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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11년 만에 개정판 선뵌 『제국주의와 한국사회』(경상대사회과학연구원 엮음, 한울아카데미 刊
[화제의 책] 11년 만에 개정판 선뵌 『제국주의와 한국사회』(경상대사회과학연구원 엮음, 한울아카데미 刊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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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3:40:12
“제국주의 국가의 하나인 서독은 동독과 통일했지만 미국의 지배하에 있는 신식민지 한국에서는 민주화와 통일의 발걸음이 너무나 더디다.” 지난 1991년 간행된 ‘제국주의와 한국사회’에서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가 밝혔던 초판 서문 내용이다. 11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개정판이 나왔으니 학자들의 발걸음과 속도 또한 한국사회의 진보만큼 ‘너무나 더디다’고 볼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책의 개정 속도를 측정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요인들을 먼저 따져 물어야 할 터. 여기서 ‘한국사회의 이해’ 필화 사건을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 당시 경상대에서는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했고 동명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정성기 교수(경제학)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800여명 가까이 수강하는 등 반응이 매우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 고무돼 또 다른 과목인 ‘제국주의와 한국사회’를 개설했다.” 한국사회의 치명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인 ‘제국주의’를 본격적으로 거론해 보려는 시도였다는 것. 그러나 1994년 검찰의 이적성 여부 조사가 시작됐다. 이후 과목은 폐강 조치되고 장상환, 정진상 교수 두 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2000년에 이르러서야 무죄판결이 났고 사실상 사건은 종결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집필교수들은 개정판을 내는 데 주저하게 됐다. 사건이 종결된 후 개정판을 내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렇게 이 사건은 큰 충격으로 우리의 학문적 의욕을 꺾은 것이다.” 개정판 서문에서 장상환 교수는 연기된 사연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2000년 무죄선고 이후에야 작업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 또 “1991년 초판이 발간된 지 11년이 지났고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초판에서 필자들이 대체로 공유했던 제국주의의 한국사회 지배라는 문제설정은 2002년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며 제국주의의 한국사회 지배라는 초판의 문제설정을 견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다만 개정판에 걸맞게 보완할 필요가 있었는데,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개념의 관련성, 제국주의 지배력 강화의 도구로서 바라본 정보통신기술 등이 새롭게 강조된 측면이다. 집필자들은 약간의 시각 차이에도 불구 오늘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제국주의의 또 다른 얼굴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에서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정보제국주의를 논하며 정보공유의 중요성을 타진하고 있다. “정보제국주의는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그며 들어와 있으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상적 실천과 함께 사회의 기본구조를 개혁하려는 구조적 실천이 함께 전개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이런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의 기치를 높이 드는 게 아니라 정보재의 사유와 독점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지적재산권의 문제에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논증한다.

한편 출간기념으로 학술대회가 지난 27일 열리기도 했다. 지정토론자로 참석했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는 이렇게 평가한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으로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데 제국주의 등의 문제가 기본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아직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책을 개정했다는 실천적 의미를 높게 산다. 한편 우리 학문풍토는 너무 가볍다. 큰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당시 한국사회와 지구촌을 분석하는 데 자본주의 체제, 제국주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밝혔고 이 문제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뿌리를 튼튼히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학자가 내린 진단은 우리 학문이 처한 현실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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