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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풍조가 기초학문 붕괴 초래
경쟁풍조가 기초학문 붕괴 초래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9.06.22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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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科, 10년동안 8곳 폐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학과 통폐합 등 대학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순수 기초학문분야의 대표격인 ‘철학과’의 개설 실태가 드러났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5월 현재, 전국 177개 4년제 일반대학 가운데 철학과가 설치돼 있는 대학은 55곳. 지난 1990년대 중·후반 학부제를 도입한 이후 최근 10년 동안 철학과가 폐과된 대학은 모두 8곳으로 나타났다. 부산외국어대는 지난 2001년 문화학과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 2005년에는 영상문화학부로 명칭을 변경했고, 지난 2002년에는 호서대가 철학과를 폐지해 당시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철학과의 폐과 이면에는 학부제가 있다. 호서대는 폐과 이유로 “학부제에서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경원대도 1998년에 철학과를 설립했지만 1999년 정부의 학부제 방침에 따라 ‘역사·철학부’로 바꾼 뒤 2003년에 폐과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청주대다. 올해부터 철학과 신입생 모집이 중단됐다. 1987년에 개설된 청주대 철학과는 처음엔 단독학과로 운영해 왔지만 1999년 학부제를 도입한 이후부터 사정이 급변했다. 청주대 철학과는 일시적으로 2002년부터 2년간 ‘학과제’ 모집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다시 학부제로 돌아갔고 문화철학과로 명칭도 변경했지만 결국 폐과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경산대(2002년)와 수원가톨릭대(2003년), 대구가톨릭대(2007년)도 철학과를 폐과했고, 선문대는 2008년부터 문화컨텐츠학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 같은 실태를 지난 13일 열린 한국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김영균 청주대 교수(철학)는 “정부는 올해부터 학과제로의 전환을 허용했지만 상당수 대학들은 학부제를 고수하고 있다. 아직도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경쟁력 없는 학과들을 구조조정하기 위해 학부제를 고수하는 대학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언론사의 대학평가도 한몫을 차지했다.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이 평가 지표에서 50%를 차지하는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이 취업에 불리한 학과의 인원을 감축하거나 폐과를 유도하고 있다. 또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대학평가 기준이 교수의 연구능력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대외적인 위상을 높이려는 대학들은 이런 평가 기준을 따르게 돼 결국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줄 수 없는 기초학문분야는 매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변질된 학부제와 함께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풍조가 철학과를 포함한 기초학문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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