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7 02:50 (수)
[북리뷰] 아름다운 과학과 무서운 과학 … 실험실의 기쁨이 세상을 비탄에 잠기게 한다면
[북리뷰] 아름다운 과학과 무서운 과학 … 실험실의 기쁨이 세상을 비탄에 잠기게 한다면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5.25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자폭탄』다이애나 프레스턴 지음│류운 옮김│뿌리와이파리│2006

『복제양 돌리 그 후』이언 월머트 외 지음│이한음 옮김│사이언스북스│2009

과학을 둘러싼 기쁨과 공포의 이중주를 그려낸 두 권의 책을 살펴보자. 『원자폭탄』은 부제에서부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리 퀴리에서 히로시마까지 그 빗나간 열정의 역사’라는 부제가 그것이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전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 책은 아름다운 과학 분야의 하나를 낳았던 순수한 과학적 발견의 기쁨이 전쟁을 통해 어떻게 갑자기 궁극의 무기를 향한 전력질주로 탈바꿈하게 됐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희열의 연속, 영광의 시대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아름다운 과학분야란 핵물리학을 말한다. 흔히 20세기 물리학의 총아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여러 천재들이 일구어낸 양자역학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발전한 소립자 물리학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20세기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세계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인 ‘핵’은 핵물리학의 발전과 분리할 수 없다. 저자는 마리 퀴리에서 러더퍼드, 리제 마이트너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을 통해 어떻게 핵물리학이 발전을 했는지를 찬찬히 그려 보인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아름다운 과학분야란 핵물리학을 말한다. 흔히 20세기 물리학의 총아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여러 천재들이 일구어낸 양자역학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발전한 소립자 물리학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20세기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세계 뉴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인 ‘핵’은 핵물리학의 발전과 분리할 수 없다. 저자는 마리 퀴리에서 러더퍼드, 리제 마이트너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을 통해 어떻게 핵물리학이 발전을 했는지를 찬찬히 그려 보인다.

여기에는 물론 아인슈타인이나 보어 그 외에 양자역학의 천재들도 빠지지 않는다. 책의 한 대목에서 저자는 말한다. “마리 퀴리의 라듐 발견은, 이제 막 아원자라는 신세계를 향해 열리기 시작하고 있던 문을 결정적으로 밀어젖힌 사건이었다. 아원자 세계가 담고 있는 함의는 오랫동안 견지돼왔던 믿음을 뒤흔들었다.”  마리 퀴리의 발견 이후 물리학자들은 원자 세계의 구조와 그 세계를 지배하는 특유의 역학과 성질을 하나하나 밝혀내기 시작한다. 희열이 연속되는 시기였고, 물리학자들에게는 영광의 시대였다.

그런데 연구에 몰두하던 마리가 기쁨의 대상이었던 라듐에서 방출된 방사능 때문에 죽은 사건은 불길한 징조를 암시했다. 사실 백혈병이나 백내장은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후 원자핵 분열이 가능하고, 더구나 연쇄반응이 가능하다는 것조차 알게 됐는데, 이는 곧 원자폭탄이 가능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최초로 인식한 물리학자 중의 한 명인 레오 실라르드는 연쇄반응 유발이 가능함을 입증하는 실험의 성공 후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이제 이 세계가 비탄을 향해 가고 있음을 거의 의심할 수 없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에게 희열을 안겨주었던 핵이 가공할 무기가 되는 과정을 소상하게 보여준다. 불행히도 이 시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의 시기였고, 정치적 필요가 모든 요구를 압도한 시기였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과학자들의 정치력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예전에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분야에 대한 지적인 능력을 갖추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과학자들이 펼치는 논리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과학 이외의 능력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대로 과연 닐스 보어가 더 의사소통에 능하고, 실라르드가 덜 자기중심적이었으면, 하이젠베르크가 자존심이 덜했다면, 사태는 달라졌을까. 과학자들이 정치력을 갖추지 못한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그들이 탁월한 정치가가 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볼 대목이다.

『복제양 돌리 그 후』는 앞의 책보단 덜 격렬한 책이다. 복제인간, 인간배아 줄기세포 등과 같은 가공할(?) 주제를 다루긴 하지만, 아직 원자폭탄에 비할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복제양 돌리 탄생의 주역인 이언 월머트의 후일담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저런 기술적 어려움과 여론의 곡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복제 관련 기술을 발전시켜온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상당 부분 차지한다. 20세기 초 물리학자들만큼이나, 이 경우에도 희열은 과학자들이 온갖 난관을 꿋꿋이 이기게 한 힘이었다. 본래 성적이 최상급은 아니었던 저자가 끈질기고 뚝심 있게 학업과 연구를 수행하면서 자신만의 특수한 전공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마침내 줄기 세포 복제의 거목이 되는 과정은 흥미롭기도 하다.

장광설로 무장한 생물학자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줄기 세포 복제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저자가 일갈을 하는 부분이다. 저자의 명쾌한 말을 들어보자. “(복제기술)은 결국 인간을 복제하고 유전적으로 변형시키자는 제한된 제안이지만, 나는 이 접근 방식이 결국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사례를 정립하고 싶다. 그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달리 역설적으로 인간을 복제하자는 의미가 아니며, 심각한 유전병에 맞서 싸우고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배아를 실험한다는 것은 윤리적 위험이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저자는 적극적으로 “배반포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개진한다. 배반포는 초기 배아인데, 저자가 보기에 이 초기 배아는 “자궁벽에 붙어서 모체와 극도로 복잡한 화학적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기 전까지 임신이란 없다. 그것은 태아나 아기로 자랄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것은 “어떠한 정신적 삶도 지니고 있지 않다.”

저자는 이런 논의 이후에도 끊임없이 어떻게 배아 복제 기술이 여러 윤리적 어려움을 회피하면서 난치병 치료 등을 위해 선용될 수 있는지를 설득하고자 한다. 혹자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관점이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현장의 과학자가 ‘과학의 정치’에 개입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자체이다. 우리가 과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에 엮이지 않고 살 수는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