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3:50 (금)
[학술동향] 시민운동 텃밭에서 자라나는 진보담론의 가능성
[학술동향] 시민운동 텃밭에서 자라나는 진보담론의 가능성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론 진영과 시민사회, 만남의 결실"
최근 '창작과 비평' '당대비평', '비평', '사회비평', '인물과 사상' 등 수많은 정기간행물들의 항목에 "시민과 세계"라는 반년간지가 하나 덧붙여지게 됐다. 얼핏 보기에는 '실천지향의 무크지'나 교양지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참여연대 산하의 참여사회연구소(소장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에서 주관해 만들어진 이 잡지의 특색은 뭐니뭐니해도 '시민사회와 학계의 만남'이라는데 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와 함께 공동 편집인을 맡고 있는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는 이 잡지의 탄생 시기에 대해 "이미 2000년 4월경부터 논의가 되고 있었다"고 말한다. '시민과 세계'는 전임 소장이던 박진도 충남대 교수(경제학)가 실질적인 산파역을 맡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빛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동호인의 형식으로 편집진이 갖춰지면서 점차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다양한 층위의 진용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작년 11월의 심포지엄에서 오고간 많은 내용들이 여러 논의를 거쳐 이번 창간호의 주제기획인 '시민, 권력, 민주주의', 또 다른 기획인 '포스트 9·11의 세계체제' 등의 여러 가지 내용적인 결실로 나타나게 됐다.

"이론 진영과 시민사회, 만남의 결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참여사회연구소의 신중식 간사는 "처음에는 연구소 기관지로 시작하게 됐으나 이제는 참여연대나 연구소의 것으로 보기에는 곤란하다"고 잘라 말한다. 다시 말해 이론담론의 활성화를 목표로 한 현재의 모습과 시작 당시의 참여연대의 이론 분과로서의 상은 어느 정도 달라져 있는 것이다.
권두언에서 '시민과 연대'는 "열린 연대를 지향한다"라고 말한다. 홍 교수는 창간의 취지에 대해 "십여년 동안 시민운동은 시민단체가 2만여 개에 다다를만큼 외형적인 성장을 했다. 그렇지만 다 진보적인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층위의 시민단체가 있다. 그만큼 우리는 이론 의식을 갖고 시민 대중의 의식을 상향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즉 이론 진영의 외형적 확장과 실천 단위의 내포적 심화를 함께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열린 연대'가 블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는 우선 기획, 편집 방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동호인뿐만 아니라 '시간과 주제의식만 맞다면' 누구나 기고할 수 있으며 한 달에 한 번씩의 정례적인 편집회의만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공간에서 자체 커뮤니티를 만들어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열린 연대의 지향'은 무엇보다도 인적 구성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편집위원진은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 김균 고려대 교수(경제학), 재야철학자 김상봉 씨,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문순홍 생태연구소장, 전창환 한신대 교수(경제학),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 한홍구(역사학)·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박순성 동국대 교수(경제학) 등 참여연대와의 연관성에 관계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관심을 가진 학계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또한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기획 실장 등 기고자들 중 상당수가 실제 시민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다.
일부에서는 '온건진보 성향 교수들의 동인지'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홍교수는 "진보담론의 이론적 매개를 지향하기 때문에 시민적 진보라면 어떤 진보든 상관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어떤 진보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이론적 실천을 지향하는 진보적 지식인 사회가 시민사회가 만나기 위해서는, 또한 범람하는 정기간행물과 무크지의 홍수 속에서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순수학술지와 저널리즘 사이에서 '시민과 세계' 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홍 교수는 "일단 학술지적인 성격은 지양할 수 밖에 없다"며 엄정한 글쓰기와 대중적 글쓰기 사이에서의 고민으로 아직 내부에서도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에세이적인 비평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기획에 있어서는 "반년간지라는 특성으로 인해 '역사적인 것'과 '시사적인 것' 사이에서 '미디엄 사이즈의 문제 의식'을 어떻게 펼쳐낼 것인가가 가장 관건"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진보 동인지의 전형을 창출해야

그렇지만 편집진과 연구소의 모단체격인 참여연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시민사회는 실천, 학자는 이론'하는 식의 이분법적 역할분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만약 양쪽의 '유기적 결합'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적 모델' 하나가 탄생하는 순간이 되겠지만 아직은 '시민과 사회'의 역할은 의제 설정 이상의 수준은 벗어나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호의 내용으로 살펴 보더라도 시민사회에 대한 입론적인 성격의 글, 가장 '미디엄 사이즈'에 가까운 기획으로 보이는, '9·11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에 대한 창간 기념 좌담, 서평 등이 들어 있지만 이들은 다른 잡지와의 차별성을 느끼게 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많다. 그럼에도 유난히 눈에 띄는 기획은 '참여사회 구상'에 들어 있는 '주민소환제도', '예산참여운동', '사회적 책임투자운동' 등에 대한 제안이었다. 이들 중 몇몇은 이미 시민사회에서 제기된 사항도 있지만 시민사회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정책 대안 혹은 프로그램을 제시함으로써 신선감을 더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시민과 세계'는 시민사회의 진보를 고민하는 이론 진영의 작은 결실로 평가할 만하다. 좀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과거에 '현실과학', '이론과 실천' 등 좌파 동인지들이 걸었던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이념적 편협성과 이론적 관념성을 동시에 극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과 세계'의 '열린 연대'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질문하는 노력을 중단하고 이론과 실천 진영의 기계적 역할분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균형을 추구하는 시각에서 볼 때 '시민과 세계'는 여전히 불안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대화의 실제 내용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소통과 교감과 약속의 새로운 숨길을 열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에토스 또는 정신적 자세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권두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