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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인간다운 경제를 위한 새로운 십계명은 어디서 오나
[북리뷰] 인간다운 경제를 위한 새로운 십계명은 어디서 오나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6.01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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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에 반대한다』 『자연이 경제다』

『문명에 반대한다』존 저잔 엮음│정승현 외 옮김│와이즈북│2009│463쪽

『자연이 경제다』안드레아 베버 지음│박승재 옮김│프로네시스│2009│280쪽

요즘 출판가에는 현대 문명에 근본적으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책이 부쩍 눈에 많아졌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어떤 논리로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지 들어보자. 우선 『문명에 반대한다』는 여러 문명 비판가들의 글을 취합해 재구성한 책이다. 이들은 현대 문명이 인간에게 구석기 시대보다도 못한 시대라며,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몇 대목을 보자. 우선 이 책의 지적에 의하면 구석기인의 신체 상태는 지극히 건강했다. 충치도 없었고, 균형 잡힌 신체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했다는 주장이다.

현대인보다 건강한 구석기인

이는 비단 구석기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저자들에 의하면 원시적인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원주민들은 하루에 2~3시간만 생존을 위한 노동에 종사한다고 한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여가를 즐긴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들을 게으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들은 먹고 사는 것에 지장이 없고, 지극히 평온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원시인들이 가혹한 생존 투쟁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현대인들의 편견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놀라운 대목은 그 뿐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중부지역 세마이 족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고받는 것에 대해 일부러 티를 내고, 비정하게 계산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그것도 당연하게 공유하는 사회의 단면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문명이 시작된 농경사회 때부터 인류는 불행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가장 빈곤한 수렵채집 부족도 현재의 도시 빈민층보다 풍요로운 환경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이들은 질병을 유발하는 장내 박테리아가 농경으로 인한 정착 생활 속에서 증가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물론 수렵채집 부족도 질병을 겪긴 했지만, 현대인처럼 다양한 질병, 게다가 퇴행성 질환까지 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고도의 의학기술과 위생시설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가 만연하는 사회에 함께 모여서 살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게다가 더 벌고, 더 먹고, 더 잘살자는 구호 아래 밤낮으로 몸과 마음을 혹사한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책에 나온 한 가지 예를 더 보자. 인도 안다만 섬의 주민은 악몽 후에는 집에서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호사다.

저자들은 현대인의 불행을 지적하면서 결국은 현대 문명의 이기 자체를 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미련을 문제삼는다. “중독자는 무언가에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다. 그는 텔레비전, 물질, 개인 일상생활, 다른 사람, 정신적 이데올로기에 의존하고, 어떤 명분이나 일에 완전히 몰입한다. 의존할 대상이 사라지면 중독자는 금단 증상, 불안, 고통을 겪는다”는 이유에서다.

이 책은 문명 비판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일부 책들과 달리 풍부한 사례와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루소나 아도르노와 같은 철학자의 글에서 마빈 해리스 같은 인류학자, 존 란다우 같은 예술 비평가 등 다양한 분야, 저명한 이들의 목소리를 엮었다는 점도 이 책의 풍부함을 더한다.

‘지속가능 지구공동체를 위한 생태경제학’이라는 부제를 지닌 『자연이 경제다』는 『모든 것은 느낀다』의 저자인 안드레아스 베버의 두 번째 저작이다. 책의 요체는 자연과 조화 속에서 인간의 삶은 지속가능할 것이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일부 급진적인 생태주의자들처럼 산업과 국가 자체를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는다. 생태계에 경제를 도입해 일종의 생태경제학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는 인위적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 스스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외부 요인들이 우리의 태도를 바꾸도록 계속해서 강요할 것이다. 벌써 석유 가격이 우리를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두 대를 사용하던 가구들 중에 많은 수가 이미 한 대는 집에 세워두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어찌 됐든 간에 우리는 항상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변해야 한다고 늘 외쳐왔다는 점이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오류, 비인간성, 탐욕, 생명을 위협하는 효율성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고자 했다.” 자연에 대해 적대적인 경제 논리와 문명 질서가 결국 우리의 삶을 견딜 수 없는 극단으로 몰고 간다는 진단이다.

저자는 ‘행복의 경제학’, ‘생명을 꾸려 나가는 방법’, ‘인간다운 경제를 위한 십계명’, ‘생명의 정치’ 등의 장에서 현재의 성장 지상주의 경제 모델을 넘어서는 생태 경제학의 구체적 면면을 탐색한다. 특히 ‘인간다운 경제를 위한 십계명’에는 구체적 실천 방침이 제시돼 있어 흥미롭다. 그가 제안하는 십계명은 ‘모든 참여자들의 최대한의 자율’, ‘자연이 조절하는 순환 시스템에 대한 최소 간섭 원칙’, ‘참된 가격과 모든 생명 적대적인 공공단체에 대한 원조 중단’, ‘생명에 해를 입히는 모든 행위에 대한 명확한 제한’, ‘재단과 신탁 관리를 통한 공공재산의 운영’, ‘지속적인 자치권을 가진 작은 지역단체 운영’, ‘자율을 방해하는 조치들에 대한 과세’, ‘자본과 정치의 분리’, ‘생물권 경제와 돈의 결합’, ‘민주주의적 결정의 확고한 구성요소가 되는 미래협의회 설립’이 그것이다.

물론 혹자는 저자의 이러한 제안을 비현실적인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자기 이익을 외면할 수 없는 인간 욕망은 끈질긴 것이고, 거대한 체제를 바꾸는 그럴싸한 경로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저자는 구체적인 실천 전략이나 세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발전시킨 생명의 정치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변혁과 위기 후에 올 새로운 세상을 위한 다음 시대의 모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 시대를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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