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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죽음? 바보같은 오해죠 … 생존을 신뢰합니다”
“철학의 죽음? 바보같은 오해죠 … 생존을 신뢰합니다”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5.18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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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자 인터뷰] 프랑수아 라뤼엘 전 파리 10대학 철학과 교수

이번호에서 <교수신문>은 프랑수아 라뤼엘 교수(72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라뤼엘 교수는 프랑스 파리 10대 철학과를 2006년에 정년 퇴임했으며, 非철학(non-philosophie)의 창시자이다. 프랑스 철학계에는 여러 독창적인 학파가 많은데, 非철학은 그중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학파이다. 라뤼엘은 국제비철학회(Organisation Non-Philosophique Internationale)를 운영하고도 있다. 국내에 ‘非철학’이라고 하는 말은 들뢰즈의 책을 통해 알려진 바가 있다. 그러나 들뢰즈의 개념은 적극적이고 정교하게 개진된 개념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라뤼엘 교수는 들뢰즈와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非철학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개진한다. 그러나 非철학의 창시자인 프랑수아 라뤼엘은 한국에 그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가 않은 상태다. 이번 인터뷰에서 라뤼엘은 非철학을 둘러싼 몇몇 오해를 해명하면서 非철학은 철학 일반에 대한 부정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 한국 철학자들은 귀하의 非철학에 대해서, 그 중요성에서도 불구하고, 거의 알지를 못한다. 非철학의 핵심 테제들은 어떤 것인가.

“우선적으로, 모든 지식의 근원이자, 학의 창조자이며, 철학이 半-신이라고 전제하는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 따르는 철학의 非자기 준거적 실천을 들 수 있습니다. 전체 기획, 철학의 非철학적 실천은 철학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것의 한계, 곧 인간적 이로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계입니다. ‘인간’에 대해 저는 독특한 혹은 개별적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철학적 휴머니즘의 보편적 인간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類的 존재로서 혹은 그 자신에 대해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최종심급에서 고유한 대상인 존재를 의미합니다. 모든 것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규정돼야합니다. 모든 사건과 우연성에도 불구하고 인간 수호의 관점에 의해서  말이죠. 우리는 마치 인간성이 우리의 최종 대상, 최종물인 것처럼 사유하고 행동해야만 합니다. 물론 철학은 세계, 도시, 국가를 보호해야 하고, 특별히 인간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 당신 사유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어떤 사유가 당신에게 영향을 미쳤나.

“칸트, 마르크스, 후설 그리고 나중엔 라캉입니다. 하지만 많은 철학자들이 때때로 제게 철학적 기술의 관점에서, 제 이론적 작업의 수위에 따라 영감을 줬죠. 하이데거, 데리다, 니체 그리고 들뢰즈가 그러합니다. 저는 들뢰즈 그리고 마찬가지로 바디우에 대해서 경탄을 합니다. 반면 영미 분석철학에 대해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 非철학은 일종의 형이상학인가 아니면 인식론인가 아니면 윤리학인가.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모든 철학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 非철학은 무엇이든 간에 철학적 실천의 유적 근원을 찾습니다. 저는 기성 철학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제 독자들은 제가 禪을 하는 사람이고, 스피노자자주의자, 비트겐슈타인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등등 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조금씩 포함이 되죠. 유적 철학은 개인적 외양을 갖지도, 모두의 대변인이나 관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약간은 모든 철학자의 것이기도 하죠.”

△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자를 그 자체로 사고하라, 마치 존재와 타자로부터 독립적인 것처럼, 마치 사유와 언어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것처럼  이 非관계는 사유의 전통적인 수단들과의 사유, 그 자신의 권위를 벗어나는 철학과의 사유를 갖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논리적, 언어적, 실천적, 실재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니체의 초인과 같은 존재가 필요한가.

“이는 분명히 非철학의 패러독스입니다. 어떻게 철학이나 견해들을 철학과 더불어서가 아니라면 사유하겠습니까. 곧 철학의 수단들과 함께 말이죠. 물론 이는 전체적인 혹은 개별적인 철학적 관점이 없이 진행되는 것이고, 이러저러한 철학자 없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철학자들이 하나의 독특한 견해나 철학을 사유하는 것처럼 말이죠.”

△ 당신은 “철학은 자신에 대한 반성, 자기의식이다. 철학은 확장된 코기토, 자기반성과 자기 촉발에 한정된 내재성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놀라운 측면이 있다. 당신의 非철학은 일종의 헤겔식 관념론인가. 혹은 수학에서 말하는 공리주의와 같은 것인가. 非철학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실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가.

“왜 놀라운가요. 전통적인 철학(헤겔은 그 대표죠)은 분명히 세계(역사)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사유를 합니다. 하지만 철학은 자신의 사유를 성찰과 세계의 터전 안에서 동시에 건립합니다. 코기토/세계의 쌍은 모두 규정적인 것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데, 최종 심급에서 세계의 사유를 규정하는 유적 인간을 위해 멀어져야 합니다. 즉 非철학은 철학과 그리고 과학, 개념들, 공리들과 함께 구축이 됩니다. 非철학은 과학과 철학의 혼합인데, 이 혼합이 유적 인간을 규정합니다.”

△ 우리는 철학의 죽음에 대해서 우려한다. 지적 문명의 쇠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非철학에 대해서 사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는가.

“바보 같은 오해죠. 非철학은 철학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충족성의 죽음이지 철학의 물질성의 죽음이 아닙니다. 저는 철학의 죽음이나 부활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철학의 생존을 신뢰합니다.”

△ 한국에는 영미 사유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그 첫 번째 위험성은 환원주의일텐데, 영미의 분석 철학과 인지과학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떤가(우리는 이미 신경과학에 중점을 둔 CNRS 조직 개편을 둘러싼 소동을 보도한 적도 있다).

“분석철학과 인지주의는 그럴싸한 철학들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젊은이들의 주장과 확신에 의거하죠...저는 그와 다른 경로를 선택했는데, 곧 대륙 철학과 양자역학 그리고 그것들을 새로운 동력으로 포함하고 있는 유적 관점의 직조물의 구성이 그것입니다. 저는 非철학, 특히 그것의 내재성 이론을 이 3가지 흐름과 아울러 사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非철학을 하나의 유적 ‘철학’이라고 부릅니다만, 그것의 원칙들은 보다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수단들과 동일한 것들입니다.”

△ 사실 한국의 철학자들은 독특하거나 독창적인 사유는 생산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그저 영미나 유럽의 철학을 연구할 따름이다. 실망스러운 세태가 아닐 수 없다.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새로운 사유를 창조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조언을 바란다.

“모든 것이 조금씩 다 필요합니다. 특정한 사유에 대한 과도한 배제나 선호가 없이 말이죠. 동시에 조절하지 않은 고독, 용기 그리고 정열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들어주는 제도와, 종교나 국가에 의해 폐색되지 않는 자유로운 지적 연구의 전통도 필요합니다. 쇄신하기 위해선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 힘이 당신들 각자에게 행하고 발명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진행·정리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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