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9:50 (금)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여성주의 책' 읽기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여성주의 책' 읽기
  • 김혜경 서평위원 전북대·사회학
  • 승인 2009.05.25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교수사회에서 여자교수의 위치는 숫적으로도 열세이지만, 내용적으로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사실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 계기 중 하나는 비슷한 학문분야에 종사하는 다른 교수들의 연구실을 방문하게 될 때이다. 책꽂이에 진열된 책들 중 상당부분은 내가 가진 것과 겹치거나 혹은 적어도 제목은 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방에 있는 책들 중 같은 분야의 남자 교수들이 이름이라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책이 반의 반이나 되는 지 모르겠다. 강사시절부터 오랜기간 여성학을 강의해왔고, 지금도 또한 강좌의 일정 부분을 여성 관련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필자의 서가는 절반 정도의 책이 페미니즘에 연관된 서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같은 사회과학의 토대를 두고 있는 필자의 책은 이들 교수들에게는 생소하거나, 혹은 “몰라도 무관한” 부류의 책으로 인지되고 있지 않나 싶다. 지구, 국가, 지역, 그리고 계급, 인종, 민족 등 이들의 공부와 이론구성에서 핵심범주를 구성하는 어디에도 젠더라는 변수는 그려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미 대학원 과정에서 여성학이 생긴 시기가 1982년의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본다면 근 30년이 다 돼가는 상황인데도 학문적 지위에 커다란 변화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자리 잡기도 전에 멸종위기를 우려해야 하는 ‘보호’학문의 처지가 된 것은 아닌지, 혹은 영원한 ‘게토’ 분야의 연구자로서 남아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래서 간혹 필자의 서가에서 어떤 책에 관심을 보이고 뽑아보고 싶어 하는 교수가 있으면 속으로 무척 고마운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필자가 경험한 이러한 사정은 여성학을 연구하는 다른 교수들에게도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은 이 지면을 빌어 비록 필자의 시각으로 제한된 분야이긴 하지만 최근에 나온 책들 중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확산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수자 집단들을 배제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이론 구성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몇 권의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에 앞서 역사적으로 회고해보자면 한국의 페미니즘은 80년대 중반 이래 많은 변화를 해왔고 이론적으로도 성장을 해 온 것 같다. 초기의 그것이 계급억압과 성차별을 연결시키고자 했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우위 하에 전개됐다면, 90년대 이래의 페미니즘의 신사고는 몸과 섹슈얼리티의 역사를 재인식할 수 있는 푸코주의의 문제틀 아래서 연구와 실천의 영역을 확장시켜갔다고 생각된다. 이와 동시에 자본주의 문제틀을 넘어서는 근대성에 대한 반성 속에서 포스트 식민주의적 시각도 확산돼 갔다. 이러한 경향은 90년대 중반부터 제기된 민족주의의 남성적 지배에 대한 비판과 연결돼 위안부 담론, 신여성 연구를 통해 발전돼 왔다.

2000년대를 넘어서도 포스트 식민주의의 인식은 여성주의에 있어 일정한 출구를 모색할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중심적 근대담론과 식민지 남성지식인의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포스트 식민상황의 마이너리티인 여성 서발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려는 G. 스피박의 저서들은 대표역자 태혜숙에 의해 지속적으로 번역돼오고 있다.

혹은 이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3세계적 여성경험을 본질화ㆍ특권화하지 않는 속에서 여성주의적 연대의 확장을 희구하는 C. T. 모한티의 저서가 번역된 것도(『경계없는 페미니즘』) 크게 보면 인종ㆍ민족ㆍ계급과 교착된 젠더차별을 타고 진행되는 지구화의 격랑을 헤쳐나가려는 생존의 지적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철갑처럼 우리 몸을 둘러싸고 있는 젠더이념의 자연성을 해체하려는 혁명적 시도들이 J. 버틀러의 소개 속에 반영됐는데(『주디스 버틀러 읽기』, 『젠더 트러블』) 이것은 단지 여성주의에서만이 아니라, 근대와 탈근대, 그리고 전통적 가족주의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거의 분열적 정체성을 겪고 있을 한국의 젊은이들이 갖는 행위성을 재구축할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도 생각된다. 이와 같은 이론적 사유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사회운동과 민주주의 주체 구성에 적용시킨 종합판(?)이 작년 발간됐는데 태혜숙의 『대항 지구화와 ‘아시아’ 여성주의』와 같은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족으로 덧붙히자면 최근 여성주의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노동개념과 근대적(‘비 의존적’) 인간관, 복지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여겨지는 ‘돌봄(care)’에 대한 대표적 저서가 번역된 것을 소개하면서(『보이지 않는 가슴』) 독자들이 ‘여성주의 책’ 읽기에 동참하기를 기대해본다. 아무튼 요즘은 우리나라도 영어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번역서가 빨리 나오는 편인데, 좋은 일인 것 같다.

김혜경 서평위원 전북대·사회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