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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흐름 반영한 실험 … 학생들 ‘만족’ 높았는데
융합 흐름 반영한 실험 … 학생들 ‘만족’ 높았는데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6.01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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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부가 문제삼은 한예종 ‘U-AT 통섭교육사업’은?

융합, 복합, 통합, 학제간, 공동연구, 통섭… 학문적 분과주의에서 벗어나 ‘뒤섞임의 상호작용’으로 미래를 선도할 지식과 가치를 만들어 내자는 말이 이리도 많다. 이제 걸음마를 뗀 융·복합 연구는 다양한 학문분과의 학자들이 끊임없는 협력으로 만들어 가는 실험의 장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정기종합감사에서 한예종 미래교육준비단의 ‘U-AT(Ubiquitous Arts & Technology) 통섭교육사업’(이하 U-AT사업)을 ‘부실하다’고 못 박았다.
‘U-AT사업’은 컴퓨팅 기술에 전통음악, 영상, 퍼포먼스 등 여러 예술 장르의 ‘통섭’을 촉진하기 위한 교육과정이다. 한예종은 2007년부터 통섭교육과정 개발 및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해 미래교육준비단(단장 심광현 영상이론과)을 꾸리고 9개의 U-AT 랩과 1개의 연구개발 랩을 운영해왔다. 총 69명의 연구 인력을 배치하고 교육, 연구, 산학협동의 선순환 구조를 꾀했다.

엄밀히 말해 교육의 질 평가는 학생들의 몫이다. ‘과학의 산책’ 수업에서 한예종 학생들이 포스텍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예술종합학교 협동과정


과학과 예술의 조합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한예종의 통섭교육사업에 대해 문광부가 시범연구 1년 만에 전면 철회를 지시했다. 문광부 감사 관계자에 따르면 △카이스트 CT대학원, 한국문화진흥원의 융·복합 사업과 중복 △장관지시 불이행 △학교 기성회계로 편법 사업 재추진 등을 이유로 사업을 전면 재검토 또는 폐지를 권고했다.

문광부의 이번 감사결과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한예종 내부(음악원, 영상원 등 6개원)에서 결합이 가능한 예술 장르간의 통섭은 접어두고라도 짧은 시간에 거둔 대외적 성과를 볼 때 ‘부실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년여의 시범사업기간 동안 한예종은 포스텍, 광운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 해외 7개 대학과 교류협정을 맺고 굵직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미디어 아트의 거장 제프리 쇼, 컴퓨터 그래픽 아티스트 요히치로 가와구치 등 유비쿼터스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을 초청한 ‘isAT2008’(예술-과학기술 융합 국제 심포지움)은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포스텍과 교차 강의도 예술-과학기술 융·복합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면에서 괄목할 만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학생들의 반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12월 한예종 미래교육준비단은 지난해 2학기에 개설한 ‘통섭시범교과’ 8과목, 포스텍 교차강의 수강생 등 총 223명(응답 1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체 수강생의 94%가 ‘통섭의 필요성’에 동의했고, 앞으로 통섭수업이 지속돼야한다는 의견에 97%가 공감했다. 교차강의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다. 포스텍 교수 15명이 릴레이 특강 형식으로 운영된 ‘과학의 산책’ 수업에서 한예종 학생 85%가 ‘만족한다’고 응답했고, ‘만족하지 않는다’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고정휴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는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은 전 세계적으로 사활이 걸린 과업”이라며 “연구 분야라면 평가를 장·단기적으로 할 수 있지만 교육은 다르다. 평가는 학생들의 몫이고 대학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광부는 발전기금 유용 등을 문제 삼아 황지우 총장을 징계 처분 하면서 ‘U-AT사업’ 운영 부실의 책임을 묻자 황 총장은 사퇴를 표명했다. 이 과정에서 이론과 교수들을 둘러싼 ‘색깔논쟁’이 불거지면서 한예종은 ‘교과과정 개편’이라는 수세에 몰려있다.

시민과학센터 소장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과)는 “한예종이 사업을 시작할 때 관련 전문가들이 평가·검증 과정을 거쳤을 텐데, 새 정부가 특정 이념적 잣대로 사업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차제에 ‘융합’ 해봐야 소용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학계에 심어 줄 수 있다”며 우려했다.

한예종은 ‘U-AT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통섭에 관한 공감대를 모으는 데에만 전체교수회의를 네 번이나 거쳤다. 한예종의 특수한 지위를 감안하더라도 정부 행정관료가 교과과정 개편에 개입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다. 김 교수도 “교과과정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토론을 통해서 학계·예술계의 검증과정을 거치는 등 대학 구성원들의 자정 능력에 달린 것”이라며 문광부의 개입을 비판했다.

한예종은 대학 본부, 교협, 동문회, 학부모, 학생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연석회의를 결성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교수들은 ‘U-AT사업’을 두고 “공개 국제 학술대회를 열어 학문적 성과를 논해보자”고 문광부에 제안했다. 그러나 문광부는 “‘U-AT사업’이 처음 국회 심의를 통과했을 때도 (사업 내용이 아니라) 어차피 한예종의 로비에 의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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