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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청계 刊) 펴낸 구연상 박사
[저자인터뷰]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청계 刊) 펴낸 구연상 박사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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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1 10:16:15
"소스라칠 것만 같았던 거센 공포의 감정이 누그러졌을 때, 공포는 가슴 떨린 두려움으로 탈바꿈되고, 여린 공포에 다름 아닌 두려움이 엷어졌을 때, 두려움은 마음졸이는 불안으로 바뀝니다." 마치 美文으로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에세이의 한 대목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위 문장은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이라는 다소 두툼한 철학서의 서문 일부이다.

'하이데거의 기분 분석을 바탕으로'라는 책 부제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 책은 무엇보다 하이데거 철학의 개념에 충실한 연구서이다. 다만 단순히 그런 책이라면 독자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없을 것이다. 구 박사가 책을 펴낸 동기는 이렇다. "원래 하이데거의 '근본 기본'이란 주제로 논문을 시작했는데, 쓰다가 우리하고는 안 맞는다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기술적 세계가 완전히 지배하는 그리고 기술적 세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그 철저한 합리주의, 도구적 또는 계산적 합리주의가 만연돼 있는 사회는 아닙니다. 기술적 합리성에 바탕한 서구 사회를 모델로 한 경악이라는 기분은 우리 사회와는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하이데거 철학에 충실하면서도 그 한계를 직시하면서 넘어서고자 했던 것.

그런데 이 책은 의례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철학 연구서로 그치지 않는다. 독특한 개념어를 사용하거나 기존의 철학적 글쓰기의 문장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 "저의 글쓰기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삶의 구조를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서 드러내보자, 또 하나는 우리의 삶을 가능하면 우리의 말로 개념화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상적 용어들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추상화 해서 개념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썼던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를 분석해봄으로써 '타인의 시선'이라는 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을 추상해내죠. 저 역시 두려움이나 불안 등 그 각각의 사태 속에서 그 사태를 가장 적절히 보여줄 수 있는 보기를 하나 찾아내려 했습니다. 아주 좋은 보기를 선택하면 이를 바탕으로 해서 분석을 시도할 수 있고 그 분석을 통해서 그 보기를 추상화할 수 있는 개념적인 낱말을 하나 만들 수 있어요. 그 다음부터는 보기가 없어도, 그 개념 자체만으로 사태를 논구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얻게되는 셈이죠. 그렇게 우리말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려 했습니다."

그가 만들거나 번역한 개념어는 독특하다. '무섬거리', '무섬탐', '무섬까닭' 등 여러 파생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 '으름', '뒤탈 가능성', '마음졸임' 등에서 보이듯 우리말로 나타낼 때 확연히 드러나는 사태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새로운 개념어를 만드는 시도에 대해 철학계의 비판도 만만치 않을 듯 싶다. 그러나 구 박사의 시도가 돋보이는 것은 단순히 말바꿈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독특한 사태를 호명하려는 데에 있다.

"번역을 할 때 우리말로 철학하자고 하면, 번역의 문제가 곧바로 드러나게 됩니다. 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문제가 되지요. 번역은 번역 나름대로 고유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다만 우리말로 철학을 하려면 우리말로 할 수 있는 사태를 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연상 박사는 최근 '정보'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가 잠시 빌려쓰고 있는 대학원연구실 책상에는 관련서적들이 빼곡이 쌓여 있다.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보이는 까닭은 정보의 문제가 우리 현실에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며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 박사 스스로는 자신이 꿈꾸는 한국 사회에 대한 철학적 진단을 '절망의 현상학'이라 부르고 있다. "사회가 허용해 준 선물이자 자유의 공간"이라는 그의 글쓰기론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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