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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우수학술도서 유감
[문화비평] 우수학술도서 유감
  • 교수신문
  • 승인 2009.06.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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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어디선가 문광부 주도로 ‘우수학술도서’를 선정하는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우수 학술출판 활동 고취 및 지식문화산업의 핵심 기반산업으로 출판산업 육성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이 사업은 올해의 경우 ‘2008년 5월 1일부터 2009년 4월 30일 기간 중 국내에서 초판 발행된 학술도서(전자출판물 포함)’를 대상으로 7월 중에 400종 내외를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이는 국가에서 귀중한 예산을 확보해 학술성 높은 좋은 책을 두루 뽑아 격려하고 지원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인 동시에 더욱 확대돼야 마땅한 공익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중차대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로서의 이른바 ‘우수학술도서’를 선정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당국에서 표방하고 있는 ‘선정방침’의 실효성을 꼽을 수 있겠다. ‘국내 출판 창작 활성화를 위해 창작도서 우선선정(번역도서 선정비율 5% 이내)’, ‘특정출판사의 과다선정 방지 및 다양한 도서의 선정기회 확대를 위해 출판사별 선정종수 제한(5종)’, ‘타 기관에서 이미 우수도서로 선정·지원된 도서는 선정대상에서 제외’,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집계 베스트셀러(50위)는 선정대상에서 제외’, ‘동일저자의 도서가 여러 종 선정대상 후보가 됐을 경우 최종심사위원회에서 1종에 한해 선정’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일률적인 적용기준 때문에 질적으로 함량미달의 도서들이 선정될 수밖에 없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또, 심사위원회 구성에 있어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심사위원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자격기준에 따라 선발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심사과정 또한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먼저 전체 예비심사(1회)를 열어 심사위원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분야별 신청도서 중에서 전문심사 대상 도서를 선정하고, 누락되는 도서가 없도록 각 심사위원별 심사대상 도서를 선택한 후 온라인 시스템에 접속해 심사위원별 1차 심사의견을 작성하게 된다. 이어 분야별 전문심사가 진행되는데, 이때에는 각 분야별 심사위원들이 참석해 전체 예비심사에서 선정한 도서 중 별도의 토론을 거친 후 전체 본심사에 상정할 대상도서를 선정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전체 본심사를 통해 토론 중심의 분야별 전문심사가 2시간 정도 진행된 후 심사위원 전원이 참석해 최종 심사대상 도서를 결정한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심사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 본심사에서 상정된 도서를 대상으로 선정도서의 적정성, 결격사유 등을 최종 확인한 후 최종심사 의결서를 작성, 서명하면 ‘우수학술도서’가 탄생한다.

    실제로 우수학술도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심사위원 1인당 심사해야 할 도서는 적게는 수십 종에서 많게는 100종이 넘기도 한다.

그런데 이를 불과 1주 혹은 2주 이내에 모두 살펴보고 심사의견서를 작성하는 한편, 분야별 전문심사에 올릴 후보도서를 선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나아가 심사위원들이 대개 분야별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학자들이라는 점에서 출품도서들의 저자들과 학연 또는 지연 등 여러 가지 연고로 얽힐 수밖에 없다는 현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공식적인 학술지 논문심사 또는 연구비 지급을 위한 연구계획서 심사 등에 있어서는 신청자의 인적사항이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데 비해 우수학술도서의 경우에는 실물도서가 고스란히 공개됨으로써 저자 인적사항을 쉽게 알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굳이 특정시기를 정해서 신청을 받고 부랴부랴 심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학술도서는 당연히 관련 학회와 해당 분야의 여러 연구자들에게 검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예산범위 내에서 오히려 공신력 있는 등재 학술지를 펴내고 있는 각종 학회를 통해 우수학술도서를 추천받아 심사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수학술도서가 되지 못한 책들 중에 훨씬 우수한 성과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김기태 세명대·미디어창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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