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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를 키워내는 열정의 힘
욕심 비우니 학생 고민 ‘해결’ 보인다
‘전문가’를 키워내는 열정의 힘
욕심 비우니 학생 고민 ‘해결’ 보인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5.25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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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학 ‘희망’을 만드는 교수들

“기초가 부실한 학생들에게 수학의 기초부터”, “아니다. 제대로 가르칠 맘이면 산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교수들의 당혹스런 설전은 “특성화 하자”는 의견으로 한숨이 모인다. 전문대학은 끝없이 ‘자유낙하’할 것인가. 전문대학을 바라보는 사회의 빗나간 시선과 냉대 속에서도 묵묵히 학생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교수들이 있기에 속단하긴 이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회장 김정길 배화여대 총장)가 스승의 날을 맞아 선정한 ‘올해의 참스승’ 가운데 세 교수의 희망제작소를 들여다봤다.

기 초

“모르니까 여기 들어왔다. 모르는 학생들에게 윽박지르면 더 모른다.” 조선형 동서울대학 교수(시계주얼리과)는 “교수는 무엇을 가르칠지 (고민하는 것)보다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일주일에 두세 번, 두 시간씩 방과후 지도를 해왔다. 전임교원이 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쉰 날을 손에 꼽을 정도다. 전공을 기본으로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 공부에 매진한다. 학원을 다닐 형편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주말에도 쉴 수가 없다.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교재로 가르치지만 매시간 시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대강’은 없다. NHK 방송 해석이나 토익 문제 풀기 등 방학숙제도 만만찮다.

최근에는 동료교수들이 방과후 지도에 ‘동행’하면서 한층 탄력이 붙었다. 늘 처음 보는 단어라며 ‘잡아떼기만 하던’ 제자가 얼마 전 응시한 토익시험에서 5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조 교수는 학생들을 독려하면서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전문대학은 4년제 대학을 못가서 오는 곳이 아니다. 전문가가 될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시계와 주얼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은 여러분뿐임을 명심하도록!” 조 교수의 방과후 교실에서는 오늘도 작은 기적을 일구고 있다.

노력

4년제 대학의 이직 제안를 뿌리치고 전문대 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교수가 있다. 전임 10년차 김창호 대원대학 교수(호텔경영과). “전문대 교수는 최전방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전문대학 교육을 ‘戰場’에 빗대는 김 교수는 “각별한 애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것”을 주문한다.
4년제 대학의 제안을 고사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전문대학 학생들은 진학 전까지 학교 공부와 거리가 있고 교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 디딤돌이 돼주고 싶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인성교육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마음으로 ‘보듬어 안기’에 가깝다. 부모의 이혼 탓에 늘 불만을 안고 지내던 제자에게 “누구나 상처와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교수는 학생들을 존중하면서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려는 노력이 교육자의 본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특히 신입생(1학년 1학기)들에게는 절대로 화 내지 않는다는 게 철칙이다. “학생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내면적 ‘울분’이 쌓여 있다. 인성교육이 우선돼야할 이유다.”

김 교수는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유머로 다가간다. 삐죽삐죽 머리에 한껏 멋을 내고 나타난 제자에게 먼저 다가가 쿡쿡 찔러보고 만져보기도 하면서 “머리가 밤송이 같다”고 너스레를 떤다. 이렇게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학생들은 김 교수가 친한 선배처럼 친숙함을 느낀다.

교수의 욕심을 걷어내고 학생들을 중심에 두면서 고민도 깊어졌다. 문법보다 회화의 비중이 높아 영어식 언어감각을 선보여야 했다. 알아듣기 쉽게 ‘단어조합표현기법’으로 반복해서 설명하거나 일주일에 20여분씩 두어 번 학생들에게 개인지도를 한다. 만화가를 불러 만화로 영어교재를 만들었는데 호응과 몰입도가 높아 책을 내기도 했다.

희망

장영현 배화여대 교수(컴퓨터정보과)는 전문대학의 ‘희망’을 남부럽지 않은 성과로 증명해 보인다. 지난 2004년 어학연수와 해외인턴십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제안해 정부예산 30억원을 따냈다.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을 정부에 제안하기 위해서 장 교수는 특허기술료 5천만원을 선뜻 내놨다. 장 교수의 사비로 1차 시범단 6명을 해외로 보냈다. 교과부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만큼 성과를 일군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은 올해부터 4년제 대학에서도 차용하고 있다.

“전문대학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실무분야’다.” 장 교수는 2000년부터 정부의 국가기술자격 시험 인터넷 원서접수 시스템의 운영을 맡고 있다. 연간 400만명이 이용하는 장 교수의 ‘원천기술’은 2002년부터 약 100여개 전문대학에도 도입했다. 장 교수는 약 1억원의 수익금을 고스란히 장학금으로 출연했다.

장 교수는 해외 인턴십과 자신의 원천기술을 연계시킬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인터넷 원서접수의 ‘원천기술’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위임해 연간 30~50억원의 예상 수익금을 해외 인턴십 지원에 쓰겠다는 구상이다. 다섯 명으로 시작한 해외 인턴십을 연간 최대 1천명까지 확대할 수 있다.

장 교수는 학생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장 교수와 학생들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책 스물 두 권이 지난 주 경복궁 역사 전시회에 내걸렸다. 컴퓨터 관련 18권, 경영전산 서적 4권 등 학생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장 교수와 만들어낸 책이다. 학생들은 “내가 책을 쓴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지금 이 순간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책 머리말에 출간의 소감을 밝혔다. 장 교수는 주변의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1년간 집중 교육시키고 최첨단 분야를 학생들에게 연구과제로 배정했다. 지난해에는 학생들과 공동 개발한 기술로 세계발명대회에 나가 5관왕(금1, 은2, 특별상2)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장 교수는 지난 10년간 학생들과 출전한 대회에서 150여 곳에서 입상했다. 특히 2006년 출전한 대회에서 배화여대 2학년생이 포스텍 4학년생을 꺾었던 기억은 ‘가능성’의 무한한 힘을 깊이 각인시켰다.

장 교수는 “전문대학 학생들은 방송국이나 대기업에 응시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학생들을 연구에 참여시키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성과를 내면 사회인식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결국 뛰어난 학생은 교수의 열정적인 교육론에 달렸다는 말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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