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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전망의 시대, 대안적 세계화 담론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
닫힌 전망의 시대, 대안적 세계화 담론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
  • 서익진 경남대·경제무역학부
  • 승인 2009.06.22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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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울퉁불퉁하다』김성해·이동우 지음|민음사|2009

이 책은 무엇을 말하는가
과거 외환위기를 통해 지금의 위기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와 한국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이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세계가 평평하다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주장이 세계화의 현상적인 일부 단면일 뿐 냉혹한 지구 환경의 현실은 여전히 울퉁불퉁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구조적 권력인 미국이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유럽, 일본, 국제기구 등이 상대적 권력을 행사하며, 주변국인 우리는 불공평한 규칙을 고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강자를 따라가기 위해 규칙을 잘 익힐까만을 고민하고 있는 실상을 지적하고 미국이 말하는 세계화에서 벗어나, 스스로 세계화의 미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상업적 이해가 고려된 것이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평평한’ 세계관에 ‘울퉁불퉁한’ 세계관을 대비시킨 것은 요동치고 있는 오늘의 국제정치 현실과 세계화에 관한 주류 신자유주의와 비주류 대안들 간의 ‘담론 경쟁’을 감안할 때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이 책을 두고서 ‘한국인을 위한 국제정치경제학 교과서’로 자부하고 있지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교과서보다는 입문서로 보는 게 적당할 것이다. 어쨌든 저자들이 언론 전공임에도 다소 생소한 분야인 국제정치경제학의 기본개념들을 쉽게 설명하고,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다뤄내고 있어 일반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글로벌의 탈을 쓴 미국식 지배 담론의 실체-그 내용과 주체-를
드러내주며 한국의 관점에서 대안적 세계화 담론을 모색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념적 성향과 관계없이 학계, 정계, 경제계의 지도자들이 한 번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표방하는 주제의 거창함과 내용의 방대함에 비하면 서평의 지면은 너무나 작다. 해서 저자들이 우리 한국의 지식인에게 던지고 있는 화두를 중심으로 저자들의 용어를 빌어 몇 마디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먼저, 세계화에 관한 것이다. 모든 현상이 그러하듯세계화 역시 양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세계는 평평함과 동시에 울퉁불퉁한 것이므로 세계화 담론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책이 잘 보여주듯 특정 담론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상식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고 또 그렇게 되도록 은밀한 정보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유독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세계를 평평하게 만듦과 동시에 울퉁불퉁한 결과를 초래한다. 자유와 경쟁이 독점과 불평등으로 귀착되는 것은 오늘의 세계 현실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담론을 지지하든 오늘의 세계화가 보여주는 주체 및 구조들의 상호의존성의 정도와 그 속에 숨어 있는 가능성마저 무시할 수는 없다. 평평한 세계관이 지배 담론으로 된 데는 이러한 현실의 덕분일 수 있으며, 울퉁불퉁한 세계관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도 이 점을 무시하고는 실효성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화 과정은 경제적 공간의 확대와 그 공간을 규율하는 게임 규칙의 통일 과정에 다름 아니다. 전자가 국민적 공간의 개방과 경제활동 특히 자본 활동의 자유화를 통해 실현되고, ‘글로벌 스탠더드’라 불리는 게임 규칙은 외형상 UN, IMF, WTO 등 국제기구들에서 논의되고 정해진다. 문제는 개방과 자유화 정책이 외부적으로 강제되는 경우가 흔하며 게임 규칙은 사실상 강자의 힘과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 있다. 이 책에서는 이 점이 규칙을 제정하는 ‘구조적 권력’, 논리적 설득력으로 자발적 맹종을 이끌어내는 ‘3차원적 권력’이란 개념들 그리고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와 국익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는 IMF 사례 등을 통해 웅변되고 있다.

    통상 세계화는 비가역적이고 불가피한 객관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개인과 국가는 여기에 적응하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 기술적 및 경제적 힘들만 고려하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관철되고 있는 특정의-예컨대 신자유주의-세계화는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의 세계화는 국제정치경제를 주도하는 글로벌 세력들의 세계관, 전략 및 실행방식의 산물이다.

달러 헤게모니를 통해 세뇨리지(Seigniorage: 중세 봉건 영주, 즉 ‘Seignior’들이 돈을 찍어 팔았기 때문에 생긴 말로서 기축통화효과, 또는 화폐주조차익을  뜻한다-편집자) 효과를 추구하는 미국, 자본이득(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거래와 타 회사가 만든 산업이윤의 점유를 노리는 M&A 투자 등 地代를 추구하는 다양한 유형의 금융자본이 자신의 목적 달성에 유리한 판짜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식 모델에 내재된 모순이 바로 그 중심부에서 폭발하고 있는 지금 대안적 세계화를 추구하는 세력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전망은 암담하다. ‘담론 경쟁’이 활발해질 것은 당연하지만 ‘게임 규칙’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변화를 추동할 세력이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역시 더 심각한 위기가 재발해 여건이 조성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케인즈가 꿈꾸었던 일국 통화를 세계통화로 사용하는 부조리를 근절할 세계단일통화의 도입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시아의 독자 기금이나 통화를 포함하는 삼극통화체제의 구축과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비민주성을 극복할 글로벌 거버넌스의 개혁만이라도 이번 기회에 달성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음, 이 책은 한국 사회와 학계에 엄중한 과제를 제기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식 편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국적 있는 지식의 생산을 강조하는 저자들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세간의 영어 열풍은 주어진 게임 규칙 하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지만 결코 영어만으로는 세상을 제대로 인식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은 뼈아프다. ‘도구적 지식’에 매몰돼 ‘비판적 지식’이 도외시되고 있다는 지적도 기초학문이 설 땅을 잃고 기술학원으로 전락한 우리 대학들의 현실을 생각할 때 폐부를 찌른다.

 
    경제학계는 반성의 여지가 더 크다. 경제학계의 주류 경제학에 대한 치우침은 도가 지나칠 정도이고, 국제정치경제학에 관한 연구는커녕 관심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는 그런 명칭의 전공도 과목도 없다. 국제정치경제학은 지금까지 국제정치학 쪽에서 주로 다뤄져 왔으며 경제학 쪽에서는 거의 무시돼 왔다. 학계마저 ‘비판적 지식’과 ‘담론 경쟁’을 포기한다면 저자들이 희망하는 ‘지식 주권’의 회복은 요원한 일이 아닐까.

    마무리하자. 오늘의 글로벌 세상은 글로벌 시장이지 글로벌 공동체는 아니다. 세계화는 자본의 세계화이지 노동의 세계화는 아니다. 여전히 국가와 국적은 있고, 대다수 개별 주체들의 운명은 거의 전적으로 일국적 차원에서 결정된다. 심지어 GM 사태가 보여주듯 초국적 그룹과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조차 그러하다는 것을 지금 목도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이미 10여 년 전에 글로벌 기업 대우그룹의 해체와 더불어 경험한 바 있다. 국적 있는 지식과 담론이 새로운 지배 담론 그리고 상식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글로벌화의 구조와 모순을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어야 하고, 국익의 중시가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그것이 동시에 세계 공익에 배치되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서익진 경남대·경제무역학부

필자는 프랑스 그르노블사회과학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IMF 경제위기 직전에 존재했던 발전모델은?」등의 논문과 『세계 자본주의의 무질서』(역서) 등의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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