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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학술 雜誌’를 품지 못하는 천박한 문화 수준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학술 雜誌’를 품지 못하는 천박한 문화 수준
  • 교수신문
  • 승인 2009.04.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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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이른바 ‘학제간 연구’에 대한 필요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학술진흥재단 등에서도 그에 대한 지원이 강화됐다. 나도 그런 필요에 깊이 공감하고 가능하다면 그런 연구를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은 축에 속한다. 그러나 다들 아는 대로 제대로 된 학제간 연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기만 하다.

내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바람직한 학제간 연구의 모델 같은 것에 대해 별 달리 들어본 적이 없다.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학제간 연구가 강조되면서도 우리에게는 정작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함께 참여해 서로 깊이 소통하고 토론할 수 있는, 말하자면 어떤 ‘학제간 공론장’ 같은 것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예를 들어 내 분야는 법학이나 사회과학의 여러 분과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가끔씩 우연한 기회에 다른 분야의 작업에 대해 귀동냥을 하기는 하지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정보나 이해를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역시 내 게으름 탓도 크겠지만, 내 분야 저널들도 제대로 챙기기 힘든데 무수히 많은 다른 분야의 저널들을 일일이 찾아 볼 여유도 없다. 가끔씩 대화 기회가 생겨도 서로 다른 개념(심지어 역어) 사용이나 문제 틀 때문에 큰 벽을 느끼곤 한다. 만약 그런 학제간 공론장 같은 것이 활성화돼 있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학술적 성격의 ‘잡지’조차 거의 없다. 영어의 매거진(magazine)을 우리말로 왜 잡지라는 조금은 부정적 뉘앙스를 가진 말로 쓰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잡지는 사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다양한 학문적 논의들의 종합적 토론 매체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계간지든 반년간지든 그런 잡지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지식인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깊이 있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공동의 공론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몇 몇 문예지를 빼고는 학술적 성격의 잡지라고 할 만한 것이 별 달리 눈에 띄지 않는다.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 새로운 시도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찌된 일인지 충분히 안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대로 널리 읽히지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상업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는 우리 학술 문화의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사 잡지 수준 이상으로는 지식인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문제도 없고 서로 공유하는 지적 배경 같은 것도 갖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깊이 있는 서평도 없고 논쟁도 없다.
학문 분야만 조금 다르면, 같은 주제를 연구하면서도 서로 참조도 잘 안한다. 이래가지고는 어느 분야든 자생적 학문 전통 같은 것이 형성될 리가 만무하다.

반면 많은 학자들에게는 그런 잡지들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런 글은 ‘업적’이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웬만한 전문 저널 논문보다 더 공들여 쓰고 더 중요하고 영향력도 더 클 수 있는 글도 형편없는 점수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대신 원고료를 조금 받기는 해도 무슨 사명감 같은 것이 없는 사람에겐 잡지 원고 쓰기는 엄청난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러니 잡지들에는 좋은 글들이 실리기가 드물어져 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더욱 잡지들을 외면한다. 제대로 된 악순환 구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술 잡지에 대한 공적 지원과 업적 평가의 관행 및 제도의 개선이 절실하다.

장은주 서평위원 영산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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