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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교수부터 총장까지 … “배움은 끝이 없는 여행”
정년퇴임 교수부터 총장까지 … “배움은 끝이 없는 여행”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9.05.07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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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대학 ‘학부’에서 공부하는 교수들

공부를 천직으로 삼은 이들이 교수다. 논문과 책을 벗 삼아 평생 연구에 매진하는 게 학자들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자신의 전공분야를 넘어 다른 학문분야를 공부한다면? 여기 배움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학생신분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교수들이 있다. 정년퇴임한 노학자가 있는가 하면 같은 학교에서 교수와 학생 생활을 병행하는 이색 교수도 있다. 총장이라는 직위도 배움 앞에선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

“퇴임 이후 어학수업은 즐거운 소일거리”


지난 2004년 전남대 행정학과를 정년퇴임하고 2006년 한국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3학년에 편입학한 김종술 전남대 명예교수(70세). 70세의 나이는 방송대 입학을 결정하는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올해 초 학교를 졸업했는데, 중국어를 읽을 수는 있어도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학사편입학 해 요즘은 회화중심으로 수업을 듣고 있어요.” 김 명예교수는 그야말로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김 교수의 전공은 서양정치사상사다. 서양고전을 연구하다보니 동양고전,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몇 년 전 중국여행을 하면서 대학에 새로 입학하기로 결심했다.


수업을 듣기 위해 ‘넷북’은 필수다. “집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넷북을 갖고 근처 도서관에 가기도 하지요. 평일엔 사람이 거의 없어 거기가 연구실 같아요.”
노학자가 학생신분이 되다보니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다. 출석강의에 나가보니 자신의 제자가 교수로 와있거나 방송대 교수들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같은 학교 선후배였단다.

그는 요즘 자신의 전공분야에 중국어를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광주지역이 상하이같은 중국 해안지역 대도시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중국이 최근 산업화를 꾀하면서 행정전문가를 많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번역작업에 본격 돌입해 서양학문도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어요. 행정학 전공자가 중국어를 할 줄 알면 중국 대학에서 행정학을 가르칠 수 있고, 저서 번역에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이미 동료교수 5명을 같은 학과에 등록하도록 이끌었다.

김 교수에게 배움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매일 10시간씩 전공과 중국어를 공부해요”라고 말하는 그다. “공부는 평생 할 일이자 정년퇴임한 지금은 소일거리의 하나입니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기본적으로 책을 읽을 기회가 많죠. 저에게도 공부는 생활자체입니다.”

총장님이 학생으로 변한 사연


지난 2005년 한 대학총장이 한국사이버대 중국학부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였다. 주인공은 정순훈 배재대 총장(57세).
“몰래 입학신청을 했는데 결국 들켰지요.” 정 총장은 “혼자 공부하기엔 의지가 약해서” 대학 입학을 결정했는데, 당시 송 자 총장이 그 사실을 알게 돼 언론에 오르내렸다며 멋쩍게 웃는다.
정 총장이 중국학 공부를 결심한 계기는 대학 국제화 때문이다. “미국, 일본 대학과 이미 많이 교류하고 있지만, 중국 대학과 교류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중국과 교류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에게만 열심히 하라고 주문할 순 없지요. 그래서 직접 중국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많은 업무에 시달리고, 총장이라는 신분으로 대학입학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정 총장은 그러나 “혼자 공부하려면 의지가 강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서 강의를 듣고 시험도 보는 등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수업을 듣다보니 얻은 것도 많다. 먼저 학생 서비스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사이버대가 학생 수가 많지 않다보니 학생 서비스가 좋더라고요. 일이 있을 때마다 꼼꼼히 연락을 하고요. 그것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정 총장은 또 “중국어를 할 수 있게 되니 중국 대학 관계자들과 교류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라며 “지금도 틈날 때마다 회화수업을 위주로 공부하고 있어요”라고 전한다. 정 총장은 현재 1시간 정도 중국어로 연설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수업을 듣는 시간은 주로 저녁과 새벽이었다. 그는 “예전에 대학 다닐 땐 교수님에게 칭찬 한 번 못 들었는데,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니 성실히 출석한다며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라며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다.
“꼭 어디엔가 활용하기 위해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정 총장이 생각하는 배움의 의미다. “제일 싸고 재밌는 일이 배움이 아닐까 합니다. 성공하거나 출세하기 위해 배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배우는 자체가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배움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요.”

여기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이가 있다. 장 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36세)는 미디어영상학과 교수인 동시에 같은 대학 일본학과 학생이다. 지난해 2학년으로 편입학했고 현재 한창 수업을 듣고 있다. “제때 졸업하려면 학점관리를 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열정이 묻어난다.

장 교수가 일본학과에 편입학한 이유는 수업을 하면서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현재 미디어영상학과에서 영화 관련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인문학전공 교수님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인문학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시험 보러 갔더니 학생들이 알아봐”


하지만 같은 대학에 학생으로 입학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 하다. 그는 “방송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에 마음먹었을 때 편입학하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일본어는 물론 일본지역의 문화, 사회를 공부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수업참여를 미루다가 몰아서 듣기도 하지만 “요즘은 휴대폰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데 저도 그것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며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

출석수업에 참여하지 못 할 경우 대체시험을 봐야 한다. 그는 시험을 보러갔을 때 일어난  경험담을 소개했다. “언젠가 시험을 보러 갔는데 학생이 저에게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시험을 보러 온 줄 모르고 시험을 감독하러 왔다고 생각하더군요. 또 한 번은 강의실에 늦게 들어갔는데, 출석을 부르다가 제 이름이 나오니 학생 몇 명이 뒤를 돌아보며 절 알아보더라고요.”

장 교수는 지난 2005년 교수로 임용됐다. 강의계획을 세우고 저서 쓰는데 몰두하다 보니 새로운 공부를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일본학과에 입학한 것 역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교수님들 대부분은 박사학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학사학위를 하나 더 받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하실 수도 있지요. 저 역시 학사학위 하나를 더 받는 게 그리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배움의 공간을 마련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저로 하여금 꾸준히 공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스승의 날을 앞둔 요즘, 참스승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는 푸념 아닌 푸념이 들린다. 이미 자신의 학문세계를 만들거나 혹은 한창 만들어가는 교수들이 학부 공부에 다시 뛰어드는 모습에서 진정한 배움의 뜻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보여주는 열정은 제자들 못지않게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교수들이 사이버수업을 듣는 이유

평생학습시대, 사이버수업을 듣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 일반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한국방송통신대, 사이버대, 디지털대에 입학하면 원하는 시간에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한 강의실에서 어울리는 게 부담스러운 것도 교수들이 사이버수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한국방송통신대에는 정재계 인사, 연예인을 비롯해 교수들도 다수 재학하고 있다. 오종남 서울대 과학기술혁신과정 주임교수는 지난 2003년 통계청장 재임 당시 방송대 영어영문학과에 편입학했다. 이후 일본학과에 다시 편입해 공부하는 등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엔 이러닝(E-Learn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평생대학원 이러닝학과에 입학하는 교수가 많아졌다. 이호건 청주대 교수, 이상주 오산대학 교수, 김성용 영남대 교수 등이 이러닝학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김종호 전 상주대 총장, 차광은 차의과대 대외부총장 등도 방송대 동문이다.   
올해부터 12개 사이버대가 평생교육시설에서 고등교육기관으로 전환해 일반대학과 마찬가지로 학사학위를 수여하게 되면서 사이버대에 입학하는 교수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학생 교수’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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