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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想하는 자의 의미론적 대화, 그 自身만의 상상력이 아쉽다
夢想하는 자의 의미론적 대화, 그 自身만의 상상력이 아쉽다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09.06.15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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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밖 미술비평_ <5>이가림

시인 이가림과 미술의 관계를 물을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책이 바로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이다. 『꿈꿀 권리』는 이가림의 번역으로  1980년 열화당에서 처음 출간됐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로 출판 중단됐다가 2007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회복저작물 형태로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은 바슐라르의 진귀한 미술론으로 엄혹한 시절, 화가와 조각들에게 “한없이 신선한 생을 샘솟게 하는 몽상의 가치”를 계속해서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

바슐라르가 한국 문학, 예술에 미친 영향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특히 이 책은 그가 직접 미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미술계의 남다른 주목을 받아왔다. 작년에는 파주 헤이리의 한 갤러리에서‘꿈꿀 권리’라는 전시가 개최되기도 했다. 이 전시도록에 실린 한 젊은 작가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꿈꿀 권리』의 의미생성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물질세계는 가시적이고,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통해 받아들이는 세계는 수많은 기억과 이미지가 공존하는 초현실적 세계이다. 일상은 건조한 물질세계이지만, 나의 경험과 상상이 결합된 채로 체험되는 일상은 나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난 건조한 물질세계에 속해있지만, 상상과 경험을 통해 그 건조함을 제거하며 살아간다. 난 그 일상과 상상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고자하는 것은 보다 진실에 가까운 나일 것이다”(화가 서상익).

그림에 한눈팔기 좋아한 불문학자


    『꿈꿀 권리』의 ‘옮긴이의 말’에서 이가림은 바슐라르를 따라 “많이 꿈꾸고 또 깊이 꿈꿀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풍부한 생을 사는 자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단순히 그림에 한눈팔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인 역자가 감히 무딘 펜으로 미술관계 번역에 손을 댄 것은 바슐라르 글의 매력 때문이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이가림은 바슐라르와 모네의 교류, 또는바슐라르와 샤갈의 교류 같은 몽상가들의 다양한 정신적, 정감적 교류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98년 2월에서 1999년 4월까지 <월간미술>에 연재했던 글들을 바탕으로 출간한 『미술과 문학의 만남』(월간미술, 2000)은 그 대표적인 성과다. ‘그림 속의 문학, 문학 속의 그림을 찾아 나선 예술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화가와 시인, 또는 조각가와 소설가의 지적, 정신적, 또는 정감적 교류를 추적한 18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여기서 마그리트와 로브그리예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기발한 연계’라는 제목으로, 마네와 바타이유는 ‘위반과 전복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또 푸생과 솔라레스는 ‘3세기를 뛰어넘는 미학의 발견’이라는 제목 아래 한 데 엮여 있다.

    이러한 몽상가들의 교류를 추적함에 있어 이가림의 관심사는 단지 ‘눈’만이 아니라 여러 감각기관과 상상력까지도 포함한 전존재 간의 의미론적 대화에까지 걸쳐 있다. 특히 ‘파란색의 신비를 찾아 나선 방랑기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콕토와 모딜리아니의 만남을 서술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여기서 이가림은 모딜리아니의 색깔 가운데 유난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이 파란색이라고 주장하며 「파란 눈의 소녀」, 「파란 옷의 소녀」, 「파란 상의의 소년」과 같이 그의 작품에 왠지 청색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음을 지적한다. 특히 연약하고 섬세한 「파란 상의의 소년」에서 이가림은 일종의 우아함이 깃들어 있는 비애감을 느낀다. 모딜리아니는 죽음을 눈앞에 두면서 자유와 무한의 색깔인 파란색의 신비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다 피안의 세계로 떠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모딜리아니의 “눈과 혼과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데생”은 “그의 선과 우리들의 선”이 남모르게 나누는 ‘말없는 대화’가 된다는 콕토의 발언을 참작한 것이다. 이가림이 보기에 콕토의 많은 시들은 이 ‘말없는 대화’를 추구한다. 가령 이가림은 「파란 눈」이라는 제목이 붙은 잔 에뷔테른의 초상 앞에서 콕토의 시 「파란색의 비밀」을 떠올린다.

