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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의 노예화’ 사건 없었다면 진화가 가능했을까
‘미토콘드리아의 노예화’ 사건 없었다면 진화가 가능했을까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4.13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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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진화론의 유혹』/ 『미토콘드리아』

『진화론의 유혹』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김영희 외 옮김│북스토리│2009│544쪽
『미토콘드리아』닉 레인 지음│김정은 옮김│뿌리와이파리│2009│536쪽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의외로 진화론에 관련된 책은 출간이 안 되는 편이다. 진화론 관련 저작이 수두룩하다는 점이 이유일까.

무덤 속의 다윈이 조금 섭섭해 할 상황이다. 다행히 이 와중에도 눈여겨 볼만한 묵직한 책이 출간됐다.
우선 『진화론의 유혹』을 보자. 이 책에서 저자는 진화론을 적극 옹호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해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를테면 다양한 동물들에게서 관찰되는 영아 살해를 자연 선택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개체 수의 조절이라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저자는 사회를 진화론의 원리로 해명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소문은 “소규모 사회가 내부로부터의 전복을 막기 위한 방어책”중의 하나이다. 소문을 통해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일단의 정보를 보유할 수 있고 사회적 약점을 신속히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설명은 웃음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웃음은 집단 구성원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동시에 느끼게 하는데 특히 효과가 있는 메커니즘이다.” 인간은 “행동 방법에 대해 유전자에 덜 의존하게 되면서 집단 구성원에 더 의존해야 했고, 이는 안전하고 지루한 시기를 최대한 활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 때 웃음은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서 안전하고 지루한 시기를 식별하고 공유”할 수 있게 만든다. 곧 집단에 활력소를 불어넣고, 종국적으로 집단과 개인들의 생존에 기여하도록 한 것이 웃음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그 외에 종교 등 숱한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선보인다. 때로는 경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논거도 함께 제시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단순한 앎의 지평을 넘어서 우리 삶에 기여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진화론과 인간사의 중요한 문제들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인간은 다른 포유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태아기 때 자신의 영양 섭취 상태를 평가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적합한 신진대사 전략을 결정한다. 이와 같은 예측적응반응은 말라리아나 황열병처럼 고통과 죽음을 초래하는 합병증이 존재하는 현대 환경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윌슨은 “이 사실은 진화론자처럼 사고하지 않는 한 상상할 수조차 없기 때문에 최근에서야 밝혀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의 역자들은 진화론 전문가도 과학전공자들도 아니다. 다만 많은 책에 대한 번역 경력이 있고, 세 명이서 분담을 했다는 점 덕분에, 번역은 꽤 매끄러운 상태다. 편집 상태도 좋은데, 책의 곳곳에 해당 장의 핵심을 요약하는 발문을 배치해 책의 이해를 돕고 있다.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게 된 데는 역자와 출판사 측의 이러한 노력이 작용한 바가 크다.

다음으로 『미토콘드리아』를 보자. 이 책은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의  오파비니아 시리즈 7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오파비니아 시리즈는 과학 출판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시리즈인데, 이번에 나온 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저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작은 기관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세포의 일부를 이루는 이 기관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다는 말일까. 저자에 의하면 미토콘드리아는 한 때 독립적인 세균이었다. 그런데 약 20억 년 전에야 현재 지구를 지배하는 세균과 미토콘드리아는 연합을 통해 진화를 했다. 이때부터 조류, 균류, 식물, 동물이 나타났고, 지구상의 생물은 다기다양한 다세포 생물로 진화를 할 수가 있었다.

미토콘드리아의 노예화로 불리는 이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단세포 생물의 신세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미토콘드리아의 역할은 생각 외에 엄청나다. 저자는 “모든 세포는 더 큰 이익, 다시 말해 몸 전체를 위해 자살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과학자들은 아포토시스를 결정하는 것이 핵 유전자가 아니라 미토콘드리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언급한다. 우리의 죽음, 그리고 바로 그로 인한 진화의 거침없는 수레는 미토콘드리아가 추동을 했다는 것이다. 또 저자에 의하면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性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두 가지 성이 필요한 이유는 여성은 난자를 통해 자신의 미토콘드리아를 전달하도록 분화되지만, 남성은 정자를 통해 자신의 미토콘드리아를 전달하지 못하도록 분화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미토콘드리아의 이런 놀라운 활약의 배경에는 ATP 에너지 생산과 관련이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몇 나노미터 두께의 생체막을 통해 양성자를 수송함으로써 전위차를 만들어 동력을 생산한다.

이 양성자의 동력은 생명의 기본입자라고 일컬어지는 막에 있는 버섯 모양 단백질을 지나면서 ATP 형태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 파격적인 메커니즘은 DNA처럼 생명의 근본이 되며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의 기원을 꿰뚫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이유에서다. 왜일까. “유전자 수평이동으로 두 꾸러미의 유전자를 얻게 된 메탄생성고세균은 이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주위로부터 양분을 흡수할 수도 있고 그 양분을 발효시켜 에너지를 만들 수도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미토콘드리아가 우리의 조상과 연합한 시기는 산소가 풍부해지는 시기였다. 주변의 풍부한 산소를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일종의 발전기를 바로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얻게 된 셈이다. 에너지 활용을 많이 할 수 있게 되니 생물의 크기도 커지고, 복잡성도 증가했으며, 다양해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인간이고, 인류 문명인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 역시 깔끔하고 꼼꼼한 번역과 편집이 돋보인다. 역자는 생물학과를 졸업한 전문 번역가로, 비록 생물학 연구자는 아니지만, 교양 과학 도서를 번역하기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물론 이 책은 단순한 교양 과학도서가 아니다. 여느 전문 서적에서도 접하기 힘든, 혹은 수많은 전문 서적과 논문을 뒤져야 겨우 알아낼 법한 연구 결과들을 일목요연하고 유려하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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