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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빠른’ 저널 원하는 독자들, 디지털로 헤쳐 모여!
‘짧고’ ‘빠른’ 저널 원하는 독자들, 디지털로 헤쳐 모여!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9.05.11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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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혼란 겪는 미국 인문학저널들

지난 1월 미국 역사학분야저널협회 세미나 장소에서다. 서던메소디스트대 조교수이자 학술지 <Arthuriana> 편집장인 보니 윌러(Bonnie Wheeler) 교수는 “인문학저널이 위기를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윌러 교수의 말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인문학저널(학술지)이 겪고 있는 변화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 고등교육전문지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은 최근 기획기사를 통해 인문학분야 저널을 둘러싼 변화의 바람과 이로 인한 편집장들의 고민을 생생히 전달했다.

인문학저널은 전통적으로 동료평가(peer review)와 같은 편집·평가를 거친 논문과 연구 성과 소개, 학문분야와 관련한 글 등을 엮어 특정 시기에 책을 선보였다. 그러나 디지털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구독자성향이 변하면서 인문학저널이 생존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변화를 꾀하는 곳도 있다. 오픈액세스(open access)에 따라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공개하는 저널이 많아졌다. 일부는 저널을 온라인에서만 공개한다고 크로니클은 전했다. 독자를 놓칠 수 없다는 이유다. 인문학저널은 이제 ‘A저널에서는 특정 주제에 관한 논문을 보고 싶고, B저널에선 북 리뷰를 보고 싶은’ 독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JStor, Project Muse, Ebsco 등이 자주 방문하는 저널모음창고다.

미국 인문학저널은 독자성향뿐 아니라 다루는 내용, 형식에서도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인문학분야 중 역사학, 어문학분야는 다루는 주제가 갈수록 세분화, 구체화하고 있고 이는 저널 출판에 변화를 가져왔다. 광범위한 분야를 연구하기보다 특정 주제와 작가에 대한 논문이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훌륭한 교수들이 보내오는 논문이 학문 트렌드와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해서 이들을 외면할 순 없다. 노학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이 있고, 전통을 갖고 있는 인문학저널이 발전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시니어 교수들의 노력 때문이다. 마셜 브라운(Marshall Brown) 워싱턴대 교수(비교문학전공)는 <Modern Language Quarterly>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브라운 교수는 다양한 학술논문 제공자와 독자들의 성향, 독자들이 원하는 논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편집장들은 또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활동보다 연구물을 평가하거나 저서를 쓰는 일에 집중하는 시니어 교수들로부터 좋은 논문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디지털저널이 구독자 확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콘텐츠를 전달하는 데이터베이스는 든든한 수입원이다. 전통을 고수하던 인문학저널이 변하는 환경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도 환영 받는다.

한 예로 책 이름과 목차, 다루는 내용을 간략히 적은 편집본(edited collection)이 유행하자 인문학저널은 이러한 흐름에 발을 맞추고 있다. <Biography>가 매년 가을, 관련 분야에서 출판된 책을 편집자 소개와 함께 싣는 것은 유명하다. 인문학저널이 어떤 방식으로 웹 2.0시대와 어울려 나갈 것인지는 앞으로 계속 논의해 나가야할 부분이다.

그런데 윌러 교수는 왜 인문학저널의 변질을 우려했을까. 인문학저널 편집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저널의 ‘정체성’이다. 인문학저널의 정체성을 디지털세계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디지털저널의 범람으로 단순 콘텐츠를 원하는 독자와 저널을 실제 구입하는 실수요자에게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Leviathan> 편집장인 존 브라이언트(John L. Bryant) 호프스트라대 교수는 “인문학저널은 여전히 현상을 꿰뚫어 전망을 제시하는 좋은 논문을 고르기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브라이언트 교수도 항상 저널편집에 신경을 쓰고 각 논문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유는 단순하다. “온라인상에선 불가능한 일련의 과정 자체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크로니클은 “인문학저널이 학문을 연구하는 실험실이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단지 그 실험실을 온라인에서만 꾸린다면, 전달할 수 있는 지식과 소통의 무게에 한계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에드워드 리넨탈(Edward T. Linenthal) 인디애나대 교수 역시 “인문학저널이 완전히 디지털화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Victorian Studies> 공동편집장인 이반 크라일캄프(Ivan Kreilkamp) 인디애나대 교수는 “인문학저널은 좀 더 치밀하고 깊게 접근하는 연구 작업을 통해 블로그와 저널모음창고에선 찾을 수 없는 깊은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며 인문학저널을 ‘패스트푸드 사회에서도 생존하는 슬로푸드’에 비유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연구경향과 학문추세는 한국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는 미국 인문학저널의 모습이 국내 학회지를 둘러싼 현실과 짙게 겹쳐진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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