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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논리실증주의의 허점 밝힌 『추측과 논박』(칼 포퍼 지음, 민음사 刊)
[책산책] 논리실증주의의 허점 밝힌 『추측과 논박』(칼 포퍼 지음, 민음사 刊)
  • 박영태 동아대
  • 승인 2002.03.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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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8 16:57:18

과학에 관한 철학적 논의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철학적 상황에서 과학철학에 관한 아주 귀한 책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이한구 성균관대 교수가 두 권으로 칼 포퍼의 'Conjecture and Refutation'을 번역한 '추측과 논박'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시기적으로는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1963년에 발간됐지만 과학적 방법론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는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다.


과학이론의 본성을 논의하면서 과학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들은 논리실증주의이다. 논리실증주의는 전통철학의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언어의 의미론과 과학의 방법론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발전시켰다. 이들은 현대 과학이론의 체계를 논리적 통사로 간주하고 과학의 방법을 귀납적 방법으로 정식화하면서 과학이론를 정당화하는 인식적 근거로서 검증주의 의미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논리실증주의 주장에 대해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반기를 든 사람이 포퍼이다. 1934년에 독일어로 편찬한 자신의 '탐구의 논리'(1959년에 영역되면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가 된다)를 통해, 포퍼는 의미론으로 제시한 검증주의 이론과 귀납적 방법만으로는 과학과 비과학(형이상학)을 구별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과학의 본성을 올바로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검증주의 의미론은 언어의 유의미성과 무의미성만 구분하기 때문에 명제의 과학성을 설명할 수 없으며, 귀납적 방법만으로는, 이 방법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나오게 되는 귀납적 비약의 문제(전제에 없던 내용을 결론이 포함하게 되어, 전제가 사실적으로 참이라 하더라도 결론이 거짓이 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는 귀납추리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으로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개별 사례들과 일반법칙들의 관계를 조망하여 귀납적 비약의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개별 단칭 서술문이 일반법칙을 거짓으로 만들 수 있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것이 그의 '탐구의 논리'에서 제시한 반증 개념이다. 이러한 포퍼의 주장은 실증적 방법에 의해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지식의 범위를 가능한 지식의 영역까지 확장시켰다는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 특히 영국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탐구의 논리'에서 제시한 반증 개념은, 이후의 논문들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추측과 반증의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에 관한 일련의 논문들과 강연내용들을 1963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나온 것이 바로 '추측과 반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이다. 이 책에서 포퍼는 과학적 방법으로서 귀납적 방법은 논리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반증은 논리적인 연역적 방법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으며, 또한 "과학의 실제 절차는 추측과 함께 작용하며 종종 단 한 번의 관찰을 한 후에도 결론으로 비약하는 것이다"이고, 어느 하나의 이론이나 가설에 대해 "반복해서 행해지는 관찰이나 실험들은 그러한 이론이나 가설에 대해 입증이 아니라 논박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귀납적 방법에 근거한 실증적 방법만으로는 실제 과학을 올바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추측과 반박이라는 부분으로 나뉘어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추측편은 과학적 방법론에 관한 포퍼의 인식론적인 입장을 설명하는 논문들로, 반박편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반박하는 포퍼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한구 교수는 포퍼의 철학을 오래 동안 연구했고 또한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공동으로 번역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하여, 중후한 포퍼의 필치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많이 읽을수록 풍부하게 이해가 더 잘 될 수 있도록 꼼꼼하게 번역을 했다. 또한 이 책의 2권 마지막에는 이 책에서 전개된 포퍼의 철학적 입장을 요약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참조할 만 한다. 다만 여기서 유의해야 하는 번역 용어는 논리실증주의 'confirmation'과 포퍼의 'corroboration'이다. 이한구 교수는 이 단어들을 각각 '입증'과 '확인'으로 번역했지만, 과학철학계에서는 연구자마다 다르게 번역하고 있으며, 약간의 논의가 필요하다.


아무튼 과학철학에 관해서 우리말로 된 책이 많이 없는 현실에서,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잘 번역된 좋은 책이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분량이 방대하여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후학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여 우리말로 옮긴 이한구 교수에게 환호를 보내고 싶다.

박영태/동아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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