 1개에 수술 5개가 가운데로 모여 달린다.

  고추가 많이 컸다. 풋고추 하나에 들어있는 비타민C가 귤의 네 배나 된다고 하더라. 가을도 되기 전에 푸른 풋고추는 늙어(익어)가면서 새빨간 물고추가 되니 그것은 캡산틴(capsanthin)색소가 생겨난 탓이다. 그리고 고추가 매운 맛(실은 맛이 아니고 통각임)을 내는 것은 캅사이신(capsaicin,고추의 속명인 Capsicum에서 따옴)이란 물질 때문이다. 호호 맵다.

얼마나 맵기에 옛날 어른들이 苦草라 했겠는가. 물론 그 매운 맛은 고추가 다른 세균이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나 곤충에 먹히지 않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기방어물질인 것. 때문에 알고 보면 고추, 후추, 겨자 따위는 모두 천연방부제인 것이다.

    근데 어디 거친 땅 푸서리에 잘 사는 놈 있나. 고추는 고온성작물로, 땅이 걸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 잘 자라고, 반드시 輪作을 해야 한다. 거저 얻는 것 없다. no pain no gain, 곡진한 보살핌이 있어야 하니, 곡식은 주인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는 것. 한국의 여러 고추 종류(품종) 중에서 ‘청양고추’가 아주 유명하다. 맵지 않은 고추도 근방에 매운 청양이 있으면 꽃가루가 옮겨 붙어 매워지고 만다고 한다(70%는 타가수분, 30%는 자가수분을 한다함). 고추는 세계적으로 25종이 넘고, 우리가 주로 먹는 것만도 마니따, 부광 같은 보통고추에 꽈리고추, 피망(pimento), 그것을 개량한 파프리카(paprika) 등 여럿이 있다. 고추는 원래 풀(草本)이 아니고 나무(木本)다. 이 땅에 심은 고추는 서리만 내리면 얼어 죽지만 열대지방서는 나무로 자란다.

    새삼스럽게 먹는 타령이다. 사실 우리는 고추 없이는 못 산다. 밥상을 고춧가루로 버무려 놨다. 김치를 비롯하여 깍두기, 나물에도 온통 고춧가루 범벅이다. 그리고 고추장! 말만 들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그 뿐인가. 짭조름한 고추장아찌에다 매콤한 고추씨기름도 내장탕에 넣어 먹는다. 물고추를 따다 햇볕에 말려 마른고추를 얻고, 그것을 가루 낸 고춧가루로는 김장을 한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말린 고춧잎과 무말랭이를 섞어 묻혀먹고, 풋 잎은 쪄서 나물로 무쳐먹으며, 풋고추는 조려서 반찬으로 한다. 옛날 우리는 한 여름 점심엔 곱삶이 보리밥을 찬물에 말고 풋고추를 막 된장에 찍어 먹었다. 서리가 내릴 기미가 보이면 서둘러 끝 고추를 따서 배를 두세 갈래로 짜개 밀가루 옷 입혀 쪄서 가을 햇살에 거덕거덕 말렸다가 기름에 따글따글 볶아 고추부각을 해먹는다.

    익은 고추 하나에 들어있는 씨알을 헤아려본다. 새빨간 고추주머니에 노란 동전이 145개나 들어있지 않은가. 녀석, 참 옹골차다! 고추나무 중에서 큰 축에 드는 놈 앞에 펄썩 퍼지고 앉아서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치켜떠 고추를 낱낱이 헤아린다. 어림잡아 한 그루에 70~80개가! 과연 고추씨 하나를 심어서 몇 개의 새끼 씨를 얻는단 말인가. 계산하면, 145×75=10,875개, 정말 多産이로다! 녀석들은, 다른 곡식들도 그렇지만, 자식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해마다, 철철이 사람들이 정성들여 심어 씨를 받아주니까. 그렇잖은가. 그리고 왼새끼 人줄에 고추를 끼운 뜻도 알만하다!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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