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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아픔을 채가듯 흙에 살리라 노래하는 사연
세월이 아픔을 채가듯 흙에 살리라 노래하는 사연
  •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05.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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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누가 뭐라 해도 흙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생명의 숨결이 넘실거리는 흙이다. “땅에 씨앗을 심는 것은 사람의 성적행동과 유사하다”고 어떤 이는 말했다.
맞는 말이다. 자궁에 정자를 뿌리는 것과 흙에 씨앗을 심는 것이 똑 닮았다! 분명 우주의 섭리를 가득 안은 씨알의 자궁이 흙이다.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는 흙과 식물, 그들은 정녕 우리의 어머니다! 그리고 식물(plant)은 양분을 만드는 공장(plant)이다. 하여 'plant is  plant'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흙에서 나고 흙으로 간다. 생명의 시작이면서 끝이 흙이다. 내가 落地한 곳이 흙이요, 入地할 곳 또한 흙이다. 含笑入地란 말이 있으니, 미소를 머금으면서 죽는다는 뜻이다. 헌데, 죽음이 가까워오면 흙냄새가 고수해 진다하던가. 고소한 땅내를 실컷 맡고 허! 허! 웃으며 죽으리라. 게다가 흙은 우리에게 ‘썩힘’과 ‘발효’를 가르쳐준다. 흙에 묻히면 부패, 발효해 기름진 거름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세월이 아픔을 채간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도 세월 지나면 잊어지고 만다는 것을 알려주는 흙.
그런데 비옥한 흙에선 향긋한 土香이 풍긴다. 사실 흙냄새는 주로 放線菌들이 거름을 분해하면서 풋풋한 냉이냄새랄까, 인삼냄새 같은 지오스민이란 향기를 낸다. 미생물이 풍기는 냄새가 흙냄새로군. 그런데 뿌리가 튼튼해 양분을 잘 흡수하려면 반드시 이들 미생물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땅에다 거름을 넣는 것은 식물에 양분을 주는 것일 뿐더러 토양미생물을 배양하기 위함이다. 보통 큰 나무를 옮기고 나서 막걸리를 챙겨놨다가 그득 뿌려주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토양미생물은 식물뿌리를 튼튼하게 해주고, 不溶性인 무기영양소를 잘 녹게 해 흡수를 거들어 준다. 세상에 공짜 없다.
식물(뿌리)도 토양미생물에게 여러 가지 달콤한 유기영양소를 주기에 뿌리근방에는 50%나 더 많은 토양세균이 무리지어 득실득실 꾄다. 식물과 토양미생물들은 이렇게 ‘주고받기’를 한다.

相生이라 해도 될 듯.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와의 共生관계는 특이하다. 콩과식물에는 땅콩, 팥, 토끼풀, 아까시나무, 싸리나무, 등나무, 칡들이 있다. 이들 식물뿌리에 들어온 뿌리혹세균들은 宿主植物에서 제공받은 영양분으로 살아가면서 공기 중의 遊離窒素를 고정해 그것을 숙주에 준다.

먼저 콩과식물이 뿌리혹세균을 안아 보듬기 위해서 뿌리털에 실낱같은 필라멘트를 슬며시 뻗어내고, 그 끝에다 세균의 필라멘트가 들어올 수 있게끔 작은 구멍을 내어둔다. 뿌리혹세균들은 그것을 엿보고 있다가 얼른 필라멘트, 즉 菌絲를 根毛 안으로 뻗어 넣어 잽싸게 서로 달라붙는다. 이를 융합이라 하는데, 일단 세균이 안에 들어오고 나면 電光石火, 재빨리 뿌리털 끝의 문을 찰각 닫아 버린다.

뿌리혹세균은 이제 삶터를 마련했으니 번식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식물과 세균 사이에는 서로를 알리고 알아내는, 그들만의 신호물질이 있어서 정해진 식물에 짝꿍 세균만이 들어가는 종 특이성이 있다. 이런 것을 ‘우주 같은 인연’이라 하는 것이리라! 땅콩과 싸리나무에 사는 뿌리혹세균이 같은 것(종)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단 뿌리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세균은 재빠르게 늘어나 뿌리에 큰 뿌리혹이 만들어진다. 이들 세균은 뿌리에서 받은 電子로 공기 중의 유리 질소(공기의 80%임)를 붙잡고, 니트로게나아제(nitrogenase)란 효소가 식물이 바로 쓸 수 있는 암모늄이나 유기질소로 전환(환원)시키니 이것이 窒素固定이다. 이런 엄청난 일은 오직 질소고정세균만이 해낸다.

이렇게 서로 없이 못 사는 ‘뿌리혹세균과 콩과식물의 관계’가 곧바로 금실 좋은 부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琴瑟이 뭔가는 斷絃의 아픔을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유별난 능력을 소지한 뿌리혹세균이다. 콩과식물의 뿌리는 공중에 널려있는 질소를 고정하는 커다란 비료공장인 셈이다.

비싼 돈(에너지)드려서 이들의 흉내를 내고 있으니, 이것이 화학비료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질소비료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 세균의 ‘질소고정유전인자’를 떡 하니 벼나 밀 등의 곡식에 집어넣어 스스로 질소를 고정하게 만드는 식물을 만들고 있다한다. 신통한 일이로다. 놀면 녹슨다!(If I rest, I rust!) 한사코 밭에 살리라!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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