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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타자화하는 인간중심 인터페이스의 모순 본격 조명
인간을 타자화하는 인간중심 인터페이스의 모순 본격 조명
  • 조윤경 이화여대 HK교수·불문학
  • 승인 2009.05.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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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강평기] 이화인문과학원 ‘인문학적 시각으로 본 인터페이스: 접속, 창조, 소통’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인문한국(HK) 연구단(단장 오정화·이화여대)은 지난 8일 ‘인문학적 시각으로 본 인터페이스-접속, 창조, 소통’이라는 주제로 국내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연구단은 지구지역성, 젠더, 다매체라는 세 분과로 구성돼 기존 인문학의 경계를 넘어서서 탈경계 문화현상 속의 인간과 인간경험을 분석하는 ‘탈경계인문학’ 연구를 2007년부터 수행하고 있다. 이중 다매체 분과가 주관한 본 학술대회는 ‘인터페이스(interface)’라는 탈경계 문화 키워드를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기계/기술 중심적인 인터페이스 논의를 새로운 지평으로 확장해 인문학적 패러다임으로 인터페이스를 살펴보려 했으며 그 구체적인 방식으로 접속, 창조, 소통이라는 세 세션을 구성했다.

여는 발제를 맡은 조윤경 이화여대 HK교수는 ‘접속, 창조, 소통’이라는 세 키워드를 차례로 탐색하면서, 가까이 존재하고 있지만 크게 인지되지 않았던 세상의 다양한 접속면들을 인문적 사유의 출발 지점으로 삼아 물리적 인터페이스의 변화가 내포하는 의미와 가능성은 무엇인지, 여기에 문화나 관습적인 의미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를 질문했다. 프레임/필터이자 스크린/텍스트인 접속면으로서의 인터페이스가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함의, 인간중심 인터페이스가 오히려 인간을 타자화하고, 직관적 인터페이스가 인간의 창조적인 잠재성을 왜곡하는 모순, 인터페이스가 ‘인-페이스’돼 대화가 아닌 데이터 전송으로 전락하는 소통의 방식에 대한 문제 등을 제기했다.

접속과 창조의 키워드

 
제 1부인 ‘접속’의 세션에서는 경계면을 통해 만남의 주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접속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과 미래」를 발표한 김동호 숭실대 교수(글로벌 미디어학부)는 ‘인간 컴퓨터 인터페이스’에서 다루는 다양한 인터페이스 기술과 발전과정을 설명하고, 이에 따른 간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최근 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은 인간이 보다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인간의 감성을 바탕으로 하며 복합 감각적, 또는 체감형의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발표에 대해,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수반되는 인간소외나 가치상실의 문제에 관한 공학 쪽의 대응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의 등이 이어졌다.

「미술 속의 인터페이스-스크린과 프레임」을 발표한 전혜숙 이화여대 HK연구교수는 현대의 스크린 기반 인터페이스에 내재돼 있는 창문, 거울, 프레임의 상징성들을 미술사적으로 고찰했다. 전 교수는 선사시대 동굴벽화로부터 현대의 추상회화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계로 열린 ‘투명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논리와 세계를 반영하는 ‘불투명한 거울’을 바라보는 논리가 충돌해왔음을 제시했다. 나아가 인간의 신체와 연장돼 2차원의 평면적 공간을 넘어서는 현대의 전자 스크린은 지각할 수 있는 물질성을 넘어서서 가상세계로 몰입시키는 비물질성의 투명한 세계로 향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매체가 물질성을 잃고 투명성으로 바뀌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 대한 미학적인 논의를 더 이어갈 필요성 등이 제기됐다.

제 2부인 ‘창조’의 세션에서는 문화예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터페이스적 실험을 통해 어떤 패러다임이나 새로운 미학이 생산될 수 있는지를 모색했다. 김진현 독일 쾰른대 교수(음악학과)는 「인터페이스의 매체성 -뉴미디어 퍼포먼스에서의 체현미학 연구」라는 발표를 통해 “뉴미디어 퍼포먼스의 예술행위는 퍼포먼스를 통해 재현하는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음 생성 악기와 그것을 정교하게 제어하는 연주신체동작에 초점을 맞춰 전신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경험에 집중하는 현현(presentation)의 행위로 고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예술 장르 간의 경계뿐 아니라 예술가와 수용자의 경계가 느슨해지게 되는데, 로봇이 예술가가 됐을 때 우리의 미학적 경험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관객은 과연 예술가가 연주하는 것처럼 미학적인 기쁨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들이 이어졌다.

