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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 봄을 부르는 연구실 氣 인테리어
[테마] : 봄을 부르는 연구실 氣 인테리어
  • 교수신문
  • 승인 2002.03.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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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8 15:16:02
이성준/(주) 세원포럼 대표

교수 연구실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대개 이렇다. 빈틈없이 메워진 책장,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인 책상,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공간에 웅크려 연구하는 교수들…. 이미지 뿐 아니라 실제 교수들의 연구실을 살펴보면 온갖 책들과 자료들이 점령해 빈틈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치 종이와 집기에 사람이 눌려있는 듯한 연구실의 형상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공간이어야 할 연구실이 氣가 막힌 채로 방치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연구실이 무조건 넓어야 좋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작고 비좁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공간 에너지의 흐름을 알고 이를 올바로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효율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정하고 기품있는 학문 공간 필요

얼마 전 국내 모 일간지에 뉴욕타임스의 흥미로운 보도 내용이 실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유명한 건축학자와 심리학자, 교육학자들이 교실의 페인트 색깔이나 실내온도, 그리고 자연 채광의 정도에 따라 학업 성취도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 단적인 예를 들자면, 햇볕을 많이 받은 학생은 적게 받은 학생보다 수학은 20%, 독해는 26%나 성적이 좋게 나왔다. 더욱이 교실의 페인트색도 학업 성취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데, 밝은 색 페인트는 뇌의 활동과 호흡 작용을 원활하게 해주고 시원한 색은 근육 이완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렇듯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같은 공간이라도 공간의 이용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아직도 공간 이용에 대해 별 개념이 없고, 설사 안다 해도 활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연의 기와 사람의 기가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라고 해서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기 인테리어란 다름 아닌,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오랜 경험과 思惟를 근거로 한 전략적 공간이용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 인테리어는 특히 환경 변화가 가장 더딘 교수 연구실에 필요하다. 특히 연구실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 역할을 감당하는 책상의 위치는 연구실의 지적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무엇보다 먼저 책상의 위치부터 올바르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 간혹 시든 화분이나 오래된 학술 자료 등을 연구실 구석에 켜켜이 쌓아두거나 온갖 참고 서적들을 책상 가득 쌓아둔 채 오직 학문적 연구에만 몰두하는 교수님들을 본적이 있다.
이렇게 잡다한 온갖 물건들에 둘러 쌓인 공간은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약점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학문을 논하는 자리는 화려하거나 거창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나 곰팡내 나는 해묵은 자료들로 뒤엉켜 있는 공간보다 오히려 화려하지는 않아도 단정하고 기품 있는 공간이 효율적일 것은 너무나 자명할 것이다. 더구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혁신적이고 능률적이어야 할 연구 공간을 이렇게 ‘기가 막힌 채’로 방치한다면 우리의 지적 경쟁력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안타깝게도 그 분별력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땅의 생명 기운을 끌어오라

論語 擁也編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 하였듯이 비록 좁고 넉넉지 못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이렇듯 자연의 숨결이 통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만든다면 능히 “학문을 알기만 하기보다 그리고 좋아만 하기보다 진정 학문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겨진다.
또한 연구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게 중요하다.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실이라고 하여 무조건 참고 자료나 학술 서적들로만 채우기보다 이왕이면 연구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건축을 하고 또한 그 건축물에 영향을 받는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우리가 무심코 이용하는 모든 공간 속에는 우리의 인식 여부와 상관없이 자연의 숭고한 생명 에너지가 작용하며 이 같은 자연 본래의 공간 에너지는 우리의 일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차원의 숨겨진 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겨우내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창가에 머물고 있는 봄의 싱그러운 생명 기운들을 연구실 구석구석까지 불어넣어보자. 이 땅의 생명 기운은 모두가 쓰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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