“파란색의 비밀은 잘 감추어져 있다. 파란색은 피안 저쪽에서 온다. 오는 도중에 그것은 옅어져 산이 되어 버린다. 매미가 거기서 운다. 새들도 거기서 지저귄다. 사실상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감청색이라는 것이 있다. 나폴리에서는 하늘이 물러가고 나면 성모마리아가 벽 구멍에 머문다. 하지만 여기선 모든 게 신비다.
사파이어도 신비, 성모마리아도 신비, 사이폰도 신비, 수부의 저고리깃도 신비, 눈부시게 파란 햇빛도 신비, 그리고 내 가슴을 꿰뚫은 파란 눈빛도 신비다.”(장 콕도, 「파란색의 비밀」 全文, 『미술과 문학의 만남』에서 재인용)

몽상가들의 정신적·정감적 교류 주목


    한편 초현실주의 운동의 동료였던 호안 미로를 “장식과잉과 유희에 빠지기를 잘하고 또 지성의 측면에서 보면 증언의 폭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다”고 비난했던 앙드레 브르통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이가림이 보기에 이러한 비난은 시인 브르통이 화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품고 있는 어떤 선망의 콤플렉스, 또는 이율배반의 감정을 드러낸다. 브르통은 자신이 화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또한 얼마든지 뛰어난 화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림 그리는 작업을 선망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술과 문학의 만남』은 저자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시인·작가들과 미술가들이 장르상의 칸막이를 뛰어넘어 울림과 되울림을 주고받는 행복한 정신적 교감을 추적한” 책이다. 이가림 자신은 이 책을 “그림에 한눈팔기를 좋아하는 한 프랑스 문학도의 화가와 작가, 시인들에 대한 열렬한 교감의 고백록”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유년시절부터 고교시절까지 그림그리기를 꽤나 좋아했고, 프랑스 유학시절 문학을 회화와의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연구한 조셉 마르크 벨베교수의 지도 아래 공부했던 것이 그러한 추적의 동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프랑스 문학을 보다 온전하게, 더욱 더 깊이 있게 읽기위해 미술 분야에 상당한 관심을 쏟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 문학을 보다 온전하게, 더욱 더 깊이 있게 읽기 위해 미술에 관심을 쏟게 됐다”는 발언 속에 이미 내재된 바, 이가림의 관심사는 기본적으로 시인이나 소설가, 또는 문필가의 정신세계와 작품들이다. 그러니까 그는 눈앞에 있는 그림을 볼 때 자신의 눈과 몸으로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슐라르, 콕토, 솔라레스와 아라공, 브르통의 눈과 몸으로 그것을 본다. 예컨대 그는 제리코를, 또는 제리코의 작품을 그 자체로서 만나기보다 아라공의 소설 『성주간』에 묘사된 바로서 만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언제나 민중의 편에 서서 싸웠던 작가 아라공이 창조한 그야말로 순수한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라공에 의해 창조된 인물 제리코의 이미지를 통해서 볼 때 실재하는 화가 제리코의 그 후의 도정이 ‘허구’로서의 소설 속의 도정에 합치됨으로써 진실미를 더 한층 배가시켜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가림, 『미술과 문학의 만남』에서)  

메타비평에서 좀더 능동적 만남으로

    그는 그들이 본 것만을 보고 그들이 느낀 것을 느끼며, 그들이 상상한 것을 상상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자신의 감각기관과 상상력을 통한 미술작품과의 의미론적 대화를 찾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은 엄밀한 의미에서 미술비평이라고 하기보다는 타인의 미술비평에 대한 일종의 메타비평이라고 간주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만남이 좀 더 능동적인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가 번역한 바슐라르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오늘 시인과 판화가가 나에게 똑같은 충고를 한다. 즉 미세화를 무르익게 할 것, 거리를 즐길 것, 모든 깊이를 이용할 것, 조망의 원근은 눈의 역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번갈아가며 생각하며 꿈꾸는 자에게 있어 아무것도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가스통 바슐라르, 『꿈꿀 권리』에서)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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