인간과 기계는 소통가능한가


   이수진 이화여대 HK연구교수는 「인터페이스와 은유의 상상력」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일상의 삶을 은유화한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메타포 설계에서 출발해 영화라는 문화적 상상력을 가능케 했던 100년 전의 기계 발명품인 시네마토그래프의 은유와 현재의 문화적 상상력을 생산해내고 있는 기계 발명품인 컴퓨터의 은유를 비교했다. 이를 통해 영화 스크린이 인간의 삶을 4차원 너머의 세계로 확장시켰듯이, 컴퓨터 인터페이스 또한 우리의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데려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영화라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위한 매체가 그것과 생산방식, 지향하는 바가 다른 상호 작용성 기반의 컴퓨터 매체와 같은 위계로 비교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뤄졌다.

   이수진 이화여대 HK연구교수는 「인터페이스와 은유의 상상력」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일상의 삶을 은유화한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메타포 설계에서 출발해 영화라는 문화적 상상력을 가능케 했던 100년 전의 기계 발명품인 시네마토그래프의 은유와 현재의 문화적 상상력을 생산해내고 있는 기계 발명품인 컴퓨터의 은유를 비교했다. 이를 통해 영화 스크린이 인간의 삶을 4차원 너머의 세계로 확장시켰듯이, 컴퓨터 인터페이스 또한 우리의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데려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영화라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위한 매체가 그것과 생산방식, 지향하는 바가 다른 상호 작용성 기반의 컴퓨터 매체와 같은 위계로 비교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뤄졌다.

  제 3부인 ‘소통’의 세션에서는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고찰하면서 인간과 기계, 기계를 매개로 한 인간과 인간의 소통의 문제를 다루었다. 심혜련 전북대 교수(과학학과)는 「매체와 공감각 그리고 자연적 인터페이스」에서 매체를 인간 감각의 확장으로 이해해 공감각성을 부각시킨 맥루한의 논의와 인간과 기계, 기계를 매개로 한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성에 함의된 ‘자연적 인터페이스’의 물리적 장소성, 환경성을 부각시킨 디터 다니엘스의 논의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매체가 있으되 매체를 지우려고 하는 욕망의 역설이 가능하며 지향돼야 할 것인지, 공감각은 오히려 감각을 확장시키는 것보다 단순화시키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한편 김재영 이화여대 HK연구교수는 「몸과 기계와 온생명」이라는 발표에서 ‘맹인의 지팡이는 그 사람의 일부인가, 아닌가?’라는 인류학자 베이트슨의 화두에서 출발해 몸과 기계의 경계, 혹은 몸의 경계의 문제를 사이버네틱스, 인공생명, 온생명이라는 소주제들을 통해 논의했다. 그에 의하면 사이버네틱스는 “생명을 지닌 유기체와 미리 정해진 방식에 따라 작동되는 기계 사이의 경계선을 흐리”는데, 따라서 이때의 맹인의 지팡이는 과학자의 전자현미경처럼 세상과 접촉해 교류하는 데 필요한 네트워크의 일부가 된다. 김 교수는 인공생명의 논의를 통해 생명과 물질 사이 경계의 유동성을 도출해내고, 장회익의 온생명 개념, 나아가 ‘나’를 넘어선 ‘더 큰 나’로서의 ‘온우리’ 개념을 통해 지팡이와 같은 ‘측정장치’는 외부 대상으로부터 정보를 획득하는 ‘교촉(transaction)’의 과정을 일으키는 ‘주체라고 하는 영역’에 포함되므로 그 사람의 일부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질의에서는 ‘내 몸의 경계가 나의 경계인지’, 인간의 경계를 ‘유동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화된 후속 논의들이 필요함이 제기됐다.   

융합적 논의 만개


   이번 학술대회에는 다양한 분야를 전공으로 한 발표자들 뿐 아니라 철학, 문학, 미술사학, 미디어학, 문화컨텐츠, 종교학, 교육공학, 음악학, 조형예술학 등의 학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로봇관련 사업가, 인간문제 연구가,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등이 청중으로 참여해 분과학문의 경계뿐 아니라 학문과 일상의 경계를 넘어선 논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매체학이나 공학 위주로 진행됐던 인터페이스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학술대회였다. 이 학술대회를 시발점으로 멀티미디어, 디지털 등의 논의들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나 몸 담론 등과 이어지는 지점이라든지, 인간-기계 인터페이스에서의 인간소외 문제, 경험, 욕망, 감성, 취향, 소유 등의 다양한 인문학적 문제들이 더 심화된 논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를 기대한다.

조윤경 이화여대 HK교수·불문학

필자는 파리 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현실주의와 몸의 상상력』등의 저서와 「초현실주의와 도시기호학」등의 논문이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매체학이나 공학위주로 진행됐던 인터페이스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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