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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 ‘렌투스 양식의 미술’(사계절 刊) 펴낸 권영필 교수(미술사학)
[저자인터뷰] ‘렌투스 양식의 미술’(사계절 刊) 펴낸 권영필 교수(미술사학)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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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05 00:00:00



낯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권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 분야를 다루는 또 한 권의 책이 상재됐다. ‘렌투스 양식의 미술’의 저자 권영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미술사학)는 대중의 관심에 대해 이렇게 운을 땠다. “실크로드 관계가 우리 고대사 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또 현대인들은 물질문명사회가 야기한 변화에 대해 뭔가 원초적이면서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실크로드는 고대 유물이 많이 보존돼 있습니다. 접근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가기 어렵다는 난점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옛 것을 간직하고 담지하는 데 좋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은 겁니다.” 실크로드가 마치 ‘무공해식품’과도 같기 때문에 현대인들을 매료시키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실크로드 하면 대개 흥미 위주로 생각하게 되죠. 그러나 전문적인 것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전문적인 내용이면서도 흥미를 갖게 할 수 있는 구성입니다. 독자를 내용 면에서 업그레이드시킬 의무가 전문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를 ‘월반’시켜보겠다는게 권 교수의 포부이다. 그러나 단지 대중교양서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학문적 야심이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대목이 곳곳에 깔려 있기 때문.

“일본의 경우 실크로드 관련 연구목록집이 전화번호부 한 권 분량일 정도로 이 분야 연구가 굉장히 활발합니다. 다만 미술사 분야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이런 사정은 유럽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때문에 미술사 쪽으로 조명해서 분석해 볼 요량이었다는 것. 그러나 단순히 욕심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대개 ‘양식’에 대해 가시적이고 조형적인 변화에만 치중합니다. 즉 공간적으로 양식을 풀이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걸 시간 개념으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스키타이나 흉노미술 같은 경우 시간적으로 상당히 천천히 변화해 왔습니다. 시간 개념으로 본 이런 사실을 토대로, 거꾸로 그네들의 역사나 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역사라고 하면 사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전모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저는 ‘대체문헌’이란 개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술작품이 문헌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지요. 문헌이 보여주지 못하는, 또는 문헌이 없거나 침묵하는 시대나 역사배경을 예술작품이 일구어주고 보증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관심이 단지 미술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막지대의 초원생활은 정주문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자에 비해 외부 자극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 “서구의 경우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으로 한 단계씩 변화해나가죠. 반면 흉노미술 등은 마치 大河가 흐르듯 한 가지 주제를 갖고 천천히 변합니다. 속도를 나타내는 말 중에 ‘렌토’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느리게’라는 그 말의 그리스 어원을 차용해 실크로드 미술을 렌투스 양식으로 불렀습니다.”

현재 ‘중앙아시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권 교수는 앞으로 ‘돈황 벽화 100선’과 ‘동서미술교섭사’를 쓰고 싶다고 전했다. 이 분야는 전세계적으로 아직 통권으로 간행된 적이 없다고 한다. 렌투스 양식을 통해 과거와 현재에 다리를 놓고 있는 권 교수의 연구도 ‘아주 느리게’, 그렇지만 분명한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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