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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대학교수의 자존심
[원로칼럼] 대학교수의 자존심
  • 교수신문
  • 승인 2002.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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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05 00:00:00
교수 없이 대학이 있을 수 없고 대학 없이 현대 문명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한국의 대학 교수는 각 분야의 지적인 전문가이며 지도자이다. 우리 없이 이 사회가 발전하기 힘들 것이다. 정년퇴임을 눈앞에 두고 한국 대학의 동료들의 이러한 자긍심과 자존심에 호소하고자 한다. 대학생 시절 은사 최규원 선생님에게서 들은 일화가 기억난다.

일본 도호꾸대 화학과 어느 조교수에 관한 일이다. 이 분은 물리화학 교실의 조교수였는데 양자역학이 화학 문제에 활발히 적용되기 시작한 후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양자역학을 이해치 못하고는 물리화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됐으니 어찌 내가 조교수 자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하고 사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감격적인 이야기였기에 5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자긍심을 멍들게 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그 분은 훗날에 양자화학 교과서를 저작했다.

작년에 한 젊은 동료가 미국의 유명 공과대학을 방문하고 와서 나에게 한 이야기이다. 유명한 교수들이 젊은 교수학습 방법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효과적인 교육방법에 관한 자문을 구하기에 “어떤 인센티브를 사용해 그 분들이 찾아오게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이 대학 교수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자기가 무엇을 하든 수월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다른 인센티브가 필요 없다”는 것이 답이었다.

강의를 하면 우수한 강의를 하고 싶고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훌륭한 논문이기를 원하며 이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배우는 과정에서는 어떤 질문도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공부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에게 질문하며 생각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체면 따지지 말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질문하고 토론하라”고 부탁한다. 우리가 수월성을 추구하는 과정에 ‘체면 차리기’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빨리 변화하는 세계 속의 한국사회는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수와 학생이 절실히 필요하고, 이들이 수월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대학을 운영하는 총장이 필요하고 이사회가 필요하며 한국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수십 년 전에 미국물리학회 회지에서 유명한 물리학자 뉴턴에 관한 글을 재미있게 읽은 일이 있다. 뉴턴에 관한 글이라면 그의 훌륭한 업적과 관련된 글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때 내가 읽은 글은 뉴턴이 죽은 후에 그의 서랍에서 발견된 그의 논문에 관한 것이었다. 뉴턴은 나이가 들면서 그가 한 일을 두고 남이 평가·비평하는 것을 혐오하여 연구문제에 관하여 동료들과 토론하기를 회피하고 논문을 작성하되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에 발견된 그의 논문은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글이었다. 노후의 뉴턴에게는 자존심은 없어지고 허영심만 남았던 모양이다.

이 일화는 수월성을 추구함에 있어서 전문가 동료들의 평가와 비평은 필요 불가결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하는 일에 대하여 전문가의 평가와 비평을 받으면서 수월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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