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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화제의 책]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3.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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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지식인들이 바라본 세계의 위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퓌톤이라는 비단뱀은 자신이 집어삼킨 것의 빛깔로 변장한다. 프랑스말을 하는 미키마우스, 불고기맛 맥도널드 햄버거, 레게 팝음악 등. 벤자민 바버는 문화의 다양성을 침식하는 이 '트로이 목마'들은 시장의 자유, 즉 세계화라는 중심성으로 수렴되는 프리바토피아의 징후라고 말한다. 프리바토피아(Pribatopia)는 사유(Private)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 즉 '사유화의 유토피아'란 뜻이다. 지난 1월에 출간된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는 '원래 21세기를 생각한다'라는 이름으로 르몽드(보다 더 좌파적인) 자매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가 펴낸 연작 기획의 하나를 최연구 포항공대 강사(정치학)가 번역한 것이다. 세계화 비판, 생태적 위기, 새로운 의제설정, 이후의 대안을 주제로 한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마치 '크리쉬나의 수레'처럼 어디론가 마구 달려가는 당대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서구 지식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그들의 어조는 논리이기 이전에 근심이며 성찰이기보다는 성토에 가깝다. 이미 커다란 지적 업적을 남긴 노암 촘스키, 이냐시오 라모네, 그리고 고인이 된 피에르 부르디외,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등. 이들 노석학들은 왜 분기탱천해 있나. 드니 뒤끌로가 말한 하이퍼 부르조아지가 눈길을 끈다. 세계적 다문화주의의 탈을 쓴 하이퍼 부르조아지는 금융, 유통, 제조업 등을 옮겨다니며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권위적 결정과 문화적 기호를 주도하므로, 전통적 시민성을 옹호하는 국내 부르주아나 단순한 국제적 부호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이다. 대량살성형 생화학 무기의 위험(쥘베르 아쉬카르), 자기 자신을 먹는 후기자본주의의 생태학적 패러독스(드니 뒤끌로), 네트워크와 인터넷 담론 이면의 이데올로기(뤼시앙 스페즈) 등은 충격적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전지구적 문제에 대한 인식과 새로운 사회운동을 위한 노력, 즉 연대이다. 하지만 유럽이 나서서 신자유주의에 신음하고 패권질서에 고통받는 '세계의 비참'을 치유하자는 부르디외나 베르나르 카생의 제안은 읽는 이로 하여금 명확한 한계 설정과 분명한 현실 인식을 동시에 삼키게 한다. 언제쯤이라야 서구의 양심이나 지식인에게 호소하지 않고도 세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한반도적인 지성의 산물을 어루만져보게 될 것인가.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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